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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이요, 돈 띵가 뭇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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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이요, 돈 띵가 뭇짜나요"

[작은책] 어른인 우리는 대답할 의무가 있다

지난해 12월 초, 처음으로 나랑 같이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과 함께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에 참석했다. 정확히는 오후 5시 30분에 시작하는 집회에 나보다 더 일찍 와서 집회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을 만난 것이다.

"너거 요 뭐 하는 줄 알고 왔나?"
"알아요."
"뭐 하는데?"
"박근혜 (대통령) 퇴진하는 거잖아요."

학창 시절부터 앞자리에, 더군다나 가운데 앉는 걸 지독히도 싫어했었지만, 집회 시작 5분 전이라 사람이 거의 없어서 앞에서 세 번째 줄 가운데에 떡 하니, 우리(?)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딘가에 있을 분회 깃발의 행방을 잠시 생각했던 거 같기도 하다. 문화제라 공연 팀이 많았다. 공연 중간에 옆에 있는 성화에게 물어봤다.

"근데 니는 뭐가 제일 열 받노?"
"최순실이요."
"최순실 뭐가 열 받는데?"
"돈 띵가 뭇짜나요."
"."

잠시 후, "근데 니 최순실이가 얼마나 띵가 뭇는지 아나?" "모르겠는데요." "한 300억 억 넘게 띵가 뭇을 걸? 아니, 한 1000억 원 넘을란가?" 했더니 이 녀석 하는 말. "와! 그라믄 치킨이 몇 마리지?" 하면서 매우 진지해진다.

ⓒ프레시안 조합원(안종길)

낼모레 '박근혜 탄핵'이 가결될 걸 예상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가수팀만 6팀을 무대에 세우는 바람에 결국 마지막 풍물공연과 자유발언 희망자 2명은 결국 순서에서 잘렸는데도 시간이 오후 8시 20분을 향하고 있었다. 그 추운 날씨 속에 오며 가며 자리를 끝까지 지킨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 학생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무한한 동질감과 기특함이 들면서 동시에 이런 세상에서 살게 한 것에 대한 미안함도 겹치는 참으로 희한한 날이었다.

이윽고 자유발언 시간이 다가오자, 옆에서 나랑 대화했던 성화가 "선생님, 자유발언 한 번 하셔야죠?"라고 한다. 너무 추워서 빨리 집회 끝나고 따뜻한 국물이나 먹으면 좋겠다만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자유발언이라니. "어, 선생님 준비도 안 됐고, 지금 아무 생각도 안 나는데." 그러자 옆에 있던 지원이가 "에이, 선생님 아!닙!니!까! 한 3분만 생각하시면 되죠, 뭘."

'헐! 이것들이 사람을 어떻게 자극하면 되는지도 알고 많이 컸네' 싶은 생각으로 조용히 무대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웃긴 건 그 말을 듣고 진짜 무대에 올라가면 무슨 말을 할까를 맹렬히 생각하다 집회가 끝나 버렸다는 것이다. 그날 시간만 좀 더 있고, 날만 좀 덜 추웠다면 자유발언대에 올라가 이렇게 말했을 텐데.

"국민대통합을 넘어서 사제 간의 보이지 않는 벽마저 허물어 준 박근혜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나라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 헌법의 내용을 지키지 않고 자신의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른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제 그만두고 내려오라고 말하기 위해 여기에 섰습니다. 오늘 여기에 모인 모든 사람들도 희망이지만, 특히나 여러 어려운 점이 많을 텐데도 집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어른으로서 미안하기도 합니다. 교육을 통해 우리가 참된 인간을 길러 내고 지행합일의 정신을 기르고 또한 실천해야 된다고 이야기할 때, 여기에 참가한 학생들의 모습에서 그러한 면들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오늘 집회에 참가한 우리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며 특히 지금 저와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는 ○○초 학생들. 사랑한다!"

그날 자유발언은 못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킨 신비와 인서를 비롯해서 자리를 빛낸 6학년 학생들, 진심으로 멋졌다.

덧붙임.

집회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성화가 내게 묻는다.

"선생님, 그런데 왜 다른 선생님들은 안 와요?"
"선생님들이 저녁에 다들 바쁜 일이 있으셔서 못 오시는가 보다."
"선생님, 근데 우리 담임선생님은 왜 안 와요?"
"몰라. 전화 함 해 보라메."

몇 초 후.

"어, 선생님 어디예요? 촛불집회 왜 안 와요?"

순진무구하게 말하는 저 모습에 '어른인 우리는 대답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라는 쓸데없는 고민으로 무겁게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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