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는 게이미피케이션의 기본 개념과 국내외 현황들을 소개했다. 신년을 맞아 미국 버지니아텍의 송기봉 박사와 교육 게이미피케이션에 대한 다양한 이슈를 주제로 나눈 원격 화상 대담의 내용을 몇 회에 걸쳐 연재한다. 송 박사는 버지니아텍 교육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교육공학솔루션센터에서 지능형 튜터링 시스템과 게이미피케이션 등을 연구하고 있다.
송기봉 박사(이하 ‘송’) : 한국에서 교육 게이미피케이션을 연구하는 학자의 수가 적은편인데, 어떤 계기로 이 분야에 발을 들이게 되었나?
김상균 교수(이하 ‘김’) : 첫 시도는 2005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에는 게이미피케이션이란 용어는 없었다. 모교에서 강사를 하던 때인데, 학생들과 가졌던 술자리에서 들은 얘기가 마음에 박혀서 이 작업을 시작했다. 학생들은 대학에서 교수에게 지식을 배우고, 경험을 쌓아야 하는데, 정작 대학의 교수들은 연구를 잘하고 지식은 많을지언정 이를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힘, 즉 교육능력은 매우 부족하다는 의견이었다. 듣고 보니, 나도 논문 읽고 실험하며 내 연구는 열심히 했지만, 학생들을 가르치는 기법에 대해서는 큰 고민이 없었다.
송 : 가르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라면, 여러 접근이 가능했을 텐데 하필이면 왜 게임이었나?
김 : 학생들에게 어떤 수업을 원하는지 물었다. 재미있고, 함께 소통하며, 기억에 남는 수업을 원한다고 하더라. 대학 교수들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게 업이지만, 사범대 교수들을 제외하고는 교육학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가르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솔직히 주먹구구식으로 내가 내린 답이 게임이었다. 내가 원래 게임을 꽤 좋아한다. 몰입되는 재미, 활발한 소통, 강렬한 기억, 이 세 키워드를 다 담고 있는 게 무엇일지 고민하다가 게임으로 답을 내렸다.
송 : 지금 얘기한 재미, 소통, 기억, 이것들을 김교수가 생각하는 교육 게이미피케이션의 핵심이라고 보면 되는가?
김 : 맞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재미있게 참여하는 교육, 서로 의견을 나누고 도우면서 소통하는 교육, 다양한 이벤트와 경험으로 기억에 오래 남는 교육, 이 정도면 정말 멋진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송 : 그러면 2005년부터 교육 게이미피케이션을 연구하고 현장에 적용한 셈인가?
김 : 그렇다고 보기는 좀 어렵다. 제대로 교육 게이미피케이션을 연구하기 시작한 시기는 미국에서 용어가 정의된 2012년경이고, 그 이전까지는 좌충우돌로 여러 시도를 하면서 강의에 적용해봤다.
송 : 연구는 2012년부터 했지만, 그래도 수업에 적용한 기간을 보면 10년이 넘었는데, 수업에서 몇 가지 정도의 게이미피케이션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가?
김 : 제대로 헤아려본 적은 없다. 과목마다 다르지만, 전체적으로는 30여개 정도의 기법을 사용하는 듯하다.
송 : 꽤 다양한 기법들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다른 교수들이 쉽게 활용해볼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김 : 여러 학교에서 교수법 특강을 했을 때, 반응이 좋은 것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스타퀘스쳔(Star Question) 기법을 권한다. 시험보기 전에 학생들이 시험 문제를 스스로 만들어보는 방법이다. A3 용지를 나눠주고, 이를 삼등분하여, 맨 위에는 학생들이 각자 객관식 문제를 하나 만든다. 이 작업에 대략 20분 정도를 주면 적당하다. 문제가 완성되면, 이를 롤링페이퍼 방식으로 서로 돌려서 풀어본다. 예를 들어, 학생이 30명이라면, 한 학생이 만든 문제를 다른 29명이 돌려가면서 푸는 식이다. 그러면서 A3 용지의 중간 부분에 문제에 대한 평가를 상중하로 체크하고, 하단 부분에 문제에 대한 의견을 한줄 정도 적으면 된다. 30명 정도가 이렇게 진행하면, 문제를 만드는데 20분, 문제를 돌려서 풀어보는데 30~40분 정도가 소요된다.
송 : 비교적 간단한 방법으로 생각되는데, 어떤 효과가 있나?
