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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몸통'은 노무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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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 '몸통'은 노무현이다

[기자의 눈] '봉하대군'과 '박연차 리스트'

'박연차 리스트'의 폭발력이 어디까지 뻗어 갈지는 검찰과 권력핵심부만 알겠지만 현재까지만 놓고 보면 친노진영에 집중 포화가 쏟아지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측에선 "도대체 아직도 우리를 때려서 뭘 하겠다는 것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일부 의원들은 금품 수수 사실을 부인한다. 하지만 속속 드러나고 있는 노건평 씨의 지난 행보에 대해선 친노 진영도 입을 떡 벌린다.

친노진영이나 봉하마을이 마치 '우리는 몰랐다'는 표정으로 입을 벌릴 일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이 사태는 모두 자신들이 자초한 일이기 때문이다.

철저히 무너진 '상대적 도덕성'

▲ 노무현 전 대통령ⓒ연합뉴스
검찰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대로라면 노건평 씨는 명실상부한 '봉하대군'이었다. 정치신인을 발굴하고, 수 억 원씩 뒷돈을 대주는 행태는 '김해의 김현철'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인사들은 대체로 "그 정도인지는 우리도 몰랐다"고 말하고 있다. 일부 인사들은 "민정수석실은 뭘 했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나마 철저하게 관리했다는 문재인 전 실장이 민정수석으로 근무하던 시점에도 노건평 씨는 세종캐피탈에서 수 억원을 받았다.

'고 남상국 대우 사장 사건 이후로 꼼짝도 못하게 했다'는 참여정부 청와대 주장이 새빨간 거짓말이거나 노건평 씨가 신출귀몰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불법 대선자금 1/10'이 상징하던 노무현 정부의 '상대적 도덕성'은 완전히 붕괴됐다는 데 이론이 없다. 게다가 노건평 씨에 국한된 문제도 아니다. 김혁규 전 경남지사를 축으로 친노 386이 포진했던 의정련(의회정치연구회) 소속 핵심 의원들도 박연차 리스트에 줄줄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들은 일찌감치 삼성그룹 시설에서 워크샵을 갖고 청와대의 친삼성 기류에 한 몫 한 바 있다. '정치신인에겐 5억 원 ,현역 의원에겐 법대로 500만 원 후원'이라는, 선뜻 수긍하기 어려운 얘기의 진위는 좀 더 지켜보자.

그리고 <동아일보>, <조선일보>에서 흘러나오는 '노무현 50억 원설'에 대해 봉하마을 쪽은 "차용증을 써준 15억 원 외엔 정말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인사들은 "노 전 대통령이 직접 받진 않았겠지만 그 이름으로 누가 뭘 어떻게 했을지는 이제 장담 못하겠다"고 한숨을 내쉬고 있다.

"이권이나 인사청탁에 개입하면 패가망신 시키겠다", "형님은 순박한 촌로"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노 전 대통령도 입을 떼지 못하고 있다. 세종캐피탈 사건 이후 "검찰에 뭐라 할 입장이 아니다"던 노 전 대통령은 최근 정치원론에 가까운 글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몇 차례 올린 뒤로는 박연차 리스트 수사가 본격화되자 그것마저 끊겼다.

이해찬 전 총리 중심의 '광장',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중심의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김우식 전 비서실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미래발전연구원' 등 이른바 친노 3단체도 "우리는 박연차 회장하고 정말 관련이 없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몸을 바짝 낮추고 있다.

"도덕적 자신감 때문에 레임덕 없다"던 사람들

YS, DJ시절 정권 말기에 아들 문제가 터지면서 급격한 레임덕 현상을 겪었다. 노무현 정부의 경우 한 때 지지율이 한 자리 숫자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마지막까지 국정운영에 이렇다 할 레임덕은 없었다. 당시 청와대 인사들은 "정권은 넘어갈지 몰라도, 우리는 도덕적 문제가 없기 때문에 끝까지 흔들릴 일은 없다"고 나름의 자부심을 내비쳤었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인해 우리는 다시 '정권이 끝난 뒤 털면 털리는 시대'로 돌아갔다. 동일선상에서 비교하긴 어렵지만 그나마 YS, DJ 때는 임기 중에 큰 건은 정리가 됐다. 정권 재창출을 노리는 여권 내 인사들도 살부(殺父)라는 비판을 감수하며 직격탄을 날렸었다.

임기를 불과 4개월 여 남겨둔 지난 2007년 10월, 노 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 명단에 박연차 회장을 '전 신발산업협회장' 직함으로 포함시켜 그에 대한 '신임'을 안팎에 재확인시켰다. 박 회장은 평양 옥류관 남측 인사 회식 자리에서 술병을 들고 여러 테이블을 휘젖고 다녔다. 정권 초부터 나왔던 '박연차가 실세다', '박연차가 여야 마당발이다'는 소리는 정권 말까지 유효했던 셈이다.

아직은 '설'이니 '노무현 50억 설'의 사실 여부는 지켜보자. 죽은 권력에만 이빨을 들이대는 검찰의 하이에나 근성도 별개로 하자. 지난해 한번 칼집에 넣었던 칼을 다시 꺼내 든 검찰에게 '표적수사', '정치수사' 냄새가 폴폴 나더라도, 그것도 잠시 잊자. 살아있는 권력에 검찰이 칼을 들이댈지도 조금만 더 지켜보고 판단해보자.

그러면 '박연차 리스트 정국'에서 남는 게 무언가? 도덕적 우월감을 최후의 보루로 여겼던 노무현 정부의 비리 백서 뿐이다. 아무리 지난 정부를 쥐잡듯 잡는 현정부의 정치적 의도가 의심스럽다고 해도 양 갈래로 전개되는 박연차 사태의 '한쪽 몸통'은 노무현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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