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2016년의 촛불 집회는 혁명으로 기록될지 모른다. '11월 혁명'이라 명명될 수도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억눌렸던 불만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광장에서 분출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며 서서히 촛불과 박근혜를 설명하는 책이 나오는 중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부제의 <11월>(하승우 외 13명 글·노순택 외 7명 사진·류성환 외 9명 그림, 삶창 펴냄)은 촛불집회에 참여한 이들이 이 집회의 의미를 규정하고, 각지에서 일어난 집회의 현장을 기록한 공동 르포집이다.
책은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시각을 실었다. 밤의 촛불을 넘어 일상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하승우 녹색당 정책위원장의 글이 책의 방향성을 큰 틀에서 정의하지만, 여러 필진의 이야기는 각자의 시각으로 해석한 촛불 집회의 의미로 확대된다.
일부 이야기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쌍용차 해고자인 고동민은 촛불 집회 무대에서 거론된 여러 이야기가 지난 수년 간 기업주와 정부의 폭력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외침이었음을 거론한다. 그리고 촛불 집회가 크게 열린 광장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찾기 힘들었음을 이야기하며, 폴리스 라인 안에서 평화적 집회를 이어가자는 시민의 목소리에 불편함을 고백한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적녹보라의제행동센터장 나영은 해방된 광장에서도 여성을 대상화하는, 어쩌면 '그들'에게는 사소할 수 있을 법한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논란이 된 DJ DOC의 '수취인분명'에 관한 페미니즘적 시각을 정리하고, 여성을 일방적으로 대상화하는 박근혜 비판 패러디의 문제점을 상기한다.
책은 글과 사진, 그림을 통해 이번 집회에서 중요하게 거론된 다양한 이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대변하고자 한다. 농민은 백남기를 이야기하고, 청소년은 10대의 입장을 전달한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른 동화작가는 예술인들의 광화문 텐트 농성을 기록했고, 교사는 교단에 서는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는 유일한 방법이 광장에 나서는 것이었음을 강조한다.
예술인들의 박근혜 패러디 작품을 모아두었고, 전국 곳곳의 다양한 모임이 낸 시국선언문을 정리해두었다는 점도 이 책의 보관 가치를 더한다.
하승우 정책위원장은 책에서 촛불 이후를 위해 광장에 모인 시민이 꾸준히 논의해야 할 주제를 '좌표'로 정리했다. 밀실정치 타파, 재벌 개혁, 노동자 권력 강화, 대의 민주주의 제도 강화 등이 거론된 좌표다. 그는 "우리가 정말 살기 좋은 세상,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 이제 그런 좌표들을 보며 부지런히 걸어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11월의 뜨거웠던 촛불이 박근혜 탄핵을 넘어 진정 큰 변화로 이어지는 기폭제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인지도 모른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어쩌면 긴 여정이 될 변화에의 발걸음을 잠시 쉬며, 중간 점검을 하는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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