김 : 학생입장에서는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다른 학우들의 문제를 풀어보면서 복습을 하게 된다. 이 과정이 끝나고 용지를 모두 걷어서 살펴보면 교수에게도 도움이 된다. 학생들이 잘못 이해하고 만든 문제는 없는지, 중요하게 강조한 부분인데 아무도 문제를 내지 않은 부분은 없는지 등을 살펴보면 된다. 학생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중요한데 놓친 부분이 있다면, 시험을 보기 전에 다시 설명을 해주면 좋다. 나는 학생들에게 시험을 치르도록 하는 이유가 등수를 매기는 데 있지 않다고 본다. 시험은 학생들의 이해도를 높이는 수단이다. 스타퀘스쳔으로 학생들이 문제를 만들어보고, 그 속에서 학생들이 놓친 부분을 교수가 찾아내서 시험 전에 설명해준다면, 시험의 결과가 제대로 나온다.
송 : 취지와 효과는 이해가 된다. 그런데 학생들이 스타퀘스쳔 과정에 열심히 참여하는가? 특별한 보상이 없어 보인다.
김 : 크게 두 가지의 보상이 제공된다. 첫째, 본인이 만든 문제에 대한 학우들의 피드백이 보상이다. 형편없는 문제를 만든 경우에는 피드백이 좋지 않겠으나, 그 역시 공부를 좀 더 하게 만드는 쓰디쓴 약과 같은 귀한 보상이다. 둘째, 학우들의 피드백이 좋고, 교수가 보기에도 우수한 문제를 몇 개 선별해서 실제 시험에 출제한다. 내 경우에는 전체 시험 문제 중 대략 10%정도를 학생들이 만든 문제로 채운다. 시험지에 학생의 문제를 실을 때는 출제자 이름을 ‘(C)홍길동’ 이런 식으로 문제 옆에 함께 표기해준다. 문제의 저작권을 명시하여, 출제자에게 자부심을 보상으로 주는 셈이다.
송 : 물질적인 보상은 없는가?
김: 중요한 질문이다. 스타퀘스쳔을 포함해서, 나는 교육 게이미피케이션 기법에서 물질적 보상을 가급적 배제하고자 한다. 물질적 보상을 교육에 적용하면, 결과가 매우 위험해질 수 있다.
송 : Lepper의 1973년 논문이 생각난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을 몇 집단으로 나눠서, 일부 집단에게 그림을 그려오면 상을 주는 방식의 실험이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불필요하게 상을 남발하여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의 내재적 욕구를 오히려 저하시킨 실험이었다. 이 실험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건가?
김 : 그렇다. 교육 게이미피케이션은 재미를 이용해서 학습자의 학습동기를 강화하게는 목적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학습자에게 다양한 요소의 보상이 제공되는데, 이때 외재적 보상, 대표적으로는 물질적 보상을 무분별하게 지급하면, 학습자가 가진 지식에 대한 호기심이나 탐구 과정의 재미를 오히려 훼손시킬 수 있다. 그리고 물질적 보상은 그 규모가 지속 또는 증가되어야 효과가 유지되는데, 교수 용돈으로 그걸 만족시켜주기는 어렵다.
송 : 스타퀘스쳔 이외에 여러 교과목에 범용으로 적용될만한 기법은 또 무엇이 있는가?
김 : 해당 교과목 내용의 일부를 제3자에게 가르치는 게임을 만들어보는 것도 매우 좋다. 예를 들어, ‘기업 윤리’를 배웠다고 가정하자. 학습자가 공부한 기업 윤리의 내용을 다른 학우들에게 가르치는 게임을 보드게임 형태로 간단하게 만들어보는 것이다.
송 : 게임을 만드는 과정이 쉽지는 않을 텐데, 게임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교수나 학생들이 이 작업을 할 수 있는가?
김 : 충분히 가능하다. 교수들의 경우 게임을 즐기는 비율이 높지 않으나, 대다수 대학생들은 여러 형태의 게임을 즐기고 있다. 그리고 앱게임이나 웹게임 형태로 개발을 하려면 소프트웨어 코딩 능력이 필요하지만, 보드게임은 종이에 그리고, 오리면 되는 형태여서 개발과정이 어렵지 않다. 물론 전문적으로 보드게임을 개발하려면 공부할 내용이 많지만, 상용으로 출시할 제품을 만드는 것은 아니므로, 본인의 게임 플레이 경험을 바탕으로 가볍게 만들어본다고 생각하면 된다.
송 : 학습적으로는 어떤 효과가 생기는가?
김 : 본인이 공부한 콘텐츠를 깊이 있게 분석해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예를 들어, 더하기, 빼기와 같은 간단한 수학공식을 초등학생에게 가르치는 보드게임을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게임을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공식의 작동원리, 실생활에 적용되는 사례, 실수하기 쉬운 부분 등을 다각도로 생각하게 된다. 즉, 게임을 만들면서 해당 콘텐츠를 요모조모 뜯어본다. 매우 좋은 복습 과정이다. 게임을 디자인하고 테스트하는 과정이 또한 꽤 재미있는 편이다. 이 과제를 수행한 학생들은 ‘매우 힘들었지만, 꽤 재미있고, 의미있는 경험이었다’는 피드백을 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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