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시민 혁명의 미래를 놓고 말들이 많다. 박근혜 퇴진 이후에는 박근혜 체제 해체 운동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정책 쟁점들이 부각되면 촛불 시민들 사이에서 차이와 대립이 불거질 테니 대통령 퇴진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나는 이 운동이 처음 시작될 때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전자의 입장을 강조했다.
하지만 현 상황을 냉정히 짚는 쪽은 사실 후자다. 작년 11월부터 지금까지 계속되는 촛불 집회의 기본 성격은 대통령 퇴진 운동이다. 진보든 보수든 최저임금이나 비정규직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든 사드에 찬성이든 반대든 박근혜 퇴진에만 동의하면 다 모이는 게 토요일 촛불 집회다. 그래서 수백만이 모일 수도 있었고, 12월 9일의 승리를 이끌어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 운동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과 함께 일단락된다고 봐야 맞다. 대통령 퇴진 운동이니 대통령을 퇴진시키고 나면 더 할 일이 없다. 그 이후에도 재벌 개혁이나 복지 확대를 요구하며 촛불 시위를 이어가자는 것은 실은 대통령 퇴진 운동과는 별개의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자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박근혜 탄핵 성사만으로 광장이 닫혀선 안 된다고 믿는다. 촛불 항쟁의 실체는 대통령 퇴진 운동이 맞지만, 이 운동은 박근혜 퇴진만으로 승리했다고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록 대통령 퇴진 운동과는 별개더라도 그 여진을 이어갈 또 다른 운동들이 없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이 승리는 패배의 지연에 불과했다고 재평가될 것이다. 왜 그러한가?
민주공화국이 세습 귀족 국가로 퇴행하고 있다는 위기 의식
대통령 퇴진 운동이 이토록 거대한 물결을 이룬 것은 위기 의식 때문이다. 그것은 6월 항쟁 이후 30년만에 민주공화국이 세습 귀족 국가로 퇴행하고 있다는 위기 의식이다. 단순히 개인 독재가 문제가 아니다. 이 점에서 박정희나 전두환 시대와는 다르다. 저마다 표현은 조금씩 달라도 모두들 걱정하고 분노하는 것은 세습 귀족들의 지배가 이미 시작됐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우선 전 세계에 '한국판 라스푸틴'으로 악명을 떨친 최순실을 보자. 최순실은 어떤 선거도 거치지 않은 채 막강한 권력의 주인이 됐다. 박근혜라는 허수아비가 선거에서 지지를 받을수록 비선 실세 최순실의 권력이 커졌다. 시민들이 모르는 사이에 헌법 제1조 제2항은 처참하게 우롱됐다. 밀실에서 민주공화국 원칙을 뒤집는 반역이 자행되고 있었다.
최순실이 어떻게 그런 막후 실세가 됐는지는 한 장의 가계도로 설명된다. 최태민으로 시작해 최순득, 최순실로 이어지고 다시 장시호, 정유라가 등장하는 계보 안에 모든 의문의 답이 있다. 비록 시작이 사이비 종교와 막장 드라마라 할지라도, 이것은 틀림없는 귀족 가계도다. 박 씨 세습 권력과 한 몸이 된 최 씨 세습 권력이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촛불 시민 혁명에 기름을 끼얹은 최 씨 가문 3대 상속자 정유라는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세습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대학, 기업, 정당, 관료기구, 언론 등 민주공화국의 온갖 제도들이 다 정유라의 특권을 만들고 뒷받침하는 도구로 동원됐다. 최순실-정유라 모녀는 유럽을 종횡무진하며 지구화 시대에 적응한 한국 귀족의 풍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정유라는 손수 SNS에 발언을 남겨서 이런 특권을 누리는 자들의 의식 세계를 투명하게 공개했다. 부모 잘 만난 것도 능력이라는 것이었다. 즉, 신흥 귀족들에게 세습은 '특권'이 아니라 어엿한 '능력'이었다. 능력주의를 표방하던 공화정은 이렇게 쉽게 귀족정으로 역전될 수 있는 것이었다.
최 씨 일가의 존재와 행태가 폭로되면서 우리는 비로소 대한민국이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지 눈을 떴다. 눈을 떠보니 우리는 이미 귀족과 귀족 지망생들에게 겹겹이 포위된 신세였다. 김기춘과 우병우는 비선출직 고위 관료들이 어떻게 권한을 남용해 부와 권력을 축적하는지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수많은 '김기춘'과 '우병우'들의 자제는 지금 이 시간도 귀족학교와 해외 유학, 두터운 연줄망을 통해 선대의 사업을 이을 채비를 하고 있다. 이들이 다른 시민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이미 한 교육부 관료의 "민중은 개, 돼지" 발언으로 드러났다.
