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곧 귀국할 이 대통령의 마음이 편해 보이지만은 않는다. 각국 정상들의 뜨거운 환대와 자원외교 등 이번 순방의 일정한 성과도 빛이 바랜 측면이 적지 않다. 바로 지난 4.29 재보선의 '5대0 전패' 이후 불거지고 있는 여권 전반의 내홍 때문이다. 그 중심은 물론 박근혜 전 대표다.
예정된 파국?…손 내민 당일까지 "경쟁자 없다"는 靑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직후 "국내에는 경쟁상대가 없다. 세계의 지도자들이 내 경쟁상대"라는 말을 자주 해 왔다. 세계를 무대로 또 한 번의 '성공신화'를 써 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지만, 정치권에선 이를 보수세력의 '최대주주' 박근혜 전 대표를 다분히 의식한 발언으로 받아들였다.
충격의 '재보선 전패' 직후인 지난 6일 이 대통령과 박희태 대표가 쇄신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주 앉은 직후에도 청와대에선 비슷한 언급이 나왔다.
이 대통령은 이날 회동에서 "여당은 원래 계파색을 너무 드러내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고,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계파색은 여당이라는 데에서는 바람직한 건 아니라는 취지"라고 부연하면서 "경쟁상대가 있어야 계파를 만드는 게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청와대와 친이계 측은 사전 물밑접촉조차 시도하지 않았다. 야심차게 내 놓은 '화합형' 원내대표 카드를 박근혜 전 대표가 야멸차게 거부한 것은 정해진 수순이었다. '화합'과 '쇄신'이라는 밑그림은 시작부터 어그러졌고, 이 대통령의 집권 2년차 국정 구상에도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한나라당 내 계파갈등은 親李 책임" 63.8%
여론도 이 대통령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13일 발표한 정례 여론조사(표준오처는 95% 신뢰수준에 ±3.1%p)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3.8%는 최근 불거진 여당 내 계파갈등의 책임이 '친이계' 쪽에 있다고 답했다. '친박계'라는 응답 19.3%에 비하면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박 전 대표가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에 반대한 대목을 두고도 54.1%가 '잘한 일'이라고 답해 '잘못한 일'이라는 응답(24%)을 크게 앞섰다.
"한나라당이 청와대에 끌려 다니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응답자의 60.1%가 공감을 표했다. '공감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22.1%에 불과했다.
연구소 측은 "현 정권 출범후 당내 주요세력인 박 전 대표계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포용이 미흡했다는 인식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한편으로는 이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현 정부의 정책기조에 대한 불만과 박 전 대표 개인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호감도 등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라고 평가했다.
▲ 지난 2월 청와대에서 만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 그러나 두 사람의 회동 직후 오히려 '뒷말'이 무성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여권 내부에선 '李-朴 회동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청와대 |
국정기조도 못 바꿔, 박근혜도 못 끌어안아
문제는 박근혜 전 대표의 철저한 '마이웨이' 행보를 지켜보는 것 외에 청와대가 꺼내들 수 있는 마땅한 카드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능성이 희박한 '봉합'과 엄청난 파장을 감수해야 하는 '결별' 중 어느 한 쪽을 이 대통령이 극단적으로 선택할 가능성도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오는 6월 국회에서 각종 쟁점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당내 분란의 급격한 확전은 청와대로서는 일단 피해가야 할 길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쇄신은 당에서 할 일"이라는 어정쩡한 태도가 당분간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같은 수준의 '아슬아슬한 동거'가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를 두고는 근본적인 회의론이 적지 않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애초 계획하고 있었던 국정과제들을 하나하나 수행하면서 '일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외에 별다른 왕도가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역설적으로, 친박 진영과 당내 소장파들이 중점적으로 거론하고 있는 '독단적 국정운영 기조'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라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했다.
민본21, 원조소장파 등이 제기하고 있는 '국정기조 전환'을 수용해 당의 개혁요구와 민심을 모두 충족시킬 경우 박 전 대표 측을 거꾸로 고립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이같은 그림은 청와대의 기류와는 거리가 멀다. '자기 부정'과 동의어나 마찬가지인 국정기조의 전환은 '박근혜 끌어안기' 보다 더 어렵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MB정부'와 의도적인 선긋기 행보를 보이고 있는 박 전 대표의 복심을 감안하면 개각 등 여권개편 작업을 통해 일종의 '권력지분 나누기'가 이뤄질 가능성도 사실상 전무하다. 조만간 개각과 청와대 개편 등을 단행하더라도 '여의도 정치'에 대한 깊은 회의를 감추지 않고 있는 이 대통령도 당 내 비주류를 의식한 '깜짝 카드'는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박 전 대표에 대한 불만만 깊어지고 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도대체 뭘 어떻게 해 달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국정기조 전환도, 박근혜 끌어안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현재와 비슷한 '안정적 교착상황'만 길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물론 이 역시 10월 재보선을 지나면 임계치를 넘어설 공산이 크다. 현재 여권의 분란과 별개로 청와대는 묘하게 안정적인 편이지만 남은 날이 길지 않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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