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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권교체에 대한 이해가 아직도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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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권교체에 대한 이해가 아직도 부족하다

[기고] 새로운 '강경반미자주파'가 될 것인가

1.

클린턴 행정부에서 부시 행정부로 교체가 이루어진 것은 2001년 1월. 부시의 백악관은 대한반도 정책에 대한 점검에 들어간다. 점검이 끝났다고 선언한 날이 2001년 6월 6일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대북정책 조율이 갖는 상징성은 부시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간의 2001년 3월의 굴욕적인 정상회담과 그에 따른 갈등을 고려할 때 대단히 중요했다.(찰스 프리처드, 실패한 외교, 34면)" 그래서 원래는 당시 한승수 외무장관이 6월 6일 워싱턴에 도착한 다음 조율된 최종안을 만들려 했다. 하지만 백악관은 협의조차 없이 서둘러 발표해버렸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찰스 프리처드 대북협상대사는 그래도 공식 외교라인에게는 알려야 했기에 당시 유명환 주미공사에게 통보한다.

공화당 행정부의 8년 임기가 끝나고 민주당 정권이 들어섰다. 부시 행정부가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실패라고 단정했던 것처럼, 오바마 행정부는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실패라고 평가한다. 그래서 대북특사를 임명했고, 새로운 정책을 조정 중이다. 지혜로운 정부라면 워싱턴의 정책 변화와 조정을 면밀히 관찰하여 상황에 적응해야 하며 어떤 로드맵으로 어떻게 공조할지를 고민해야한다. 물론 북한은 과도기라 할 수 있는 이 틈새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성급한 우리 사회의 일부 세력은 미국을 기다려 주지 않고 오로지 강경대응만을 주문한다.

2.

기다림에 앞서 우리는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정책에서 대한반도정책,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대북정책이 상당히 밀려있는 순위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식 다음날인 1월 21일 아침(현지 시간),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 수반을 비롯한 중동의 4개국 정상에게 전화를 걸더니, 며칠간에 걸쳐 중국, 레바논, 콜롬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본, 호주, 캐나다,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영국, 러시아, 독일 등의 정상과 통화를 했고, 반기문 UN사무총장과도 통화를 한다.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은 현지 시각으로 2월 2일 오후 6시 35분께다.

물론 전화의 순서가 동맹의 중요성이나 전략적 우선순위와는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한반도 정책이 현재 오바마 정책 우선순위에서 중하위로 밀려있다는 것 만큼은 시인해야 한다. 하지만 오바마의 전화는 외교적으로 무례(?)했던 부시 전 대통령의 전화통화와는 달랐다는데 위안을 가져야 할까?

"행정부의 한반도 경험 부족은 부시 대통령이 2001년 2월 김대중 대통령에게 처음 전화를 했을 때 분명하게 드러났다. 부시 대통령은 신중한 태도로 세계적인 지도자들, 특히 미국의 이웃 국가인 캐나다, 멕시코, 그리고 우리의 동맹국들에게 우선적으로 다가가고자 했다. 한국은 이 점에서 보면 분명히 앞 순위였다. 부시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과 대화할 때 사용할 짧은 보고서에는 동맹강화와 대북 정책에서의 공동 노력의 중요성에 관한 발언 요점이 담겨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을 포용할 필요성을 대통령에게 말하기 시작하자, "이자가 누구야? 이렇게 순진하다니 믿을 수 없군(Who is this guy? I can't believe how naive he is!)"이라고 말했다.(찰스 프리처드, 실패한외교)"

당시 전화통화 현장에 있었던 프리처드 대사의 회고다.

그날 밤 그는 "부시 대통령에게 '이자가 누구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심층적인 보고서를 써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보고서에는 김대중의 배경, 한국의 군사독재 시절 야당에서의 그의 역할, 투옥, 한국을 이끌기 위해 준비했던 30년의 세월, 그리고 그의 햇볕정책을 통한 대북 접촉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 보고서로도 대통령의 견해를 바꾸지는 못했다."

오바마 행정부 최우선 정책과제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이다. 그 다음은 중동 분쟁과 이란 핵문제이다. 국내적으로는 당면한 금융위기, 경제위기의 극복이고, 사회공공성 강화를 위한 신뉴딜정책이 다음쯤 될 것이다. 오바마의 워싱턴을 향한 한국 외교는 이런 현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지금 미국 사회가 대전환의 시기, 대변환의 시기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은 이런 인식하에 새로운 세계 질서를 모색 중이다. 그런 만큼 우리도 신중해야 한다.

3.

지난 노무현 행정부 시절 한미 양국 사이에는 주한 미군의 재배치 등을 포함한 전략적 유연성 문제, 용산기지 이전문제, 환경오염 치유문제, 작전통제권 환수문제 등 군사안보적 사안이 대충 마무리 됐다. 경제분야에 있어 가장 큰 이슈였던 한미 FTA는 한때 정리된 듯 했지만, 자동차와 미국산 쇠고기 수입 확대 등의 문제로 결국은 재협상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명박 행정부는 전임 부시 행정부와의 사이에 미래지향적인 한미동맹관계를 구축하겠다는 선언적 합의만 이루어두고, 공통의 비전과 가치에 바탕을 둔 새로운 내용은 만들어내지 못하고 끝이 났다. 그렇다면 한미간에는 공통의 비전과 가치에 토대를 둔 미래지향적인 한미관계를 구축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 행정부는 지나치게 한미FTA만을 중심으로 한 좁은 시각의 경제적 접근만을 선호한다. 미국의 의도와는 달리 한국 정부는 최우선 현안으로 한미FTA를 상정한다. 그 대표적 사례라 한덕수 전 총리를 주미대사로 임명한 일이다. 이는 한미동맹의 새로운 구조적 전환에 대한 이해 부족 내지는 한미동맹을 지나치게 협의로 해석한 결과의 소산이다. 미국의 정권교체와 세계적 변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냉정하게 따져보자면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은 대남한정책이 아니라 대북한정책이다. 좀더 좁히자면 북핵정책이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정책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중장기적 비전은 현재까지는 분명 관심밖이다. 그런데 우리조차도 '비핵개방3000'의 틀에 갇혀 있다. 평화체제보다는 봉쇄를 기초로 삼는 분단체제를 지향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만들어 낸다.

