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시민이 박근혜 퇴진을 위한 시위투쟁에 돌입하면서 본격적인 항쟁국면이 열렸다. 몇 달 전만 해도 누구도 상상해보지 않았던 시민항쟁이 본격화하면서 야권의 대선 지형에도 근본적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그 가장 상징적인 현상으로 기초자치단체장인 이재명 성남시장의 약진을 들 수 있다.
올 초만 해도 가십거리에 가까웠던 이재명 시장은 항쟁 전 여러 후보군 중 한명에 불과하였으나 항쟁이 본격 시작하자마자 10% 가까이 수직상승하면서 문재인·안철수의 2파전 구도를 단숨에 3파전 구도로 바꾸어버렸다.
오늘 칼럼은 이재명 시장의 얘기로부터 시작하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 이재명 돌풍을 계기로 야권 대선 전략을 심층 분석하고 항쟁 국면을 거치면서 내년 대선 구도에 미칠 영향을 나름 설명해 보고자 한다.
항쟁 전까지 야권을 암묵적으로 지배해온 담론이 있었다. 지난 6월 민주당의 씽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의 수석연구원인 이진복 박사가 개인 의견이라는 단서를 달고 매우 중요한 문건을 발표하였다. '협치의 권력구조 :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이 글은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 절대다수의 내심을 반영한 문건이었다. 또한 야권 대선후보와 전략가들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 문건은 야권이 승리한 4·13 총선이후의 과제를 이렇게 요약한다.
"'87년 체제, 지난 30년간의 정치 키워드가 '대결'이었다면' 17년 체제, 또 다른 30년의 시대적 화두는 '타협'. 타협을 통해 정치를 정상화하는 3단계 민주화가 필요"하다는 상황인식을 밝힌다. (5쪽)
그리고 그 대안으로 대통령은 외치, 국회에서 선출하는 총리가 내치를 담당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제시한다.
이 문건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현존하는 정치질서의 기득권을 인정하고 그 바탕 위에서 개헌을 통해 분권형 대통령제를 한번 해보자는 것이다. 그 결과 개헌을 위한 다양한 정계 개편 시도가 운위되어왔다. 여야를 뛰어넘는 정계 개편이랄지 비박을 주요 파트너로 삼는 제3지대랄지 하는 말들이 모두 정계 개편을 통해 현재의 세력들이 국회를 거점으로 합법적으로 권력의 주체가 되자는 안이었다.
이 아이디어는 몇가지 중요한 함의를 띄고 있다. 첫째, 한국정치를 주름잡으면서 극우반동정치를 일삼는 새누리당 세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빠져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들의 의회내 기득권을 인정함으로서 그들을 극복할 계기가 완전히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큰 구상이었다.
두 번째는 재벌개혁에 대한 문제의식이 통째로 빠져버린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사회의 실질적인 지배자는 재벌이다. 그들이 일순 권력의 피해자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그들이 지배자다. 5년 대통령 권력은 유한하지만 재벌의 세습 권력은 영원무궁하기 때문이다. 분권형 대통령제를 채택하여 국회의 연합세력(소연정이나 대연정)이 정권을 잡으면 재벌개혁이 요원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재벌이 한국정치의 막후 지배자가 될 것이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군사독재세력의 후신이자 냉전수구세력의 정체성으로 한국 정치를 끊임없이 퇴행시키는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정계 개편이 정치권의 주된 관심사였던 것이다.
이러던 차에 시민항쟁이 시작되었다. 국정을 농단한 박근혜 대통령을 불신임하고, 새누리당에 대한 준엄한 심판을 요구하는 함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런데 항쟁이 본격화하면서 내년에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후보자들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이재명 돌풍'의 의미
항쟁이 있기 전부터 야권후보들은 크게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거칠게 나누면 이재명과 다른 후보들의 2그룹이다. 무슨 소린고 하니, 이재명 후보만이 핵심 가치를 겨냥한 좌향좌 포지션이고, 나머지 후보들은 모두 중도확장을 겨냥한 우향우 포지션이란 뜻이다.
김부겸 의원은 대구에서 분투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최대 기득권세력인 TK세력과의 '공존'을 주요 화두로 발전시켜왔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박정희 대통령 세력과의 화해'를 일관되게 추진해왔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안정감과 경륜으로 중도층에 어필하려 애써왔다. 문재인 전대표가 중도 확장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중도를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생각하고 있는 안철수 전 대표는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이때의 중도는 무엇을 의미할까? 지지하는 정당이 없고, 사안별로 그때그때 지지정당이 달라지는 사람, 그리고 정치에 막연히 비판적인 정서를 띄고 있는 사람들,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지않고 변화에 소극적인 무관심층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는 백만 시민들, SNS를 통해서 정보를 공유하고 공감하는 수천 만명의 광장밖 시민들은 이러한 개념의 중도와는 같은 건가? 다른건가? 이 분노하는 대중은 이전에 상상했던 중도의 개념을 완전히 깨어버린다.
