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주시에서 어떻게 무명 복원을 시작하게 됐나요?
양주에서 무명을 생산하는 현장을 보시고 다들 놀라시더라고요. 단순한 시연이 아니라, 목화를 직접 재배하고 수확해서 전통 물레와 베틀로 실을 잣고 무명을 짜는 옛 길쌈기술을 직녀 어르신들이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으니까요.
2012년부터 경기도 양주시 고읍동에 우리나라 최대 규모로 목화를 재배하면서 전통 무명 복원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어요. 목화 재배 면적이 3만 평 정도로 제법 큽니다. 처음에는 목화재배만 했어요. 재배한 솜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불분명했지만, 전문가 도움도 얻고 자료도 보면서 조금씩 방향을 잡았어요. 지역 상징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죠. 그것이 '무명'이었어요. 처음엔 막막했어요. 물레와 베틀도 구하기 어려웠고요. 마침 우리나라 전통 직조를 연구자를 알게 돼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양주에서 무명 직조 경험이 있는 분을 찾는 일이 어려웠어요. 알음알음 수소문 끝에 젊을 때 목화 재배부터 무명 만드는 과정까지 경험해본 어르신 몇 분 찾았어요. 처음에는 기억날까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베틀에 앉으시니 하나하나 몸이 기억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곡성 어르신을 양주로 모셔와 어르신 네 분이 '직녀' 수업을 받았어요. 가서 보기도 했고요. 그 뒤로는 무명으로 석사 논문을 쓰신 분이 기록하고 공부한 것을 바탕으로, 6개월 정도 기억의 고리를 이어주셨죠.
어르신들이라, 오전에 서너 시간 정도만 일하세요. 옷 한두 벌을 만들 수 있는 무명 한 필을 만들려면, 열 분이 꼬박 한 달 작업해야 합니다. 한 필이면 20자, 10미터(m) 길이입니다. 무명을 생산하는 모든 과정을 들여다보면, 무명 한 필이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지는지 몰라요. 어르신들도 자부심을 가지고 한 올 한 올 정성을 들이시더라고요. 지금은 어르신들마다 편차가 있지만 거의 모든 과정을 이어받아 재현하고 있어요.
- 양주 무명을 위한 협동조합을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양주시는 해마다 목화 축제도 열고, 무명 복원을 위한 활동을 지원하고 있어요. '섬유도시'인 양주시가 '무명 복원'과 '슬로 패션(slow fashion)'을 연결 짓는 국가 지원 지역사업에 선정됐거든요. 목화와 무명 전통이 자리 잡도록 몇 년째 시와 함께 일을 풀어왔어요.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성입니다. 종종 정부사업이 정책 방향이나 우선순위에 따라 단기 사업으로 끝나거나 방향이 바뀌기도 하니까요. 당장은 큰 문제가 없겠지만, 멀리 보면 주민들이 중심을 잡고 일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사업은 앞으로도 관과 협력하며 가겠지만, 관이 모든 것을 주도하는 방식은 바람직하지 않으니까요. 주민들과 함께 '메루사회적협동조합' 만들게 된 배경입니다.
협동조합 이름을 '메루'라고 지었어요. 어떤 자료에 양주2동을 옛날에 '메루지'라고 불렀다는 내용이 있더라고요. '목화 심던 터'라는 뜻으로 '면지(棉址)'라고 했는데, 입말에 따라 '메루지'가 된 거죠. 여기에서 '메루'를 가져왔어요. '메루사회적협동조합'은 주민들이 직접 무명 전통직조기술을 잇고, 직접 재배한 친환경 목화로 무명 제품을 만들어 지역에서 생산과 소비의 순환이 일어나도록 힘쓰고 있어요. 당장 규모를 키우거나 사업을 넓히기는 어렵지만 밑돌 역할을 하고 싶어요.
목화 재배를 시작한 뒤, 목화 활용 방안을 계속 찾았어요. 처음에는 시제품으로 이불을 몇 채 만들었죠. 가능한 부피도 줄이고 가볍게 만들었어요. 양주 목화축제 때 첫 판매를 했는데, 단가가 비싸서 쉽게 접근하지 못하더라고요. 써본 분들 반응은 굉장히 좋았어요. 이듬해부터 무명 복원과 무명제품 생산 쪽으로 방향을 잡고, 친환경 면 제품을 생산하는 곳을 조사했어요. 대부분 수입 면으로 소품들을 생산하더라고요. 직접 무명을 직조해 제품을 생산하는 곳은 없었어요.
