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촛불혁명은 새해에도 계속되고 있다. 박근혜 탄핵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그럴수록 짜증과 불안감 역시 커지고 있다. 막장 드라마도 이런 막장 드라마가 없는 새누리당의 내부 권력투쟁, 특히 혁신 움직임에 저항해 서청원 등 친박이 보여주고 있는 최후의 몸부림은 새해 벽두부터 국민들의 혈압을 오르게 한다. 그러나 이들의 추태는 없어져야할 수구정당, '내시정당'이 자해 소동으로 자살을 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짜증은 나지만 사실은 박수를 쳐줄 일이다.
진짜 짜증이 나면서 불안한 것은 박근혜를 이미 탄핵했고 정권이라도 잡은 양 김칫국부터 마시며 벌써부터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는 야권이다. 우선 지지율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이다. 시민들은 추운 거리에서 박근혜 탄핵을 외치고 있는데 벌써 대통령이 다 된 양 청와대 경호실을 어쩌겠느니 대선공약이나 이야기하고 다니는 것은 문제가 많다. 나아가 더불어민주당 정책연구소인 민주연구원의 개헌보고서 사태, 이에 대한 김부겸, 박원순 등 경쟁후보들의 문제제기에 친문들이 가하고 있는 '문자폭탄 테러'는 짜증을 넘어 모골을 송연하게 한다.
반문 세력인 국민의당도 마찬가지다. 주승용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촛불 민심이 무엇인지 잘 알면서도 공공연하게 "설사 정권교체를 못하더라도 친문과는 손을 못 잡는다"고 날을 세우고 있다. 벌써부터 이러하니 대선 경쟁이 본격화되면 어찌될 것인지 아찔하기만 하다.
한마디로, 거리에서 국민들이 치열하게 싸워 얻은 6월 항쟁의 결과를 분열로 말아먹은 87년 대선의 비극이 자꾸 떠오른다. 아니 87년 6월 항쟁의 경우 양김이 직선제 개헌 투쟁들을 선도한 공이라도 있지만 지금의 야당은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보수야당인 민주당이 학생과 시민들의 피 흘린 투쟁에 무임승차했던 4.19학생 혁명에 더 가깝다. 그리고 무임승차한 민주당은 신파인 장면과 구파인 윤보선의 분열로 5.16 쿠데타를 자초했다.
그러나 정말 가관인 것은 새누리당도, 야당들도 아니고 손학규 전 의원이다. 손학규는 최근 개헌을 통해 낡은 정치를 청산하는 제7공화국을 주장하면서 충청 출신의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염두에 둔 듯 "DJP연합 그런 거 이번에 더 구체화될 수 있다"며 호남과 충청의 연합을 제의했다.
이는 여러 면에서 심각한 문제이다. 박근혜 정부의 적폐를 청산하는 것이 시급하지 이 문제를 덮어버리고 개헌연대를 통해 새누리당, 보수신당 등 박근혜 정부 부역자들을 살려줄 개헌을 지금 추진하는 것이 필요하냐는 분위기가 민심이다. 그러나 개헌은 필요하고 어차피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없는 그로서는 이를 주장할 수도 있다.
헌데 DJP라는 지역주의연합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정말 심각한 문제이다. 물론 호남 출신도 아닌 손학규가 선거 패배 후 정치를 떠나 정치 쇼로 강진 토굴서 몇 년 살았다고 호남이 자기의 영지라도 되는 냥 DJP 연합 운운하는 것 자체가 주제넘은 오만이다. 마치 자기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라도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그것도 김 전 대통령 생전 한나라당 소속으로 김 전 대통령을 그리 비판하고서 말이다). 그러나 이는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그의 발언은 두 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 첫째, 낡은 지역주의에 기초한 정치공작으로 지역주의를 자극하고 있다. 둘째, 놀라운 시민의식을 보여주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 촛불시민들을 정치보스끼리 연합하면 알아서 따라오는 봉건적 동원대상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낡은 '3김 정치'를 부활시키려 하고 있다. 손학규가 이야기하는 제 7공화국이 기껏 이런 것인가?
