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리처드 홀브루크(Richard Holbrooke) 미 아프간·파키스탄 특별대표가 방한했다. 홀브루크 특별대표는 서울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 정부 고위 인사들을 접촉했다. 그를 만난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아프간 등 지역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을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외교가에서는 북핵 위기인 지금 대북특사가 아닌 아프간특사가 방문한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한다. 지난 4월 2일 런던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 대통령은 아프간 재건에 관한 지원을 공식 요청한 바 있다.
'지원'은 무엇이고, '실질적인 도움'은 무엇일까. 샘물교회사건으로 철수한 이후 다시 파병으로 이어질지가 관심사가 될 것이다.
오바마의 최우선 순위는 파키스탄-아프간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직후 자신의 외교안보 정책 사안 중 최우선 순위인 파키스탄-아프간 전략에 대해 재검토를 지시했다. 그리고 3월 27일 총체적인 새로운 아프간 전략구상이 발표됐다. (그간 미국의 파키스탄-아프간 정책구상에 대한 논의의 흐름은 필자의 2009년 2월 17일자 프레시안 기고문 "오바마의 새 아프간 전략과 한국의 대응" 참조)
오바마는 발표에서 "아프간 상황은 갈수록 위험해지고 있다. … 아프간 정부가 탈레반에 의해 무너지거나 알카에다가 계속 도전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아프간에 기지를 둔 테러범들이 다시 미국인들을 죽이려 나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미국은 알카에다를 반드시 무너뜨리고, 패배시키고, 해체할 것(We have a clear and focused goal to disrupt, dismantle, defeat al Qaeda)"이라는 의지를 보였다. (뉴욕타임스 3월 27일자 재인용)
이후 4월 9일에는 정규국방예산과는 별도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비용으로 834억달러를 의회에 추가요청했다. 이로써 9.11 테러 이후 이라크·아프간 관련 전비는 총 1조달러에 달하게 됐다.
오바마 전략구상의 첫 번째 핵심은 추가파병
오바마는 이미 결정한 1만 7000명 병력 증원 외에도 공수여단 4000명을 아프간 보안군과 경찰 등 훈련지원을 위해 추가로 파병하겠다고 밝혔다. 추가파병이 완료되면 아프간에는 약 6만명의 미군이 주둔하게 된다. 오바마의 새 군사전략은 테러와의 전쟁의 당초 목표였던 알카에다, 탈레반 소탕에 전력을 집중하되 아프간 군을 강화하는 데 방점이 찍혀있다.
"우리는 아프간 보안군 규모를 늘리고 훈련시키는 데에 강조점을 옮길 것이다. 그럼으로써 보안군들이 종국에는 자신의 나라를 지키는 데 앞장 설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러셀 페인골드(Russell Feingold) 민주당 상원의원은 "파키스탄에 대한 적절한 전략을 마련하지 않은 채 아프간에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은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부시의 전략과 마찬가지라는 극단적 비판도 있다.
두 번째는 파키스탄과의 공조체제 구축 및 이에 상응하는 인센티브 구상
오바마는 파키스탄 북부에서 사실상 독자적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탈레반 소탕을 위해 파키스탄 정부의 대응 능력 제고를 요청하고, 이를 지원하며, 상응하는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현재 미국은 파키스탄군 지원을 위해 70명 이상의 군사고문단 등을 파견해 비밀리에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접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미육군 특수부대 요원 출신의 이들은 미 중부 사령부와 특수작전 사령부의 지휘를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
"파키스탄에 대해 향후 5년간 매년 15억달러의 경제 개발원조를 인가하는 내용을 담은 존 케리(John Kerry), 리처드 루거(Richard Lugar)가 공동발의한 초당적인 법안을 통과시키도록 의회에 요청한다." 백악과의 이야기다.
하지만 비판이 있다.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 아나톨 리벤(Anatol Lieven) 교수는 4월 8일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고한 '미국의 문제는 파키스탄'이라는 글에서 "미국이 1년에 15억달러를 지원하기로 한 약속이 막대한 규모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파키스탄 인구가 1억 7천만명인 점을 고려하면 1인당 지원액은 8달러에 불과해 어떤 변화도 가져올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다른 비판은 파키스탄 정부가 이슬람법이 적용되고 과격분자들이 점거한 북부 스와트 계곡(The Swat Valley)의 탈레반 지도자들과 사실상 화해상태이기 때문에 돈을 쏟아부어봐야 별다른 추가 실익이 없을 것이라는 다른 각도의 비판이다.
세 번째는 아프간에 대한 민사작전의 전면적 확대
이는 이라크 안정화정책에 대한 '최근의' 성공 사례에서 비롯됐다.
