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후보 지지율 선두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연설을 보고 든 느낌이다. 문 전 대표는 26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성장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제2차 포럼'에서 '강한 안보, 튼튼한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이 자리에서 문재인 대표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안보 적폐가 쌓여왔다며, "4가지를 뿌리 뽑겠다"고 말했다. 안보 무능과 무책임, 방산비리, 국방의무와 병역의 불공정, 사악한 색깔론과 망국적인 종북몰이가 바로 그것들이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고 또한 마땅히 극복해야 할 사안들이다.
하지만 "다년간 준비해왔다"는 그의 안보 비전에는 수긍하기 힘들다. 문 전 대표는 첫째로 "북한의 도발을 막을 준비가 돼 있다"며 "한미확장억지력을 구축하고 북한을 압도할 독자적 핵심전략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한국형 미사일 방어 체계(KAMD)와 북한 핵에 대한 초전대응 능력인 킬 체인을" 앞당기고, "감시정찰정보역량과 정밀타격능력을 키우는 등 자주 국방력을 강화해 전시작전통제권을 조기 환수하도록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대대적인 군비 증강 의지를 밝힌 것이나 다름없는 발언이다.
그런데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한미확장억지력 구축은 최대 난제인 사드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한미간에 논의되어온 한미확장억지력은 세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핵우산과 재래식 군사력, 그리고 미사일 방어체제(MD)가 바로 그것들이다.
이 가운데 미국이 가장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이 바로 MD이고, 그 일환으로 추진되어온 것이 바로 사드 배치이다. 이는 곧 사드 배치를 유보해야 한다는 문 전 대표의 평소 지론과 상당한 긴장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다. 한미확장억지력 구축을 북한의 도발 억제의 최우선 과제로 밝히게 되면 대미 발언권이 약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KAMD와 킬체인 조기 구축 등을 통해 "북한을 압도할 독자적 핵심전력을 구축하겠다"는 것 역시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고가의 무기를 조기에 확보하려면 국방비를 대폭 늘려야 한다. 이는 곧 복지와 교육 등 민생과 직결된 예산 확보의 어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군비증강 계획이 문 전 대표가 둘째로 밝힌 "북핵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돼 있다"는 비전과 모순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북핵 문제의 핵심은 안보에 있다. 우리에겐 '안보 위협'이지만, 북한에겐 거의 유일한 '안보 자산'이다. 그런데 문 전 대표의 말대로 한미확장억지력도 구축하고 북한을 압도할 독자적 핵심전력도 구축하려고 하면 북핵 문제 해결은 더욱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북한은 한미 동맹에 대한 군사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핵 무장에 더욱 집착할 공산이 커진다. 그 결과는 바로 한반도 군비경쟁의 격화이다.
가장 아쉬운 부분은 문 전 대표의 연설에서 '평화협정'이나 '평화체제'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는 데에 있다. 기실 '강한 안보, 튼튼한 대한민국',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는 유력한 길은 한반도 평화체제 프로세스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화체제 프로세스는 한국 국방의 가장 큰 적폐라고 할 수 있는 '고비용, 저효율'을 '저비용, 고효율' 구조로 바꿀 수 있는 함의를 품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환수의 최적 환경도 평화체제 프로세스의 진전에 있다. 무엇보다도 북핵 문제 해결의 실마리와 비전도 바로 평화체제에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가 대한민국의 최적의 안보를 실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 셈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차기 대통령의 가장 큰 자질 가운데 하나는 평화체제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비전이 되어야 한다. 평화체제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수는 없지만, 평화체제 없이는 거의 아무것도 이룰 수 없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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