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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임동원의 논리와 똑같은 클린턴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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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대중·임동원의 논리와 똑같은 클린턴의 논리

[기고]남북관계가 변할 수 밖에 없는 세 가지 이유

첫 번째, 클린턴 장관은 2002년 10월 이전으로 돌아가려 한다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 국무장관 방한에 대해, 기대와는 달리 실망스럽다는 입장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클린턴 국무장관의 북핵문제에 대한 인식의 출발은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James Kelly) 미 특사방북 이전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이 그 중요성을 간과했다. 한·중·일 순방 당시 동행한 기자들에게 한 발언을 기사화한 뉴욕타임스 인터넷판 16일자 보도가 그렇다.

"클린턴 국무장관은 조지 부시 행정부가 지난 2002년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생산 의혹 정보를 북한의 플루토늄 프로그램 동결을 위한 1994년 제네바 합의 파기의 구실로 삼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 클린턴 장관은 북한의 비밀 프로그램이 제네바 합의 폐기를 정당화하기에 충분한 위협이 되는 것으로 결론지을 수 있는 만큼의 증거도 결코 없었다고도 했다."

같은 발언을 두고 AP 통신은 "부시 행정부가 제네바 합의를 파기한 것을 함축적으로(Implicitly) 비난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클린턴 장관의 이런 논리야말로 2002년 10월 이래 김대중 전 대통령,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등의 논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음에 주목해야 한다. 당시 켈리 특사는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계획의 실재를 인정했다'고 한국 정부에 통보했다. 임 전 장관은 "북측과의 대화록 사본을 공유할 것을 요구했지만, 우리 측의 제의는 묵살되었다"고 술회했다. (임동원, 피스메이커) 이후 워싱턴 네오콘들은 북한에 대한 중유 공급을 종결시켰고, 이는 제네바합의의 파기를 의미했다. 결국 북한의 핵개발로 이어졌다.

2002년 10월 18일자 조선일보는 익명의 미 고위 관리를 인용해, '북한이 올 7-8월 핵농축 실험'을 했고, '핵탄 2개 이미 보유'라고 보도했다. 임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왜곡 날조된 무책임한 정보들"이라고 표현했다.

클린턴 장관은 북미관계가 어디서부터 왜곡되었고, 어떻게 핵실험으로까지 이어졌는지 역사적 맥락에서 분명하게 파악하고 있다. 북미관계 왜곡의 시작을 인식하고 있기에, 해법을 찾아낼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6자회담 참가국은 물론 유럽까지도 만족했던, 제네바합의 수준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계기는 마련되었다. 2000년 페리 프로세스로 되돌아갈 수 있는 상황으로 정리됐다. 불안 속의 희망이다.

두 번째, 보즈워스 특사는 북한이 원했던 양자대화의 상징이다

2007년 7월 미 민주당 대선후보 토론회장, CNN과 유튜브 공동 주최로 8명의 민주당 대선주자들이 참여했다. '쿠바, 이란, 북한, 시리아, 베네수엘라의 지도자들과 전제조건 없이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후보는 주저 없이 "기꺼이 만나겠다"고 답했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재빨리 물고 늘어졌다. "저라면 그들의 선전수단으로 전락하지는 않을 겁니다" 힐러리의 속뜻은 오바마가 순진하고 경험과 외교수단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상대국의 의중을 떠보고 탐색하기 위해 고위급 대통령 특사를 파견하겠습니다. 분별력 있는 대통령이라면 저들의 속셈이 무엇인지 알아채기도 전에 직접 만나겠다는 약속을 먼저 하지는 않을 겁니다."

조지 미첼(George J. Mitchell)이 중동특사로, 리처드 홀브룩(Richard holbrooke)은 오바마 정책 1순위 파키스탄-아프간 특사로, 그리고 지난 25일 스티븐 보즈워스(Stephen Bosworth)가 대북한 특사로 임명됐다. 그렇다면, 누구의 정책대로일까.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정책이 관철된 것일까.

클린턴 장관은 25일 보즈워스를 임명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26일 보즈워스를 면담했다. 예상과 달리 클린턴 장관은 6자회담 수석대표와 대북특사를 분리시켰다. 그리고 6자회담 수석대표인 성 김(Kim)과 상하관계임을 분명히 했다. 대통령에게 직보한다는 것도 분명하게 확인했다. 대북정책의 총괄 책임자임을 대내외에 선언한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북한에 대해 "지속적으로 직접적이고 공세적 외교"를 펼치겠다고 했다. 클린턴 장관은 특사가 먼저라고 했었다. 현재의 상황은 적절한 조합이다.

