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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 환자'가 찾아왔다…"세상에 대한 관심 멈추지 말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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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 환자'가 찾아왔다…"세상에 대한 관심 멈추지 말아요"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며

"한 끼에 한 가지 반찬이라도 새로 만들어서 드세요. 냉장고에 넣어 둔 반찬 꺼내서 몇 끼고 계속 드시지 마시고요. 몸이 묵어서 생긴 병인데, 자꾸 묵은 음식만 드시면 몸이 새로워질 수 없어요."

"혼자 먹자고 매끼 그러기가 쉽나. 누가 와야 상도 차리지. 귀찮기도 하고, 그냥 한 끼 때우는 거야. 선생도 나이 먹어봐. 뭐 맛있는 것도 없어."

"그래도 가능하면 신선한 음식 자주 드세요. 춥다고 댁이나 노인정에만 계시지 말고 바깥 공기도 쐬고, 햇볕도 약이다 생각하고 쬐세요. 귀찮더라도 환자 스스로 챙길 건 챙겨야 같은 치료를 해도 효과가 좋습니다."

오래된 동네에 자리하고 있다 보니, 한 곳에서 4~50년씩 살아오신 환자를 자주 봅니다. 그 중에는 자식들 다 출가시키고 혼자 지내는 분이 꽤 많습니다. 흔히 1인 가구하면 젊은 층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들도 엄연히 그 단어를 공유하지요.

건강관리나 취미생활을 열심히 하고, 친구와의 관계도 자주 가지면서 활기차게 생활하는 분이 있지만, 생활 궤적이 단조롭고 세상으로부터 조금 단절된 분도 있습니다. 이러한 삶의 모습은 몸과 마음의 건강에도 그대로 반영됩니다. 후자는 시들어 가는 꽃처럼 서서히 허물어져 가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그래서 이런 분이 오시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더 하게 됩니다. 그러다 핀잔을 듣기도 하고, 때론 갑작스런 눈물을 짓기도 하지요. 어렵더라도 이제 더는 붙들고 있어도 의미가 없거나 어쩔 수 없는 일에서 멀어지는 연습을 하시라 말씀드리고, 인생 다 산 듯 살지 마시라고 합니다. 생사의 문제는 아무도 모르니 살아 있는 동안은 재밌고 건강하게 사셔야 하는데, 과거에 꽉 잡혀 있거나 내일의 기대가 없으면 오늘이 너무 괴롭거나 심심하지 않겠냐고 말합니다.

그러면 '이 나이에 뭘 하냐'고 묻는 분들이 있지요. 그럼 몸과 마음에 새로움을 채우시라고 말합니다. 먼저 늘 먹던 것, 혹은 묵은 것만 먹지 말고, 안 먹어 보던 음식을 먹어보고 신선한 음식을 자주 드시라고 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자체가 삶의 즐거움이고, 신선하고 좋은 음식은 몸과 마음에 활기를 더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공식품은 가장 묵은 음식이면서 영양이 왜곡되거나 결핍된 것이므로 가능한 삼가시라고 합니다.

다음으로는 세상을 향한 관심을 멈추지 마시라고 말합니다. 스스로 정해놓은 삶의 틀 안에서 이미 다 산 듯 무관심하게 쳇바퀴 돌 듯 시간을 보내지 말고, 내가 모르던 것 혹은 잘 안다고 생각하는 분야에서 새로운 경지를 맛보기를 주저하지 마시라고 합니다. 책을 읽든, 새로운 운동이나 외국어를 배우든, 봉사활동을 하든 말이지요. 누가 알아주거나 인정받음의 문제가 아니라, 하루하루의 삶이 멈추지 않고, 가능하면 스스로가 보기에 괜찮은 하루였다고, 괜찮은 일 년이었다고 느끼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하면 수긍하시지요.

이렇게 한참 대화를 하다보면, 때론 환자에게 비친 저 자신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스스로 타성에 젖어서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며 그냥 살아가는 것은 아니냐는 생각이 들지요. 그러고 보면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진료라는 교집합을 통해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는 관계인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에 주어진 무거운 숙제로 인해 연말연시 기분은 나지 않지만, 새로운 한 해는 시작되었습니다. 올 한해 어떤 일들이 나와 세상에 벌어질지에 관한 기대가 있는지요? 만일 없다면 그럴만한 일을 만들기 바랍니다. 건강은 물론이고 기대가 있는 삶과 없는 삶은 1년이란 시간이 흐른 후 꽤 차이가 날 테니까요.

아직 미련이 남은 지난 시간은 잘 보내 주시고, 새로운 시간을 잘 맞이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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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생각과 삶이 바뀌면 건강도 변화한다는 신념으로 진료실을 찾아온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텃밭 속에 숨은 약초>, <내 몸과 친해지는 생활 한의학>, <50 60 70 한의학> 등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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