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명단에 <프레시안>이 '좌파 성향 언론'으로 분류돼 포함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간 박근혜 정권이 비판적인 콘텐츠를 생산하는 언론사 등에 불이익을 주려 했다는 풍문이 사실로 확인된 셈이나 마찬가지다. 이 블랙리스트의 작성, 문화체육관광부의 행정 운영에 적용시킨 주체는 청와대로 의심된다.
문체부는 신문과 인터넷 언론 정책을 담당하는 주무부처다. 특히 언론인 저술 지원, 콘텐츠 지원 등을 담당하는 언론진흥재단은 문체부 산하 재단이다. 문체부, 나아가 청와대가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밉보인 언론사'에 대한 지원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광고 역시 마찬가지다.
<프레시안>을 포함한 언론사들을 '좌파 성향 언론'으로 찍어 관리하려 했다는 의혹은 특검의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문제다. 현재 박영수 특검팀은 블랙리스트 작성 등에 관여, 직권남용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자택과 문체부 등을 압수수색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 상황이다. 특히 '최순실 국정 농단'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을 등에 업은 민간인들에게 '놀이터'나 다름없었던 문체부에서 발생한 일이기에 더욱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
SBS 기자 "언론사는 프레시안, 한겨레, 오마이뉴스, 한국일보 등"
해당 블랙리스트를 입수해 최초 보도한 SBS 최우철 기자는 27일 자사 프로그램 <박진호의 시사전망대>에 나와 문건 내용을 상세하게 밝혔다. 최 기자는 넉 장 짜리 하나와 두 장 짜리 하나로 묶인 문건을 들고 나와 "문체부의 사업 과정에서 어떤 사람에게 돈을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돈을 줘서는 안 되는가를 상세하게 이유를 달아서 밝혀놓은 문건"이라고 했다.
언론사 가운데는 "한겨레, 한국일보, 경향신문, 미디어오늘,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시사인, 그 다음에 한겨레21까지 포함해서 총 언론사 7곳이 좌파 성향 언론사다, 이렇게 명시가 돼있다"고 했다. 해당 언론사 이름 옆에는 언론사에 지원하고 있는 명목들이 적혀 있다. 최 기자는 "이른바 돈줄을 끊을 방법을 궁리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했다.
문건에는 교수, 시인, 안무가 등 예술가 인사 34명과 영화사, 극단 등 43개 단체, 그리고 이들 단체와 인사들에게 예산을 준 심사위원 14명을 포함해 91개의 이름이 등장한다.
최 기자는 "가장 이름이 많이 등장하는 게 문재인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전 공동대표, 그 다음에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라며 "야당 정치인 지지 선언에 이름을 올렸던 것, 이것이 가장 크고 이들과 예를 들어서 책을 같이 썼다, 이런 식의 조금이라도 함께 행동한 이력이 있으면 명단에 바로 포함이 돼있다"고 했다.
'블랙리스트' 대상자가 받는 불이익에 대해 "아주 심각한 부분"이라며 "2013년도 예산이 얼마였는데, 2014년도에 삭감되거나 지원을 끊었다, 부속 문건에는 그런 표현까지 등장한다"고 했다. 일례로 2012년 개봉한 영화 <남영동 1985>를 배급한 '엣나인필름'의 경우, 2013년에는 3400만 원을 지원받았으나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후에는 한 푼의 지원도 못 받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최 기자는 "문화체육관광부 돈이 나간 것만 이렇게 정리한 것"이라며 "(공개된 명단이)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각 부처별로 이것들이 다 작성됐다면 규모는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진룡 "김기춘이 혀를 '쯧쯧' 차며 주도"…박근혜도 범죄에 가담했을까?
이 블랙리스트는 어떻게 작성됐고, 어떻게 적용됐을까? 관련해 박근혜 정부 초반 장관을 지냈던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증언이 나왔다. 김기춘 전 실장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및 정권 비판 문화계 인사 등에 대한 '찍어내기' 작업을 주도했다는 것이다. 유 전 장관의 증언은 매우 구체적이다.