손학규는 천만 시민들이 기껏 낡은 지역주의연합과 봉건적 3김 정치의 부활을 위해 촛불을 들었다고 생각한단 말인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고, 촛불시민에 대한 모독이 이보다 더할 수는 없다. 쇼이긴 하지만 다산 정약용이 유배 생활을 하며 불후의 명작들을 남겼던 강진의 토굴에서 다산 흉내를 내며 연구해 나왔다는 것이 기껏 낡은 지역주의 선동이고 3김 정치 흉내인가? 다산이 지하에서 통곡을 할 일이다.
주목할 것은 극복해야 할 한국정치의 심각한 문제로 지적받고 있는 지역주의가 최근 들어 약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해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텃밭이었던 영남, 특히 부산경남에서 야당 의원들이 다수 당선됐다. 이들의 심장부인 대구에서 김부겸 의원이 당선되는 쾌거를 이루기까지 했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호남에서도 새누리당 의원들이 복수로 등장했다. 게다가 이번 대선의 경우 절대적 지지로 청와대에 보낸 박근혜가 부끄러운 '지역의 수치'가 되고 새누리당이 제대로 된 대선후보를 내기 어려워 영남의 지역주의가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잘 비판했듯이, 손학규는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서 호의호식하다가 대선경선에서 가능성이 없어지자 민주당으로 옮기고 거기에서도 미래가 안 보이자 다시 탈당을 하는 등 전형적인 기회주의적인 철새 정치인이다. 그러나 기회주의도 정도껏 해야 한다. 아무리 권력이 중요해도, 지금과 같은 호기에 지역주의를 더욱 해체시켜야지 뉴DJP 연합을 통해 지역주의를 강화시키자는 것이 그래도 정치학 박사까지 받은 정치가가 할 이야기인가? 한마디도, '나라야 망가지든 말든, 내 정치생명이 연장되면 그만'이라는 망국적인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주목할 또 다른 사실이 있다. 그것은 뉴DJP 구상의 원조는 손학규가 아니라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라는 사실이다. 지난 해 12월 중순 박지원 국민의당 전 원내대표는 반 전 총장 측에서 사람을 보내 반 전 총장을 밀어주면 국민의당으로 올 터이니 "뉴DJP 연합을 하자"고 제의해 왔다고 밝힌 바 있다(물론 반 전 총장이 직접 제의한 것은 아니지만 이 같은 중대사항을 반 전 총장 모르게 제의했을 리는 없다.) 이 또한 충격적이고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반 전 총장은 평생 외교관으로 세계를 누볐고 유엔 사무총장으로 세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 아닌가?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국제적 비전을 가지고 대선경쟁을 해야지 기껏 낡은 '부족주의'인 지역주의에 기대어 권력을 잡아보겠단 말인가? 대한민국을 사무총장 시절 생생히 보았을 아프리카 부족 분쟁으로 이끌어가겠단 말인가? 그리고 손학규와 마찬가지로 21세기 대한민국 국민들을 추장이 결정하면 무조건 따라오는 아프리카 부족민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가? 그 많은 외교 경력이 부끄러운, 한심한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거친 말로 여론의 비판을 받던 시절 청와대 홍보수석이 "대통령은 21세기인데 국민이 19세기라 문제"라고 발언해 더욱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은 바 있다. 그러나 반기문, 손학규의 뉴DJP 연합론을 보면서 "촛불시민은 21세기인데 이들은 19세기"라는 느낌을 버릴 수 없다. 같은 70대이지만 21세기적 비전으로 젊은이들을 열광하게 만든 미국의 버니 샌더스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19세기적인 70대 정치인과 정치지망생이다.
반기문과 손학규는 촛불시위 현장에서 자유발언을 통해 정치학자들까지도 놀라는 탁월한 정치의식을 보여주고 있는 10대 청소년들의 눈빛을 보며 자신들이 창피하지 않은지 자문해 봐야 한다. 반기문과 손학규, 그리고 촛불시민들에게 묻는다. 우리가 촛불을 든 것이 죽어가는 지역주의와 낡은 3김 정치를 되살리는 뉴DJP 연합을 하기 위해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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