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째 겨울이다. 잘 다니던 번듯한 직장에서 거리로 밀려난 지…. 2011년 뜨거웠던 여름 삼성 에버랜드에서 일했던 노동자 조장희 씨는 해고됐다. 삼성은 조장희 씨에게 횡령 등 죄목을 들이대면서 해고했지만, 실상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는 이유가 그의 해고 이유였다.
2011년 삼성 계열사인 에버랜드에서 처음으로 민주노조가 만들어졌다. 권위적인 조직문화, 일하는 직원들을 위하지 않고 회사만을 위했던 곳.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해보자, 좀 더 사람다운 대우를 받아보자는 이유로 4명의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병철, 이건희, 이재용, 3대에 걸친 삼성의 경영과정에서 노동조합은 결코 만들어서는 안 될 금기시된 조직이었다.
금기를 깬 4명 중 조장희 씨는 주동자로 지목되어 10여 년을 일해 왔던 정든 회사를 2011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조장희 씨 외에 3명의 노동자에게도 가혹하긴 마찬가지였다. 성희롱 누명을 쓴 채 징계를 당하고, 몇 년째 임금은 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삼성은 2016년 또다시 성희롱을 이유로 김영태란 노동자를 해고했다. 2011년 노동조합을 만든 4명의 노동자 중 2명은 해고됐고, 2명만 남았다. 삼성에서 첫 민주노조를 만든 대가는 혹독했고,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숨죽인 듯 살아남거나, 거리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삼성식 노동자 관리 전략이었다.
해고, 고소고발, "살아 움직이지 마라"
이제 입에 담기조차 구태의연하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전략은. 이병철 선대 회장의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노조는 안 된다'는 말에 따라 삼성은 무노조 경영전략을 유지해오고 있다. 삼성은 그 가르침에 따라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노동자들의 입을 틀어막았다. 휴대전화 위치추적, 감금, 미행, 감시, 협박, 납치 등의 케케묵은 고전적 수법은 이미 수차례 사회적으로 언급되어 입이 아플 지경이다. 2013년에는 정의당 심상정 의원에 의해 '2012 S기업 노사전략'이라는 문건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문건은 기존의 전근대적인 탄압 방식을 벗어나 좀 더 세련된 방법을 제시했다.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이들이 있으면 긴장하지 말고 신속히 대응하라, 복수노조를 만들고, 감시를 지속하라. 회유하라. 그래도 노동조합을 만들면 고소·고발을 하라. 경제적 어려움을 줘라.'
철저히 통제와 억압의 시선에서 쓴 그 문건은 노동자들에게 움직일 틈을 주지 말라는 경고였다. 하지만 그 틈을 뚫고 송곳처럼 비집고 나오는 이들이 있었다. 삼성 SDI의 김갑수 씨가 그랬고, 강재민 씨가 그랬고, 삼성전자의 박종태 씨가, 삼성 노동조합의 조장희 씨, 김영태 씨, 박원우 씨, 백승진 씨가 그랬다. 그들은 노동권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삼성에서 밀려났다. 조직에서 배제된 이들의 삶 역시도 삼성은 철저히 관리했다. 부당하다 요구하며 거리에서 선 이들은 동료들에게 ‘노동권을 요구하면 저렇게 되는구나’라는 본보기가 되었다. 배제된 삶을 본 동료들을 더욱 침묵하고, 권리에 대한 요구는 사라졌다. 노동조합을 하려던 한 명, 한 명에게 가해진 폭력과 무언의 압력은 전 조직으로 확대되었다.
한국 최대의 기업이라는 삼성에서 노동자들이 민주적으로 움직이고, 권리를 요구하는 노동조합 하나 없다는 것은 삼성이 얼마나 비민주적이고 꽉 막힌 조직인지를 확인시켜주었다. 세계적으로 사회적인 책임과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들이 있지만 삼성은 여전히 과거의 체제에 머무르고 있다. 한해 몇조 원의 광고비를 쏟아부어 친근하고, 신선한 기업 이미지만을 부각하고 있지만, 노동조합을 만들려는 이들의 삶에서 비추어 본 삼성은 여전히 구태의연하고, 불통인 기업일 뿐이다.
조장희의 6년
불통 삼성에서 밀려난 조장희 씨의 6년은 고된 시간이었다. 우선 경제적 어려움이었다. 해고 싸움을 위해 안정된 일을 잡을 수가 없었다. 조장희 씨는 해고 싸움을 하며 근근이 일용직으로 일을 했다. 6년 동안 지속된 경제적 어려움으로 조장희 씨 가족 모두가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그간 살던 집에서도 이사를 하고, 월세 보증금이 없어 가족과 지인들 모두 발을 동동 굴러야만 했다.