대다수 대선주자들이 중도층 공략과 외연 확장에 매달리다 보니 이들의 메시지와 정치 행동에는 모순이 발생한다.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그들의 메시지를 들어보면 한국 사회는 혁명이외에는 대안이 없는 절망적인 사회로 묘사된다. 그런데 정치 행동과 대안으로 가면 기득권 세력에 대한 화해와 용서로 뒤바뀐다.
바로 이 모순점에서 이재명 돌풍이 시작되었다. 이재명은 기득권 세력에 대한 명쾌한 규정을 주저하지 않는다. 친일매국세력의 후손, 군사독재세력의 후예, 재벌과 유착한 세력…. 그리고 이들에 대한 정치적 단죄를 명료하게 선언한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단순한 이치로 범죄를 저지른 대통령을 탄핵하고 유죄 입증되면 감옥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말 자체를 이때까지 야권은 자기검열을 통해 걸러왔다. 이제 군사쿠데타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는 상태임에도 마음 한켠으로 옛날의 무섬증으로 혹 쿠데타가 일어날까봐 걱정하는 것처럼. 우리의 민주주의가 범죄를 저지른 대통령을 의법처리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 있음에도 이를 주장하기보다는 먼저 화해의 손길부터 내민다. 대만에서도 천수이벤 전 총통이 뇌물죄로 퇴임 후 징역살이를 했는데….
만약 중도가 유용한 개념이었더라면 문재인 후보의 지지도가 20%에서 정체되지 않았을 것이다. 한때 지지도 50%까지 치솟았던 안철수 현상의 주인공 안철수 전 대표가 10%대에서 맴돌지 않았을 것이다. 선두주자의 정체 상태를 딛고 이재명 시장이 10%의 지지율로 3자 정립구도를 만든 것이다.
문재인과 안철수의 정체 상태를 좀더 살펴보자. 문재인은 2012년에도 자신의 고유기반이 20%정도였다. 그런 점에서 그는 외연을 확장했다기보다 기본을 지키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2002년 노풍으로 형성된 친노의 대중적 지지 기반을 현상 유지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안철수는 좀더 참혹하다. 항쟁 초기부터 적극 참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의 지지율이 8-10%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은 무언가 심각한 경고음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박근혜 퇴진에 몰두하는 그의 모습은 그의 이전의 입장-정쟁을 비판하고 합리적 자세로 여야 사이의 타협을 강조했던 그의 스탠스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 안철수 현상의 동력을 상실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의 유일한 탈출구는 조기대선을 실현하여 정치공학적 정계개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일 것이다.
이재명은 확장성이 있을 것인가? 그에게는 두 개의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첫째는 그의 그릇됨과 준비 상태에 대한 검증이다. 두 번째는 항쟁의 발전 여부다. 그가 지금까지 한 것처럼 항쟁의 흐름과 정비례 관계를 유지해나가면 그는 문재인 대세론을 위협하는 실질적인 대안으로 부상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이 호남의 향배다. 호남은 지난 몇 년 동안 호남정치를 대변할 지도자를 학수고대해왔다. 작년 1월 민주당 전당대회 에서 올해 총선까지 호남을 대표할 지도자의 탄생 여부는 야권 정치에서 매우 중요한 관찰점이었다. 그런데 결론은 실패였다. 많은 사람들이 호남 정치의 복원을 부르짖은 천정배 의원을 주목하거나 기대를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천정배 의원을 비롯하여 누구도 DJ를 잇는 호남의 지도자가 되지 못했다.
호남은 문재인에게도, 안철수에게도 확실히 마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재명은 어떨까? 그의 숙제일 것이다. 그가 만약 호남의 마음까지 얻는다면 야권 대선후보 경쟁 구도에 지각변동이 발생할 것이다.
친노(또는 친문), 안철수 현상, 그리고 민주세력 본진으로서의 호남은 이때까지 야권정치를 설명하는 3개의 키워드였다. 그런데 여기에 진짜 변수가 출현했다. 그것은 광장과 SNS에서 보이는 세대 연합의 가능성이다. 성공과 실패를 통해 세상을 바뀌보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했던 6월항쟁세대와 헬조선에 분노하는 청년세대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내년 대선구도에서 세대연합을 성공시키는 후보가 나온다면 그가 다음 대통령이 되리라 나는 믿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끼리의 경쟁에만 빠져 있어서는 안된다. 지금 박근혜 지지도가 5%라고 해서 보수 세력의 지지도가 5%라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박근혜 이후 보수의 대표자가 만들어지면 본선에서 여전히 51% 대 49%의 피말리는 싸움을 대비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야권의 총합을 키우는 포지티브 섬 전략은 여전히 소중하다. 야권의 지지기반과 대선후보자들이 총력으로 연합해도 반드시 이긴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것이 한국 사회의 지형이기 때문이다. 후보들의 포지티브 경쟁과 지지자들의 포지티브 지지 활동이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야권의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정권교체가 우리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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