북한은 북핵문제의 원인이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 있다고 했다. 북미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북핵문제는 자동적으로 해결되는 것이며,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김일성 전 주석의 유훈'임을 일관되게 주장한다. 그래서 북한은 6자회담의 틀보다는 양자회담을 주장해왔고, 미국은 북미 양자회담을 6자회담의 틀 내에서 운용하는 방식으로 활용해 왔다. 하지만 핵심의제는 북미간 양자회담을 통해 결정되어 온 것이 사실이고, 실상 6자회담은 양자회담의 결정사항을 추인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어 온 것 또한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부터 북미간 직접대화를 강조해왔다. 북한도 6자회담의 틀보다는 지난 제네바합의의 방식처럼 북미간 양자대화를 통한 일괄타결을 줄기차게 요구해왔었다. 이제 그 틀이 마련된 셈이다. 회담의 형식에서부터 북미간 이해관계가 충족된 셈인 것이다.

세 번째, 6·15, 10·4선언에 대한 입장이 선회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제90주년 3.1절 기념식에서 "남과 북은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평화적으로 공존, 공영해 나가자고 합의해 왔고, 저는 이런 남북간 합의사항을 존중할 것"이라고 했다.

6·15선언과 10·4선언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년 9월까지만 하더라도, 존중의 대상이 합의'정신'이었는데, 이번엔 합의'사항'으로 좀 더 구체화됐다. 불과 얼마전,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6·15선언과 10·4선언은 국회의 비준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는 입장이었다.

이 대통령은 2008년 7월 11일 국회연설에서는, "남북기본합의서, 7·4공동성명, 6·15선언과 10·4선언 등 과거 남북간 모든 합의에 대한 이행 방안을 진지하게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그보다 앞선 3월 26일 통일부 업무보고 때는 "가장 중요한 것은 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지키는 것"이라고까지 했다.

11개월만에 미세하게나마 좌회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다만, 6·15, 10·4선언에 대한 특정과 존중의 표현이 그렇게도 어려울까. 과감한 대전환이 요청되는 상황이다. 세계사적 대전환의 시기에 외교적·경제적 고립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해서는 과감해져야 한다. 과거 10년에 대한 부정으로부터, 지나친 이념의 사슬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져야만 한다. 남북문제에도 속도가 필요하다.

외교안보정책의 전면적 재정립이 시급하다

미국의 대외정책 우선순위에서 북핵은 분명 아프간이나 이스라엘보다 후순위다. 북핵은 이란핵보다도 후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오바마 행정부는 아직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평가가 덜 이루어진 상태이다. 대안마련에는 아직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동북아 전체를 놓고 보다라도, 북핵문제 등 한반도 문제에 대한 입장정리가 아직은 덜 된 상태이고, 일·중 관계 등 동북아 질서에 대한 비전도 미확정상태라 평가된다.

그럼에도 대북정책의 전환만큼은 분명한 조짐이 드러났다. 고농축우라늄 계획에 대한 인식전환, 햇볕정책과 페리 프로세스에 가장 정통한 보즈워스의 대북특사 임명, 여기에다 클린턴 장관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 분명하게 확인한 북핵폐기와 북미수교 및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이라는 목표치가 제시되고 있는 점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명박 행정부도 이 점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3·1절 기념사가 미국의 정책전환에 보조를 맞추려는 하나의 신호탄이다. 물론 미사일발사로 동북아 질서를 긴장시키고 있는 북한이 가장 먼저 변해야 하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북한의 변화에 앞서 우리가 먼저 한반도 새 질서에 대한 이니셔티브를 장악해야 한다. 새로운 비전을 우리가 창출해서 미국과 공유하고, 북한을 이해시키며, 주변 강대국들을 설득해 나가야만 한다. 이명박 행정부는 지난해 4월 부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당시 21세기를 담보하는 새로운 전략동맹으로서의 한미관계를 정립하겠다고 했다.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90도 이상 달라졌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앞선 세 가지 신호는 분명 긍정적이다. 그런데 세상은 국제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에 입각한 대전환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엄청난 새로운 모색이 꿈틀대고 있다. 희망의 징조를 현실화시켜야 한다. 새로운 한반도 질서를 창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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