그런 자신의 상황을 지켜보는 조장희 씨의 마음도 무너졌다. 밤에 잠을 못 이루기 일쑤였다. 우울증으로 상담을 받기도 했다. 회사는 문제 있는 한 명을 도려냈을 뿐이지만 도려내진 사람의 삶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나마 6년 동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법원에서 조장희 씨의 해고를 무효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행정법원에서, 고등법원에서 조장희 씨에게 해고무효 판결이 내려졌다. 법원은 S그룹노사전략이라는 노조파괴 문건은 삼성이 작성한 것이 맞고, 해당 문건대로 부당하게 해고되었다고 봤다.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다는 그 실낱같은 희망 하나로 6년의 시간이 흘렀다. 누군가는 고통의 시간이지만 삼성은 핸드폰 전자산업으로 그야말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갤럭시 시리즈의 호황으로 연일 사상 최대 흑자를 뽑아냈다. 이건희에서 이재용으로 승계를 위해 국민연금을 마음대로 주물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등, 한국경제를 쥐락펴락했다. 삼성은 정치권에 온갖 로비를 해대며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했다. 삼성식 지배방식은 자신들의 회사를 넘어서 한국사회로 스며들었다. 최근 온갖 비리에 연루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역시도 마찬가지다.
올해의 남우주연상은 어리바리 연기의 대가 이재용에게로
10월 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다. 국민들의 선거로 뽑은 대통령은 실상은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음이 밝혀졌다. 비선실세 농단으로 인해 한국사회는 끔찍한 몸살을 앓고 있다. 최소한의 민주주의적 가치는 사라지고, 대통령의 무능력한 정치, 비선실세, 부역자들의 불법을 통해 정의는 사라졌다. 그 사건의 최대의 부역자이자 공범 중 하나가 바로 삼성이었다.
삼성은 미르재단, K스포츠 재단에 200억이 넘는 돈을 비자금으로 바쳤다. 최순실의 딸인 정유라를 위해 십 수억이 호가하는 말을 선물하고, 최순실 일가의 생활비로도 수많은 돈을 지불했다. 최순실에게 직접 건넨 돈, 승마협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건네진 돈 등을 모두 합하면 약 500억 원이 된다.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기득권과 권력층에 뇌물과 비자금을 바친 것임에도, 삼성은 자신들은 공범이 아니라 피해자인 양 행동하고 있다.
재벌 청문회에서 "죄송하지만,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라며 온종일 변명만을 늘어놓던 한국 일류기업 승계자 이재용은, 어리바리 연기로 올해 남우주연상을 받기에 충분할 정도였다. 최순실을 모르고, 돈을 얼마나 냈는지도 모르고,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모른다는 말로 일관하는 이재용이었다. 하지만 삼성이 최순실 일가를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지불했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이 삼성의 특혜를 도왔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국민의 소중한 노후 자산 국민연금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6000억 원이나 손해를 봤다.
일류가 되기 위해 일삼던 편법과 불법의 사실이 전 세계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직업병 문제를 외면하고, 무노조 경영으로 노동자들에게 가혹했던 삼성이 권력층에게는 한없이 관대했다.
불법, 편법, 정의가 사라진 시대의 봄을 기다리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특검이 시작되었다. 특검은 삼성을 정조준하고 있다. 그들이 받은 특혜와 이익을 철저히 파헤치며 삼성의 비리를 폭로하려는 준비를 하고 있다. 몇십 년 동안 철옹성처럼 굳게 잠겨있던 삼성의 불통정치과 정치·사법에 부역했던 역사가 철저히 밝혀지고, 그 책임을 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한국사회 민주주의의 새 장을 열고 있다. 그들이 망쳐버린 민주주의의 역사를 되돌리기 위해 시민들은 거리로 나오고, 분노를 외치고 있다. 민주주의의 요구들이 거리를 메우며 정의를 요구한다. '박근혜-최순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좀 다른 사회를 꿈꿔야 하지 않겠냐는 그 바람일 것이다.
마찬가지다. 삼성의 문제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단지 현재까지 있었던 삼성의 불법, 편법만을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 기업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가?'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사적 이익만을 극대화 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영역에서 기업의 역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과 답을 찾아야 하는 시기이다. 삼성의 편법, 불법에 대한 수사와 더불어 지금까지 쌓아온 케케묵은 삼성식 질서를 재편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생명을 우습게 알고, 노동권을 뭉개던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 그것이 삼성이 더 좋은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길이다.
특검은 삼성의 죄를 수사하고 있다. 그 결과에 따라 삼성은 그 죗값을 치룰 것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삼성이란 기업에 대한 단죄를 넘어서서,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조직의 문화를 바꾸는 것이다.
12월 29일, 삼성 노동조합 조장희 씨의 해고무효소송 대법 판결을 앞두고 있다. 조장희 씨가 다시 정든 일터로 돌아가 노동자들의 권리와 노동조합의 정당함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삼성이란 경직된 조직에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는 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가, 조직 문화와 시스템을 바꿀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삼성이 바뀌는 길이라 믿는다. 삼성의 적폐를 청산해야 하는 시기, 대법원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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