재벌이 새삼 비판받는 것도 이런 맥락 때문이다. 재벌이 세습 권력임은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고, 어느 정도 어쩔 수 없다는 인식마저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전체가 세습권력의 손아귀에 넘어가는 중이라는 위기의식 속에서 재벌 문제도 이전과는 다른 색깔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삼성 이재용을 비롯한 재벌3세들은 이제 '예외적' 귀족이 아니라 귀족정 전체의 몸통으로 제대로 평가받고 있다.
박근혜는 대통령이 될 때도 그랬지만 현 국면에서도 이러한 귀족 집단의 더 없이 훌륭한 상징이다. 박정희의 딸이라는 게 한때는 대의제를 발판으로 권력을 구축하는 데 최대 자산이었지만, 이제 각성된 시민들의 눈 앞에서 이 자산은 최대의 허물로 반전됐다. 추문의 정점이 박 씨 가문 2세라는 사실은 시민들의 대적이 바로 세습 귀족 권력임을 생생히 증명해준다. 박 씨 가문 2세가 허수아비 노릇을 하는 거대한 귀족 권력이 드디어 장막을 벗고 우리 앞에 서 있다.
대통령 퇴진 운동의 연료는 이러한 귀족 권력에 대한 분노다. 어느새 세습 귀족 국가로 뒷걸음질 치는 민주공화국을 되찾겠다는 결의다. 촛불 시민 혁명 와중에 유난히 프랑스 대혁명의 상징들(단두대!)이 환기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21세기 한국 시민들의 과제는 18세기 프랑스 시민들의 과제와 너무도 닮았다.
전진하지 못하는 민주공화국은 반드시 퇴행한다
6월 항쟁 30년만에 어찌 이렇게까지 됐냐고 다들 한탄한다. 이 땅의 척박한 풍토를 탓하는 자조의 목소리도 자주 듣는다. 그러나 박정희마냥 '한국적' 민주주의의 특수성만 물고 늘어질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요즘 나라 밖 상황도 우리와 썩 다르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서 퇴행의 뚜렷한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각국의 토양을 떠나 민주공화국 자체의 본성에 있는 것 같다.
지난 세기 초에 유럽 여러 나라가 민주국가의 외양을 처음 갖출 때부터 상황은 모순적이었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러시아 혁명 100주년이기도 한데, 제1차 세계대전 직후에 서유럽 국가들이 보통 선거 제도를 서둘러 도입한 데는 러시아 10월 혁명의 영향이 컸다. 사회주의 혁명의 확산을 막으려고 황급히 민주국가의 외피를 두른 것이다.
그런데 당대의 사회경제 현실은 갓 등장한 대의민주제와 화합하지 못했다. 새로 유권자가 된 대중은 생존권 보장을 요구했지만, 이 시기 자본가와 엘리트들은 이런 요구에 인색했다. 특히 1929년 전 세계가 대공황의 수렁에 빠져든 뒤에는 더욱 그랬다. 민주국가라는 정치 형식과 자본가 독재라는 사회경제 현실 사이의 모순이었다.
사실 미국과 스웨덴 정도를 제외하면 민주국가를 강화하는 방향에서 이 모순을 진정시킨 나라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권위주의와 파시즘이 일반적인 해결책이었다. 지배 엘리트의 쿠데타를 통해서든 대중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든 민주국가를 포기하는 쪽이 다수였다. 보통 선거 제도가 확산되고 나서 불과 10여 년만의 일이었다. 이 정도로 자본주의에서 민주공화국의 유지란 쉽지 않은 과제였다.