유 전 장관은 26일 저녁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리스트를 본 거는 퇴임하기 직전인 2014년 6월경으로 기억을 한다"고 밝혔다. 유 전 장관은 "리스트 이전의 형태로는 구두로, 수시로 김기춘 비서실장의 지시라고 하면서 모철민 (교육문화)수석이나 김소영 (문화체육)비서관을 통해서 문체부로 전달이 됐었다"고 증언했다.
유 전 장관은 "(허태열 초대 비서실장에서) 김기춘 실장으로 2013년 8월에 바뀐 이후에는 김기춘 실장으로부터 수시로 대통령이 약속했던 것과는 반대되는, 가령 CJ에 대한 제재라든지 등등 (요구가 내려왔다)"며 "<변호인>을 비롯해서 많은 그런 영화들을 만드는 회사를 왜 제재를 안 하느냐? 그런 영화에다가 투자를 해 주느냐? 김기춘 실장한테 수시로 '쯧쯧' 혀를 차고 굉장히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고 증언했다.
유 전 장관은 이어 "반정부적인 행동을 하는 그런 사람들이나 단체에 대해서는 왜 지원을 하느냐? 왜 제재를 하지 않느냐라는 요구가 김기춘 실장이 직접 또는 모철민 교육문화수석 또는 문화체육비서관을 통해서 다각도로 문체부에 구두로 전달이 됐었다"며 "굉장히 허접스럽게 A4용지에다 몇 백 명 정도? 그 정도를 이름을 적어온 문서가 2014년 6월에 왔다"고 했다.
유 전 장관은 "그 당시 그걸 받아오면서 조현재 차관이 김소영 문체비서관한테 당신네들이 만든 거냐? 그랬더니 김소영 비서관이 자기네들이 아니고 정무수석비서실에서 만든 것이다라는 변명을 했다"며 "그때 6월 12일에 조윤선 수석으로 바뀌었고, 그 전에는 아마 이정현 수석이 있다가 나갔던 것 같다"고 했다.
유 전 장관은 "그 후로 명단이 아주 무차별하게 확대가 된다. 그래서 어느 신문에서 나왔던 것처럼 몇 천 명, 거의 1만 명 가까운 수준으로까지 거론이 되기도 했다"며 "그것도 블랙리스트의 일부라고. 그러니까 정본이라는 거를 누구도 확실하게 본 적이 없는 게, 정본을 정무에서 관리했다고 저희는 보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유 전 장관은 "세월호 참사가 나고 나서 어쩌고저쩌고 슬슬 구두로 시비를 걸기 시작하더니 6월 달 들어서는 정식으로 문서가 오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까? 유 전 장관은 "면직되기 바로 며칠 전에 대통령하고 단 둘이 다시 뵐 기회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처음에 약속했던 것처럼 하셔야지 앞으로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반대하는 사람들을 계속 쳐내면 나중에는 한 줌도 안 되는 같은 편 가지고 어떤 일을 하시겠습니까?'(라고 했다) 그랬더니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씀도 안 하시더라"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저는 지금도 이게 정말 대통령 뜻인지 아니면 호가호위를 한 김기춘 비서실장의 장난인지 그거는 역사의 정의를 위해서도 저는 특검에서 가려줘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유 전 장관은 과거 '문체부 1급 공무원 해임' 사태가 김 전 실장 등이 주도한 '블랙리스트' 활용에 반발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유 전 장관은 "관련된 1급들하고 조현재 차관하고 같이 모여서 회의를 했다"며 "어떻게 할까 했더니 이구동성으로 이건 말이 안 된다. 이런 거를 시킨다는 건 말이 안 되고 이걸 우리 부가 적용한다는 건 말이 안 되기 때문에 하지 말자. 다만 모양 갖추기를 해서 거절을 하자. 번번이 이런 걸 요구하면 관련된 1급들이 회의를 해서 번번이 거절하는 그런 수고를 좀 하고 모양을 갖추자라고 얘기를 했다. 그리고 그 1급들이 제가 나간 다음에 딱 골라져서 잘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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