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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미FTA, 재협상은 필수적이다"

[기고] 2월 처리 포기는 당연, 4월 처리도 안 돼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4일 오전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한미FTA 비준 동의안 본회의 처리는 4월에 처리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어찌됐건 2월 처리는 물 건너갔다. 그래서 2월까지만 환영한다. 그렇다고 4월 처리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4월 처리도 안 된다.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이럴 거면 왜 그리 일을 어렵게 만들었냐는 것이다. 이 정도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나. 미국에서 대외무역정책의 흐름이 어떻게 변해갈지 정말 몰랐다는 것인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했다는 것인가. 미국산 수입쇠고기로 그렇게 어려움을 겪고도, 합리적 예측과 전략이 없었단 말인가.

얼마 전 국제통상연구소 심포지엄에서 정태인 선생을 만났다. '투자자·국가 소송제(ISD)'에 대한 필자의 관심을 알고 있는 정 선생이 재미있는 책 하나를 소개해주었다.

스티글리츠조차 "나도 몰랐다"던 독소조항

조지프 스티글리츠 (Joseph E. Stiglitz)의 책이었다. 스티글리츠는 콜롬비아 대학교 교수로 2001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고, 1993년에서 96년까지 클린턴 행정부 경제자문위원회 위원 및 위원장을 역임했다. 스티글리츠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에서 일하던 당시를 회고한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두 번째 장에 나오는 규제적 수용(Regulatory taking)이라 불리는 조항입니다. 거기에는 만약 규제가 회사에 영향을 끼치면, 회사는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클린턴 행정부는 그 내용이 미국에 제출되자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국제무역협정에 들어 있었습니다. 특수한 이해 세력이 항상 그것을 요구했지만, 환경주의자들과 클린턴 행정부는 단호하게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우리는 그 조항이 협정에 묻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결국 그대로 발효되고 말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그런 상황을 알았더라면, 어떤 종류든 보류 조항을 삽입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우리가 미국 내의 보수적인 공화주의자들이 옹호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조항들과 얼마나 열심히 싸웠냐하는 것입니다. 당시 우리는 그 의미에 대해 알지 못하고 NAFTA에 들어있던 조항을 승인했던 것입니다." (역사로서의 현재, 104-105면, 모티브북 2008)

굳이 원문 그대로 인용한 이유는 이렇다. 도대체 우리는 한미 FTA에 대해서 무엇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18대 국회는 과연 한미 FTA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가.

제2롯데월드에 대입해 보자

우리 헌법 제23조는 재산상의 수용을 직접 수용으로 한정하고, 간접 수용에 대해서는 보상하지 않는다. 미국은 간접 수용뿐만이 아니라 일종의 규제적 수용까지도 보상한다. 좀 더 쉽게 풀자면, 우리나라는 도로로 쓰거나 군부대가 사용하는 등 내 땅을 직접 빼앗아갈 때만 보상이 지급된다.

하지만, 미국은 "재산의 수용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재산의 사용 및 제한에도 확대 적용"하여 이 경우에도 정당한 보상을 지급해야 한다. (졸저, 한미 FTA 청문회, 103면 이하) 예를 들어, 내가 돼지를 키우고 있는데 근처에 공항이 들어서서 도저히 소음 때문에 사육이 불가능하다고 하자.

우리는 소음피해 정도만 일부 손해를 배상해주는 정도이고, 미국은 그 용도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되었으니, 사실상 땅을 빼앗아간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해서 국가가 돈을 보상해주어야만 한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잠실 제2 롯데월드 신축과 관련해서 얘기해보자. 잠실 롯데월드 건설은 규제로부터 자유롭지만, 여전히 성남 비행장 근처 성남 주민들은 고도제한 등 각종 규제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나라 현행법으로 규제에 따른 손실 보상을 국가로부터 받아낼 수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왜? 직접 수용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군기지로 사용하면 돈을 받지만, 공군기지 인근에서 사실상 토지소유권의 사용을 제한당하고 있는 시민은 돈을 받지 못한다. 미국법에 따르면 받는다. 한미 FTA에 따르면 이제 받을 수 있다.

역으로 생각해보자. 지금까지는 정부입장에서 돈을 안 줘도 된다. 그런데 한미 FTA가 효력을 발생하고 그곳에 투자한 미국 투자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어떻게 될까. 당연히 소송거리다. 다른 지역에 새로운 군사공항을 건설한다고 생각하면 이 문제는 더 확대되고 복잡해진다.

결국 대한민국 정부의 공공 정책, 국방 정책, 부동산 정책 등은 결정적으로 제약을 받게 된다. 협상과정에서 ISD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심각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러자 한미 양국은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정책 등 우리의 부동산 가격 안정화 정책"이라는 지극히 제한적 예시로 정책적 자율성을 '최소한도'로 그리고 '가까스로' 확보하는 데 그쳤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정부의 수용정책이, 정부의 정책주권이, ISD 앞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스티글리츠조차도, 그리고 클린턴 행정부조차도 반대했던 일이다. 수용의 한 형태인 규제적 수용 조항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에 삽입되는 것조차도 몰랐다고 했다. 반대했었는데도 어느 순간 들어와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미 FTA의 구체적 내용에 대한 이해는 되어 있는가. 다음 세대에게 미칠 영향력에 대해 충분한 검토가 되어 있는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아서 문제이다.

