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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료 20조 쌓여도, 보장성 그대로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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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건강보험료 20조 쌓여도, 보장성 그대로인 이유?

[기고] 실손보험, 한국 의료의 재앙

"실손보험 드셨어요?"


소위 오십견이 걸려서 팔을 '앞으로 나란히' 이상의 각도로 올리기 힘들어졌을 때 누워서 자는 것도 힘들어서 결국 동네의 마취통증학과를 찾았다. 그러나 가보니 인터넷에 올라 있는 정보와는 달리 그 의원은 재활의학과였다. 나도 태어나서 재활의학과 진료는 처음이고, 또 동네에서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개업을 하면 보통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먹고 살고 있는지 궁금해져서 일단 들어갔다.


일단 초진인 내게 환자정보를 적는 종이를 건넨 직원이 대뜸 묻는다.


"실손보험 있으세요?"


"아니 없는데요."

이걸 내게 묻는 순간 내가 든 생각.

'나는 돈이 안 되는 환자인가 보구나.'

진료실에서 만난 젊고 앳되기까지 한 의사는 요새 동네 병원에서는 이렇게 친절하지 않으면 안되나 보다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할 정도로 웃음 띤 얼굴에 나긋한 말투로 환자인 나를 설득해간다. 여기저기 몸도 만져주고 눌러준다. 그래도 결론은 마찬가지다. 오십견이란다. 치료는 약물 치료와 충격파 그리고 요새 유행하는 도수 치료 등 3가지가 있는데 자신이 권하는 것은 도수 치료란다. 가격은 한번에 15만 원인데 한 열 번은 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가격이나 다른 것은 밖의 상담실장과 상의해보시란다.

'오, 이게 말로만 듣던 도수치료구나' 생각하며 밖으로 나와서 그 상담실장이라는 분을 만났다. 이 상담실장은 자기가 원장님께 잘 말씀드려서 도수 치료 가격을 1회에 10만 원으로 이야기해서 해드리겠다고 꼬신다. 오, 갑자기 총금액이 50만 원이나 떨어졌다. 하지만 난 이미 알고 있다. 여기 주변의 다른 의원은 한 번에 8만 원 그리고 버스 타고 조금 나가면 한 번에 5만 원도 있다는 사실을.

실손보험 환자는 아마 한 번에 10만 원하는 도수 치료를 했을 지도 모른다. 본인이 부담해야 할 비용에 대한 부담이 현저히 줄기 때문이다. 환자는 비용에 대한 저항성이 줄어들고, 의료 공급자는 비용대비 효과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환자들 덕분에 마음 놓고 행위량을 늘려나가니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인 판이다. 오늘날 한국사회 의료의 한 단면이다.


이러다보니 실손보험사의 예상을 초과해서 비급여 비용에 대한 보험 지출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일부 항목에 대해서는 아예 규정을 바꿔사 보험 급여를 안하겠다고 하니까 공급자들의 반발이 거세지기도 했다. 이 상황에서 가장 손쉬운 길은 보험료를 올리거나 새 상품을 만들거나 해서 보험사의 손실을 줄이는 것이지만 새로운 상품도 결국 보험료를 올리는 것의 다른 방식일 뿐이다. 지난 20일 보험사들은 결국 도수 치료를 표준항목에서 제외한 실손보험상품을 내놓는다고 발표했다. 4월부터 판매한다는 이 상품은 도수 치료를 특약으로 만들어 돈을 더 내야 보험적용을 받게 하는 것이다. 이것 가지고 돈을 벌던 병의원들은 수익이 크게 줄어들 것이다.

민간보험법 제정의 실패

최근 10년 간 한국 의료의 가장 큰 재앙은 바로 이 실손보험의 창궐이다.

10년 전 금융보험자본의 뱃속에서 태어났던 이 불가사리는 그 동안 닥치는 대로 주워 먹고는 이제 너무 커져서 우리에 가둬놓기도 힘든 놈이 되었다. 무려 3500만 명에 육박하는 가입자와 건강보험을 능가하는 재정 규모를 갖게 된 것이다.

10년 전. 이 놈을 저지하려고 민간보험법이라는 것을 만들려고 시도 했었던 적이 있었다. 없앨 수 없다면 우리에 가둬놓고 키울 심산이었는데 이 법안을 발의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제일 먼저 보험연합회에서 찾아왔었다. 연합회는 상황이 여의치 않자 노조를 쑤셔댔다. 그 법이 발의되면 회사가 죽고 노동자는 더 어려워진다는 논리였다. 금융노조는 넘어갔고 법안 발의 반대성명서도 냈다.이때다 싶은 보험사들은 수만 명의 보험설계사와 직원 그리고 노조를 동원하여 정부 과천 청사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결국 법안 발의는 무산되었다.