4.

물론 북한도 답답하기는 매 한가지다. 아직까지도 미국의 특사를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되어 있다. 통큰 결단을 하기에는 미국의 정책결정도 필요하겠지만 북한의 정책결정도 준비가 덜 된 듯하다. 북한체제는 지난 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이 던져준 후유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김일성 탄생 100주년이라는 2012년을 자신들이 꿈꾸는 이상대로 맞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듯하다.

다시 2001년으로 돌아가보자. 부시 행정부의 초기 대북정책은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모두 부정하는, 이른바 'ABC(Anything But Clinton) 정책'으로 규정되던 때였다. 지금의 이명박 행정부가 김대중 전 대통령 이래의 대북정책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평양은 여전히 미국 행정부의 변화에 비타협적이었으며, 새로운 부시 행정부가 클린턴 행정부의 유산을 승계하는 일종의 총괄 위임을 원했다... 부시 쪽에서는 어떤 제안도 다시 하지 않았고, 평양이 자신들을 클린턴 행정부와 비교대상으로 본다면 평양의 어떤 요구에도 응하지 않으려 했다.(찰스 프리처드, 실패한 외교)"

"평양이 미국에서 일어나는 민주적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고, 정당 교체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정당이라도 행정부가 교체되면 당연히 정책점검이 뒤따르고 정책 목표에 맞는 새로운 방법론을 모색한다는 점을 북한이 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북한이 프리처드의 이런 말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2001년의 상황은 2009년 현재 한반도와 워싱턴에서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가. 평양은 김대중, 노무현 행정부만을 상정하며 서울에서 일어난 정권교체의 과정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다고 이명박 행정부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을 변경할 것 같지도 않다. 남북관계는 '6.15 남북공동성명과 10.4선언'의 존중이라는 기준에서 한 치의 오고감도 없다. 한국정부는 조금씩 태도를 변화시켜 보지만, 북한의 반응은 요지부동이고 대북특사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제안마저도 그 순수성을 담보받지 못하고 있다. 어느 쪽이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워싱턴의 시간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5.

한반도는 지금 시간과의 경쟁중이다. 북한은 2012년 강성대국이라는 목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라는 인간적 한계와 후계체제의 안정적 구축이라는 정치적 과제를 동시에 극복해야 한다. 시간에 쫓기고 있다. 대한민국은 단임제 대통령제 국가이다. 대통령제를 가진 나라도 희귀하지만, 단임제 대통령제는 더더욱 희귀하다.

그래서 민주적 책임의 원리와 관련해서 많은 한계를 노출한다. 2008년 촛불집회가 있었다. 지난 10년의 외교안보 정책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는 이명박 행정부는 지난 2008년 이른바 집권 첫해 황금시대를 '잃어버린 1년'으로 규정한다. 4년 임기 중 마지막 한 해를 제외하고 나면 실질적 임기는 3년이 남은 샘이고 그러다보니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으려는 시도가 지나치게 조급하다. 속도전이라는 이름이 그것이다.

거기에다 촛불집회의 '외상후 증후군(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제살리기라는 이상적 목표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정치와 도덕적 가치의 분리가 근대정치의 출발임에도 도리어 종교와 도덕적 가치가 과도하게 숭상되고 법질서 근본주의가 우상시 된다. 장기적 차원에서의 기업가치 향상보다는 단기적 차원에서의 주주가치 경영에 매진하는 또 다른 차원의 시간과 경쟁중이다.

6. 덧붙이는 글

이글을 쓰게 된 직접적 계기는 엉뚱한 곳에 있었다. 지난 3월 31일자 조선일보 사설이 그것이다. 사설 제목이 놀랍게도 '오바마 정권의 대북정책이 정말 있긴 있는가'였다. 너무 조급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역사의 교훈을 역시나 망각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그래서 비교가 가능한 [실패한 외교] 책을 꺼내들었다. 사설만 읽다 보면 어느새 조선일보가 '강경반미자주파'가 되었다.

사실 이런 논조는 최근 들어 김대중 고문의 칼럼을 통해서도 종종 접할 수는 있다. 필자는 지난 행정부 시절, 비전과 현실성이 결여된 노무현 행정부의 무능 외교를 비판하곤 했었다. 당시 조선일보와, 그부분에서만큼은 연대했던 어느 통일부장관은 비판을 비판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조선일보의 지면을 이용하여 '분탕질'이라는 표현과 함께 필자 등을 '강경반미자주파'로 낙인 찍곤 했었다. 물론 그 때는 아팠다. 그런데 세월은 변한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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