메루 구성원은 무명을 생산하는 마을 어르신 두 분과 저를 포함해 마을 주민 두 명, 전문가 가운데 디자이너 한 분, '이새에프앤씨'라는 전통을 살려 옷을 만드는 회사대표 등 모두 6명이 함께하고 있어요. 전문가들이 제품 디자인이라든가, 시제품을 만든다든가, 생산체계 같은 일에 도움을 주고 있어요. 목화와 무명을 위해 다들 조금씩 힘을 보태고 있어요.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어르신 말고도 여덟 분이 물레를 돌리고, 베틀 일에 참여하고 있어요. 모두 지역 주민분들입니다. 초기에 '과연 가능할까?'하는 의문을 가졌는데, 사람도 모이고 차츰 틀을 갖추면서 이어갈 힘이 생기고 있어요. 아직 수익도 나지 않고 채워야 할 것도 많지만 10년, 20년을 내다보는 사업이 되었으면 해요.
- 무명 복원을 이어가는 교육체계를 준비하고 있나요?
우리 전통 섬유는 무명뿐 아니라 모시, 누에고치에서 뽑아낸 명주, 삼대마로 만든 삼베가 있어요. 예전에는 마을마다 전통 기술을 이었고, 먹을거리와 함께 주요한 생산체계였어요. 지금은 다 사라지고 몇몇 장인이 무형문화재로 명맥을 잇고 있는 정도죠.
함께 하시는 어르신들이 연세가 있으니까 젊은 사람들이 함께해야 해요. 짧은 기간 관심은 보이지만, 1년 넘게 오랫동안 배우고 기술을 쌓는 일에는 마음을 내지 못하는 것 같아요.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무명학교'를 열어 지역 안팎에서 무명 직조에 관심 있는 사람을 찾고 있어요. 전통 무명과 직조 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들과도 연계해 연구자들과도 관계를 이어갈 겁니다. 전통직조에 관심이 있는 수공예 모임과도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해요. 서울에 있는 '소생공단'에도 가봤는데, 무명에 관심이 있더라고요. 지금은 제품을 만들 때 수입한 원단을 쓰지만, 앞으로 양주 무명으로 제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어르신들과 관심 있는 지역 주민이 한 축을 잇고, 연구자들과 수공예 생산업체들이 다른 한 축으로 연대해 촘촘한 연결망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양주에 '무명직조체험관'이 곧 문을 엽니다. 무명 자료도 전시하고, 교육과 체험 공간을 만들 예정입니다. 우선 무명을 교육하는 강사 양성 과정을 계획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직조교실과 천연염색교실도 진행합니다. 지난해 천연염색 교육을 스무 분을 받았는데, 축제나 장터를 열 때 체험학습 강사로 여덟 분 정도 계속 참여하고 있어요. 올해 12월부터는 무명 생산하는 여덟 가지 과정을 경험하는 무명교실도 엽니다. 교육을 마친 뒤 무명 관련 강사로 참여하고, 어린이 체험학습도 맡아 진행할 수 있을 겁니다. 목화밭 주변에 체험관이 들어오면 목화와 무명 복원 전체 과정을 더 실감 나게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목화밭에서 조금 떨어진 섬유산업단지 안에서 시작하게 됐어요. 앞으로 양주시가 목화밭을 사들이고 체계가 잡히면 체험관을 옮기는 것도 논의해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 무명제품 생산 단계로 나가야 할 텐데, 어떤 상황인가요?
다음 단계가 무명제품을 만드는 건데요. 이 부분이 가장 어렵지만, 절실한 연결고리입니다. 몇 가지 시제품을 만들어 본 상태예요. 지역의 작은 공방도 중요한 협력자입니다. 2년 전부터 공방 두세 곳에서 무명 소품을 만들었어요. 가령 가방, 아기 신발, 인형, 배냇저고리, 식탁보, 손수건, 휴대폰 지갑 같은 것이죠. 손으로 만들어 투박하지만, 친근감이 있어요. 다품종 소량생산에 적합한 방식입니다. 무명이 알려지고 참여하는 공방이 늘어나면 더 활발하게 제품 연구도 하고 대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어느 정도 탄력을 받으면 일상에서 많이 쓰는 마스크, 생리대 같은 제품을 시범 생산해보는 것도 가능하다고 봐요. 당장은 어렵겠지만 시제품을 만들어 써보고 더 나은 방향을 찾는 과정에서 생협과 협력할 수도 있고, 생산 체계가 갖춰지면 납품도 가능할 테고요.
