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비정규직법안 처리와 관련해 '회심의 카드'로 꺼냈던 '30일 직권 상정' 요청이 김형오 국회의장의 난색 앞에 사실상 무산됐다. 민주당은 여전히 요지부동인 상황이어서 당 내에서조차 불만의 목소리가 들리시 시작했다.
안 원내대표는 29일 의원총회에서 "오늘 협상이 타결되지 않으면 직권상정이라도 해서 내일 통과시켜 달라고 국회의장에게 하소연을 하겠다"고 말한 직후 의장실을 방문했지만 김형오 의장은 "대화는 내일까지도 돼야 하는 상황"이라며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고 사실상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김 의장은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지금과 같은 태도로 임해 달라"고 대화를 강조했다.
현재 민주당 소속 추미애 환경노동위원장은 "유예안은 상정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고, 법안이 법사위로 넘어간다고 해도 민주당 소속 유선호 위원장이 버티고 있어 정상적인 절차를 통한 비정규직법안 처리는 난망한 상태다.
상황이 뒤틀리자 한나라당 '집안'에서도 불만이 나왔다. 안홍준 의원은 안 원내대표가 의장을 방문하겠다고 밝힌 직후 의총에서 "한나라당이 단독 강행 처리를 하거나, 차선책이라도 (직권 상정을) 하게 되면 부작용은 한나라당이 지게 된다"며 "직권상정보다는 합의 처리를 위해 더욱 노력해 달라는 요구도 있다"고 말했다.
'5자회담' 참석자인 환경노동위원회 간사 조원진 의원은 비공개 의총에서 "현재 우리는 민주당이 답을 내놓길 기다리고 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고, 김성태 의원은 아예 "한나라당도 로텐더 홀에 나와서 (법안을) 처리해 달라고 피켓 시위라도 해야 한다"고 강경 방침을 주문했다.
안 원내대표가 의총에서 "내일 비정규직 법안은 꼭 통과돼야 한다"며 "내일까지 먼데 가지 말고 (여의도) 근처에서 대기해달라"며 호기롭게 '비상 대기령'까지 내렸지만 현재까지 뾰족한 수는 보이지 않는다.
유예하고 법 바꿔야 VS 유예하면 '5자회담' 탈퇴할 것
한편 '5자 회담'의 틀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타결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이날 열린 회의에서도 한나라당과 노동계는 첨예한 대립을 이어갔다.
노동계의 주장은 비정규직법은 시행되도록 두고, 법안의 근본적 해결 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5자회담 틀을 계속 이어가자는 것이다. 반면 한나라당은 법 시행을 2년 유예하고 유예기간 동안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자는 입장이다.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날 "자꾸 유예를 잡고 늘어지는데 유예하게 되면 협상을 끝내버리는 것 아니냐"고 불만을 표했고, 조원진 의원은 "대량 해고가 눈에 보이는데 그냥 시행할 거냐. (법을) 바꿔도 유예한 후 바꾸자는 것"이라고 맞섰다. 이에 임 위원장은 "언제부터 그렇게 저소득층과 비정규직을 걱정했냐"고 꼬집기도 했다.
양대 노총은 이날 회담에 앞서 추미애 환노위원장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시행 유예안이 합의될 경우 5인연석회의 탈퇴를 포함한 모든 대응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한국노총 장석춘 위원장은 "한나라당과 정책연대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한나라당은 비정규직법안 2년 유예, 300인 이하 사업장만 적용,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기금 1조 원 배정을 최종안으로 제시한 상태다. 이날 조 의원은 의총에서 "2년 유예한다면 비정규직법안을 파기할 수 있다"는 의사까지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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