그로부터 10년, 그 법안은 여전히 내 컴퓨터에 여러 파일 중 하나로 잠들어 있지만 실손보험은 한국 의료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불가사리가 되었다.


이 불가사리와의 싸움이 가장 큰 과제다 정책 담당자는 말할 필요도 없고 운동하는 자들 역시 운동을 잘못하면 역사의 죄인이 된다는 것을 보여줬던 사례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물 건너갔어요.


2017년 현재 건강보험공단에 보험료가 남아돌아서 쌓아둔 돈이 얼마인지 아시는가? 무려 20조 원이다. 이렇듯 돈이 남아도는데 보험료는 매년 임금 인상되듯이 오르고 또 오른다. 보험료를 못내고 체납자(6개월 이상)가 되어서 건강보험 혜택도 못 받는 국민이 200만 명이고, 3개월 이상 체납자가까지 포함하면 아마 400만 명은 족히 넘을 상황인데도 국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거나 국민들의 급여 보장성을 넓힐 생각보다 국민연금처럼 주식에 투자해서 돈을 볼 생각이 더 큰 것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머리가 좀 이상한 사람들이다. 저런 사람들을 공무원이니 건강보험공단이니 하면서 다 우리 세금이나 보험료로 먹여 살리고 있다는 게 개탄스러울 뿐이다.


이렇게 정부와 공단이 보험료가 남아돌지언정 보장성은 확대 안하는 주요한 원인이 바로 실손보험에 있다. 전 국민 중 노인들 다 빼고, 장애인 다 빼고 이미 병원에 있거나 질병으로 요양하고 있는 사람들 빼고, 위에 언급한것처럼 건강보험료조차 못내는 사람들 한 400만 명 다 빼고 나면 현재 실손보험 가입자 3500만 명이라는 숫자는 이미 전 국민 대부분이 다 가입해 있다는 말이다. 이 상황에서 실손보험이 비급여 항목에서조차 건강보험처럼 80%의 보험지급을 하고 있는데 복지부가 더 이상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한술 더 떠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는 오히려 실손보험사가 내야 할 돈을 건강보험이 더 내면서 결국 보험사들의 배만 불리게 된다는 주장이다. 현실적으로 그렇게 된다. 맞는 말이다. 하긴 관저에서 대통령이 효과도 불명확한 각종 주사를 맞고 비아그라나 88정을 국민 세금으로 구입해서 직원들에게 뿌렸다는 정도면 이 관료들의 의식이 그 정도인 것은 차라리 더 나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실손보험 고사와 다시 민간보험법 제정

실손보험은 건강보험이 제대로 돌아가면 애초에 존재할 필요가 없던 것이다. 그래도 계속 존재한다고 하면 아마 의료의 매우 미미한 부분에서 역할을 하는 상품이 있을 것이다. 실손보험은 본인부담금 폐지, 비급여 항목의 대폭적인 축소, 이에 따른 본인부담상한제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면 결국 고사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과정으로 어떻게 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미 이야기했듯 위의 것들을 추진하게 되면 보험사의 수익률이 늘어난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민간보험법이다. 현재의 보험업법으로는 문제를 다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따로 민간보험법을 만들어 이에 대한 규제와 통제가 필요한 것이다. 이를 통해 건강보험을 키워나가고 민간보험을 축소시켜서 최종적으로는 다른 형태의 상품으로 남게 하든가 고사시키든가 해야 한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건강보험의 의료비 중 급여 항목이 연평균 6.7% 증가한 것에 비해 비급여 의료비는 무려 10.2%씩 늘어났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시간이 가면 갈수록 급여 보장성은 후퇴하고 국민과 환자들의 부담은 점점 더 커진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건강보험보장성이 67%까지 갔었는데 그 이후 10년 동안 보장성이 63%로 축소된 것은 이를 방증하는 결과이다. 이를 민간보험사 입장에서 보면 본인부담금과 비급여가 계속 증가하여 손실률이 증가한다는 이야기니 결국 보험료가 지속적으로 올라서 국민과 환자들의 어려움은 날이 갈수록 커진다는 뜻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금융보험자본의 격렬한 저항을 넘어야 하는데 앞으로 정권이 그걸 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이미 문재인 캠프도 보장성 확대 공약이 순위에도 끼지 못하는 저 밑의 것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변변한 공약조차도 만들어진 것이 없다 하니 말이다. 결론은 여전히 거대 재벌의 영향력이다. 이들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정권을 만들지 않는 한, 국민 건강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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