협상의 균형은 깨질 수밖에 없다

다시 미국의 시각으로 한미 FTA를 되돌아보자.

지난 1월 22일, 바니 프랭크 미 하원 금융위원장은 "(한미 FTA의 의회 비준에 대해) 무역은 미국인들에게 좋지만, 그 혜택은 매우 불공평하고 불평등하게 분배된다", "미국이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을 개선하기 전까지는, 외국과의 어떠한 무역 법안도 미 의회에서 통과되지 않을 것이다."(조선일보 1월 24일자)라고 했다.

미국이 아닌 우리야말로 심각한 경제위기 속에서, 한미 FTA의 긍정적 부정적 영향력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정확한 후속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미국은 이미 재협상을 얘기한다. 우리는 재협상이 없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이것이 거짓임은 누구나 안다. 이미 본 협상 때에도 그랬다. 추가협상이니 추가협의니 호도했지만, 본질은 재협상이었다.

자동차, 섬유, 환경, 노동조건, 쌀 등에서 협상의 균형은 깨질 수밖에 없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이 점을 분명히 얘기하고 있다. 미국 시카고 로스쿨에서 헌법학 교수로 일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ISD에 대해 일관되게 문제제기를 해왔다. (오바마의 ISD에 대한 입장은 별도로 기고할 예정이다.)

지난 해 6월 4일 민주당 상원의원 셔로드 브라운(Brown) 등 상원 4명, 하원 53명이 발의한 새로운 통상개혁법 (Trade Reform, Accountability, Development and Employment Act)은 그간 토론되던 민주당과 미국내 진보진영의 입장을 체계적으로 종합한 법안이다. 이 법안이 미 의회 내에서 민주당의 통상정책에 대한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자세한 것은 이해영, 「'자유'무역 대 '공정' 무역, 그리고 대안의 모색」 참조)

이 기준에 의하건 일부 미 의회 의원들의 주장에 의하건, 부문별 재협상 요구는 필수적이고, 그렇게 된다면 문제는 어떻게 전체적으로 균형을 잡느냐에 있다. 미국이 부분협상을 통해 균형을 깨뜨리면 당연히 협상 전체의 균형은 다시 바로 잡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재협상은 필수적이다.

추가 협의든 부분 재협상이든, 협상의 전체적 균형을 위해서라도 재협상은 있을 수밖에 없다. 미국 측이 새로운 분야를 달라고 그러면, 당연히 우리도 균형측면에서 새로운 분야를 요구해야만 한다. 어설픈 재협상론에 대한 반박보다는 협상의 전체적 균형을 고려한 구체적 협상전략이 필요한 때이다.

시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미 FTA는 외적 협상도 엉망이었지만, 내적 협상은 더 엉망이었다. 한미 FTA 추진과정에서 절차적 정의는 완벽하게 무시되었고, 노무현 대통령은 1930년대 헌법관인 칼 슈미트의 정치적 결단주의에 빠져버린 비민주적 의사결정의 대표적 상징이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이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 미국의 시간표에 쫓길 필요도 없고, 따라가서도 안 된다. 서둘 이유라곤 전혀 없다.

4월이라는 시간표에 스스로 구속되지 말고, 한미 FTA가 갖는 헌법적 경제적 사회적 영향력을 충분히 재검토하고 보완책을 마련하는 새로운 협상전략을 꾸려나가야 한다.

협상 시간표에서도 실패했었다. 협상전략은 더더욱 실패했다. 경제적 효과 평가도 턱없이 부족했다. 후속대책도 주먹구구다. 국제협상에서 선례가 없는 4대 선결조건을 미국에 바쳐가며 협상을 희망했다. 쇠고기 문제도 결국은 여기에서 파생됐다. 대만과 일본은 아직도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수입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한미 FTA를 서둘러 체결하기 위해 스크린쿼터 등과 함께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를 선결문제로 해결해야만 했다. 그러고도 아무런 반성이 없다.

반성적 고려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좀 더 차분해지자. 협상의 균형을 생각해서 분명한 재협상 전략을 만들어내자. 그리고 새로운 협상팀을 구성하자. 기존의 협상에 미련을 남긴 나머지 그저 "재협상은 없다"고 외치는 통상교섭팀으로는 새로운 협상을 꾸려나갈 수 없다. 진정으로 새로운 협상을 위해 진정으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고, 진정으로 새로운 통상교섭팀이 요구된다. 결단이 필요하다.

외교통상부는 2월 3일 국회 외통위에 '한미 FTA 비준 동의 처리현황'을 보고했다. 이 보고에서 외통부는 "한미 FTA의 인준은 여부(whether)의 문제가 아니라, 시기(when)의 문제"라고 했다. 안일하고 또 안일하다. 그래서 결단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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