"안보, 기회, 정의를 향상시키기 위해서, 카불 뿐 아니라 아래위 모든 지역에서 농업전문가와 교육자들, 기술자들, 변호사들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아프간 정부가 국민들에게 봉사하고 마약에 찌들지 않은 경제를 만들 수 있도록 우리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민간인들이 그곳에 가도록 명령하는 것이며, 동맹국, 유엔, 국제지원조직 등으로부터 민간지원을 요구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오바마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네 번째는 우방국들의 협조를 얻겠다는 것
오바마는 3월 27일 발표를 통해 우방국들의 협조를 요청했다.
"우리 파트너들, 나토동맹국들로부터 우리는 단순히 군대만을 얘기하진 않을 것이다. 도리어 아프간 선거를 지원하고, 아프간 안보군을 훈련시키며, 아프간 사람들을 위해 민간지원을 하는 등의 능력들을 추구한다. … 유엔과 함께 그 지역의 안보에 이해관계를 가져야 하는 모든 나라들을 모아 새로운 아프간과 파키스탄 협의그룹(Contact Group for Afghanistan and Pakistan)을 만들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 나토동맹국들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걸프만 국가들, 이란, 러시아, 인도, 중국 등도 포함된다."
그후 G20정상회의(4월 2일 런던), 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4일 스트라스부르), 유럽연합 정상회담(5일 프라하) 등의 회의에서 새 아프간 전략 실행을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확보하고자 했다.
4월 4일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담에서는 '아프간에 대한 정상선언(Summit Declaration on Afghanistan)'을 통해 공조의 필요성은 확인했다.
다만, 추가파병의 규모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었다. 지난해 1만 3000명을 파병한 유럽 회원국들은 추가 파병은 하되, 올 8월 아프간 대선을 앞두고 치안유지 지원용 단기파견 병력 3000명과 아프간 군경 훈련교관 1400∼2000명으로 국한하는 데서 타협점을 찾았다.
한국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단 미국과 국제사회의 반응은 총론의 측면에서는 환영할 수 있다. 다만 구체적인 협조와 업무분담이라는 측면에서는 제한적이다. 문제는 우리의 외교안보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는 것이다.
첫째, 오바마의 핵심구상 네 가지 중 병력증파, 우방국협조, 민사작전 확대 등이 우리와 관계될 수 있다. 미국은 이라크 아르빌 지역이라는 특정지역을 전면적으로 전담한 상태에서 각종 민사작전을 통해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한 한국군의 경험을 높이 평가한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한 미측의 요구는 실제적일 수 있다.
둘째, 외교안보정책과 이명박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이 어느 수준까지 공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중대한 시험대라는 측면이다. 이라크 파병을 통해 북핵문제에 있어서 주도권 확보를 꾀했던 노무현 행정부의 선례가 있다.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라인의 핵심 실무자로 일했던 박선원의 회고다. "10월 18일 국가안전보장회의의 명의로 이라크 파병 방침이 내려지고, 이틀 뒤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의 '북한에 대한 서면안전보장 제공' 용의가 표시된 것은 상호필요를 존중한 결과였다(박선원, 미래지향적 동맹을 향한 긴장과 협력. 역사비평 2009년 봄호 195면)."
외교적 차원에서 연계정책과 상호주의는 언급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박선원의 논문은 이를 본문에서는 시인하고, 각주에서는 부정하는 형식을 택했다.
박선원의 글과는 달리, 그 이후 네오콘이 주도하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정책은 한반도를 핵 위기로 몰아넣었고, 결과적으로 북핵문제에 있어서의 당사자적 지위확보와 이라크 파병을 연계시키고자 했던 노무현 행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은 실질적으로는 실패하고 말았다는 것이 필자의 일관된 입장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명박 행정부의 대북강경·무시정책과 오바마 행정부의 아프간정책 사이에 어떤 연계와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지가 궁금해진다.
셌째, 미국의 새로운 4개념 국방정책(QDR)의 수립, 게이츠(Robert Gates) 국방장관이 언급한 선제공격론과 1·4·2·1전략의 폐기, 중동과 한반도에서 동시에 두 개의 전쟁을 수행할 수 있고 승리로 이끌 수 있다는 기존 미국의 국방정책 변화가 주한미군에 미칠 영향력이다.
시험대에 든 이명박 정부의 외교전략
노무현 행정부는 한미전략대화 형식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 개정 없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하여 더 이상 주한미군이 대북억지력을 떠나 동북아 신속기동군으로 활동할 수 있는 조약상의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그렇다면, 오바마 행정부와 이명박 행정부 사이에 동북아 안정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주한미군의 이동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때 과연 우리 행정부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점들이 오바마의 아프간에 대한 새로운 전략구상과 한반도와의 관련성이 될 것이다.
오바마의 새로운 전략은 곧 이명박 행정부의 새로운 외교안보정책을 요구한다. 단순한 미국의 증파요구에 어느정도 호응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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