두 번째 세계 전쟁을 겪고 나서야 비로소 자본주의 중심부에 한해서나마 대의민주제가 안정됐다. 파시즘이 패배하고 중심부 자본이 사회 개혁을 일정하게 수용하면서 사회국가(=복지국가)가 등장한 덕분이었다. 사회국가에서는 대중이 대의제를 통해 요구하는 바를 정부가 완전고용과 보편복지를 통해 보장해주었다. 이후 상당 기간 동안 자본주의와 대의민주주의는 동시에 유례없는 황금기를 구가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진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민주공화국은 반드시 그 진화형인 사회국가를 실현해야만 안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의제를 통해 대중의 생존권을 보장할 수 있어야만 대의제 자체가 지속될 수 있다. 그렇지 못하면 민주공화국 자체가 존립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불행히도 인류가 이 진실을 깨닫는 데는 한 차례의 위기와 격변만으로는 부족했다. 사회국가의 골격이 갖춰진 지 아직 30여 년이 채 안 된 1970년대에 이번에는 사회국가가 시험에 직면했다. 자본주의의 장기 호황 덕분에 전 지구적 지배력을 갖춘 자본 세력과 민주주의의 안정기 동안 대항력을 갈고 닦은 노동 세력 사이에 긴장이 높아졌다. 언젠가는 서로 대결해서 승자를 가릴 수밖에 없는 긴장이었다.
이 상황에서 자본이 내세운 대안이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그러니까 사회국가 이전의 자본주의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반면 노동 진영 일각은 기존 사회국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본을 아예 사회의 일부로 되돌리자는 해결책을 내놓았다. 이제는 '탈자본' 사회국가로 나아가야만 사회국가의 성과도 지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영국 노동당 좌파는 국영지주회사가 주요 대기업의 지배 주주가 되는 방안을, 스웨덴 노동운동은 임금노동자기금을 통해 노동자가 기업을 경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노동 쪽 대안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대신 신자유주의가 일단 역사의 승자로 부상했다(나는 졸저 <신자유주의의 탄생>(책세상, 2011)에서 이 대결의 전말을 다룬 바 있다). 나라마다 차이는 좀 있지만, 사회국가 질서는 심각하게 해체됐다. 대중의 생존은 다시 정치 바깥에서('시장'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됐고, 대의제는 그와 무관한 빈 껍데기가 됐다.
그렇게 해서 등장한 현실은 무엇인가? 사회국가가 단지 사회권 보장이 빠진 민주공화국으로 돌아갔는가? 아니다. 현실은 그보다 더 퇴행했다. 지구화, 금융화를 발판으로 기존 노동 세력을 제압한 자본가와 엘리트들(1%)은 세계 곳곳에서 과거 귀족마냥 사회의 나머지(99%)와 격리된 채 부와 특권을 누리고 있다. 한국만 세습 귀족 국가로 퇴보 중인 게 아니다. 전 세계 공통 현상이다. 다만 한국의 세습 귀족들이 지나치게 '압축' 성장을 꾀하다 자승자박의 사고를 낸 것뿐이다.
20세기 역사를 통해 이렇게 두 차례의 대전환(서로 정반대 방향이었던)을 겪으며 진실은 더욱 분명해졌다. 민주공화국은 사회국가로 전진해야만 지속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사회국가 역시 탈자본 사회국가로 전진해야만 지속될 수 있다. 만약 사회국가로 전진하지 못한다면, 민주공화국은 반드시 귀족국가로 퇴행한다. 사회국가가 탈자본 사회국가로 전진하지 못할 경우에도 역사는 걷잡을 수 없이 퇴보한다.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이야기하며 지배 체제의 나팔수들은 벌써부터 유토피아의 열망을 부관참시하고 나선다. 그러나 20세기를 돌아보면서 우리가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은 유토피아의 허망함이 아니라 현실의 냉엄함이다. 20세기 역사가 증언한 민주공화국의 전진-퇴행의 변증법을 똑바로 봐야 한다. 지금 우리는 그 현실 논리의 한 가운데에 있다.
대통령 퇴진은 귀족국가 저지의 시작일 뿐
이것이 박근혜가 쫓겨나고 난 뒤에도 촛불 시민 혁명의 제2막이 이어져야 할 이유다. 대통령 퇴진 운동은 박근혜 퇴진으로 끝이지만, 세습 귀족 국가에 맞서 민주공화국을 지킨다는 이 운동의 진정한 목표는 그걸로 끝이 아니다. 대통령 퇴진 운동의 횃불을 이어 사회 개혁 운동이 시작돼야 한다. 그래야만 귀족국가를 저지할 수 있다. 박근혜 퇴진은 단지 이 투쟁의 상징적 시작일 뿐이다.
그러니 촛불을 손에서 놓지 말자. 광장을 비우지도 말자. 오히려 더 많은 광장들을 열고 더 많은 이야기들을 불러내자. 역사가 말해준다. 민주주의 정치 사전에서 전진하지 않음의 동의어는 현상 유지가 아니다. 그것은 후퇴다. 퇴행이다. 노예로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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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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