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 세계를 뒤흔든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사건과 수천 명의 무고한 희생자를 발생시킨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엄청난 사회적 경제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그런가 하면 90년대 이후로 '지속가능한 발전'이 지구촌의 화두가 되면서 UN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각국의 정부 뿐 아니라, 시민사회까지도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00년대 이후 UN 글로벌컴팩트(Global Compact)와 GRI 등 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을 촉진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제도와 규범들이 잇따라 만들어진 것도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2010년에 제정된 ISO26000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넘어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조직의 사회적 책임(SR)을 규정하고 실행을 촉구하는 국제규범으로써 지배구조, 인권, 노동, 환경, 공정운영관행, 소비자보호, 지역사회발전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서 사회책임(SR)의 세부적인 내용과 이행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ISO26000은 각국의 전문가들이 5년여의 치열한 논의를 거쳐서 개발되는 과정에서 인증을 목표로 하는 경영시스템표준(Management System Standards)이 아니라, 자발적인 준수를 전제로 하는 지침표준(Guidance Standards)으로 제정되었기 때문에 국내법이나 국제법과 같은 강제력이 없는 권고적 규범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가을 ISO 이사회(TMB)는 ISO26000을 경영시스템표준(MSS)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실무 작업 개시를 승인함에 따라 올해 3월부터 개최될 ISO 사회책임(SR) 전문가 회의에서 ISO26000을 경영시스템표준으로 변경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될 예정이다. 전문가 회의에서의 논의가 얼마나 걸릴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머지않아 ISO26000은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인증표준으로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결과적으로 세계 경제와 국제무역에 새로운 규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가히 사회책임(SR) 라운드가 도래하고 있는 상황인데, 지금까지 우리는 그에 대한 대응은 고사하고 사회책임의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ISO26000이 제정된 이후 많은 선진국들이 국내법과 제도를 국제규범에 부응하도록 정비하는 한편, ISO26000을 인증 표준으로 전환할 것을 주도해오고 있는 것과는 달리, 한국 정부는 사회책임의 가치와 관행을 우리 사회 전반에 확산시키고 정착시키려는 노력과 책임을 거의 외면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최근 국제 기후변화 대응 행동 연구기관들로부터 기후변화 대응에 가장 무책임하고 게으른 4대 악당국가로 한국이 선정되어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이처럼 비관적인 상황에서 지난해 9월 말부터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사회 전반에 만연한 비리와 부패를 근절하여 보다 투명하고 윤리적인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시작되고, 10월 말에는 중소기업청을 비롯한 정부 관계부처 합동으로 '사회적책임경영 중소기업 육성 5개년 계획'을 수립·발표한 것은 만시지탄이지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부터라도 정부와 기업과 노조를 비롯한 우리사회의 모든 조직이 ISO26000에 규정하고 있는 것처럼, 민주적이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구축하고,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며, 소비자와 이해관계자의 권리를 존중하고, 환경보호와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각자의 책임을 자각하고 이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이들 조직들이 사회책임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실천해나갈 수 있도록 추동하고 견인하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방안과 정책이 시급한 만큼 정부 관계부처와 관련 기관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지난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진행되었던 ISO26000 개발과정(SR 워킹그룹회의)에 직접 참여했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지난해 말에 발족한 우리 '한국사회책임협동조합'도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지원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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