조합원으로 함께하는 '이새에앤씨'에서는 일상복을 디자인해 지난해에 이어 시제품을 만들 계획입니다. 전문가들도 손으로 직접 짠 무명은 흡수력과 통기성이 좋아 아기 옷뿐 아니라, 착용감이 좋아 어른 옷으로도 좋다고 하더라고요. 내년부터는 소량이라도 판매를 시작할 계획이에요. 소생공단 같이 양주 무명으로 자체 제품을 만들고 싶어 하는 곳에는 무명원단을 제공하고요. 양주 목화는 아직 친환경 인증을 받지 않았지만, 앞으로 시기를 조절해 친환경 재배, 친환경 인증까지 생각하고 있어요.
오늘날 산업사회 속에서 거대한 흐름에 묻혀 자기다움을 잃고 살잖아요. 마을도 마찬가지예요. 머지않아 마을마다 특성과 전통을 살려가는 것이 중요한 때가 올 거라고 봐요. 마을이 자기다움을 이어갈 때, 우리 아이들에게도 의미 있는 미래를 물려줄 수 있잖아요.
양주 직녀이야기 1 : 무명길쌈을 이어가는 김옥자(77세) 님
고향이 곡성인데, 어머니께서 무명길쌈을 많이 하셨어요. 무명천을 짜서 내다 팔아 먹고 살았어요. 곡성에서는 무명하는 집이 많았어요. 열 살 넘어서부터 심부름했고, 열다섯 살부터 베틀에 앉았어요. 힘도 들고 놀러 나가고 싶어 하기 싫은 때도 많았어요. 양주에서 무명사업을 시작하면서 참여했는데, 너무 오래전 일이라 기억날까 싶었어요. 베틀에 앉아보니까, 정말 신기하게도 하나에서 열까지 생생하더라고요. 몸과 손끝이 길쌈 과정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어요. 막힘없이 길쌈을 하고 있어요. 제가 열여덟 살에 시집을 갔는데 저고리, 치마, 이불, 속옷도 직접 만들어서 가져갔어요. 정말 귀한 혼수품이었어요. 양주에서 3년째 일을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함께 50필 정도 짰어요. 무명은 힘을 들인 만큼 결과물이 나오는 진실한 천이에요. 서두른다고 빨리 결과가 나오지 않아요. 한 단계도 건너뛸 수 없어요. 한 올 한 올 다 마음을 들여야 천이 되는 거예요. 길쌈을 마친 무명천을 보면, 너무 귀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빨아서 널어놓은 천에 햇빛이 하얗게 비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워요. 무엇과도 견줄 수 없어요. 무명은 세탁도 쉽고 질기고 가벼워서 배냇저고리, 옷감으로도 좋아요. 건강 때문에라도 젊은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무명옷을 많이 해 입히면 좋겠어요.
양주 직녀 이야기 2 : 무명실을 잣는 박삼순(76세) 님
내장산 밑 정읍이 고향인데, 어려서부터 목화 농사도 돕고 할머니와 어머니 길쌈하는 것 도와드리면서 배웠어요. 실 잣기를 하려면 목화 솜 씨앗을 빼고 고치를 잘 말아야 하는데, 혼자 연습도하고 그랬다니까요. 시집가기 전에 안 배워놓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길쌈을 안 한 지 69년이 됐는데, 양주에서 경험 있는 사람을 찾는다고 해서 참여했어요. 지금은 실 잣기를 주로 해요. 새로 오신 분들에게 실을 잣는 방법도 가르치고요. 말아 놓은 고치에서 실을 쭉 빼 올릴 때는 신경을 온통 실에 올려놔요. 힘을 잘 못 주면, 두께가 불규칙해서 좋은 무명을 만들 수 없어요. 물레를 돌려 실패에 뽀얗게 실이 감기는 걸 보면 기분이 좋아요. 무명실을 뽑아 감아 놓으면, 여간 고운 게 아니에요.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생각도 나고요. 함께 만들던 치마며 저고리, 이불도 다 기억나요. 1970년 즈음부터 나일론이 유행하면서 무명 전통이 사라졌지만, 정말 소중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내가 할 수 있지만, '누가 이 일을 이어 할까?' 걱정도 돼요. 젊은 사람들이 배워서 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