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나 사건은 두 번 반복된다고 쓴 바 있다. 그러나 그는 다음과 같은 것을 덧붙이는 것을 잊어버렸다.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반복된다."
마르크스의 글 중 가장 많이 인용되는 유명한 구절이다. 프랑스 혁명의 공화국 정신을 짓밟고 황제 자리에 오른 나폴레옹이 비극이라면, 이후 혁명과 반혁명의 혼란 속에서 삼촌의 명성 덕으로 권력을 차지한 나폴레옹의 조카 루이 보나파르트는 코미디라고 풍자한 것이다.
그렇다.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민주주의를 짓밟고 영구 집권을 노렸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비극이라면 루이 보나파르트처럼 아버지의 명성에 힘입어 대통령에 오른 박근혜 대통령은 희극임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소위 '21세기 IT 강국'이 '무당과 호빠 마담의 나라'였으니 이보다 더한 코미디가 어디 있는가?
반복되는 것은 '인물'만이 아니다. '사건'도 반복되고 있다. 박정희는 1979년 10월에 있었던 부마 항쟁에 의해 '퇴출'됐다. 물론 박정희는 10월 26일 궁정동 안가에서 여가수와 대학생 모델을 끼고 놀다가 최측근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쓰러졌다. 그러나 10.26의 원인인 '온건파'(김재규)와 '강경파'(차지철-박정희)의 갈등을 만들어낸 것은 부마 항쟁이었다.
구체적으로,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YH 여공들의 신민당사 점거 투쟁으로 촉발된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국회의원직 제명에 저항해 부산과 마산의 학생, 시민, 노동자들이 일어난 부마 항쟁에 대한 대응 방식에 관한 갈등이었다. 즉 박정희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은 '10.26 의거'이지만 '궁극적인 요인'은 (YH 노동자 항쟁과) 부마 항쟁이었다(이 점에서 원래 TK와 PK는 정치적으로 다르며, 우리의 지역주의가 원래부터 '호남 대 영남'의 대결이었다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인식은 잘못된 것이다).
박정희와 마찬가지로 박근혜도 결국 국민들의 저항에 의해 몰락하고 있다. 아니 이미 몰락하고 말았다. 박근혜는 유례없이 100만 명의 시민이 모인 '11월 항쟁', '광화문 항쟁'에 의해 사실상 이미 퇴진당한 것에 다름 아니다. 다만 탄핵이냐, 하야냐, 2선 퇴진이냐 등의 구체적 경로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물론 박근혜는 물러설 의사를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설사 자리를 지킨다고 하더라고 껍데기만의 식물 대통령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정작 문제는 '포스트 박근혜', 한 연구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분노 이후'이다.
부마 항쟁은 불행히도, 마르크스의 요약처럼, 비극으로 끝났다. 부마 항쟁을 통해 국민들은 박정희 제거에는 성공했지만 그가 사육해놓은 전두환 등 정치 군인들이 12.12 군사 반란으로 군을 장악했다. 부마 항쟁이 열어놓은 서울의 봄은 거리 투쟁에 나선 사회운동과 달리 제도 정치 틀을 고집했던 정치권의 우유부단과 양김의 분열로 광주 학살과 학살 정권의 출범이라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만일 마르크스의 정식이 맞는다면, 광화문 항쟁은 그 주인공을 닮아 희극으로 끝나게 되어있다. 그래서는 절대 안 된다. 물론 광화문 항쟁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뜬금없는 박근혜 면담 제안과 같은 희극이 전개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번은 박근혜와 같은 희극으로 끝나서도, 1979년 부마 항쟁과 같은 비극으로 끝나서도 안 된다. 이번 항쟁만은 제대로 된 항쟁으로 발전시켜 해피엔딩으로, 성공한 '광화문 혁명'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현재 쟁점은 두 가지로 집약된다. (특검과 새 정권 출범 후에도 사법 처리 등 이 문제가 다루어지겠지만) 우선 당장 박근혜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포스트 박근혜'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하야, 탄핵, '질서 있는 퇴진' 등이 제시되고 있다. 이들은 일장일단이 있고 결국 정치권 내의 다양한 정치 세력 간의 힘의 관계, 나아가 시민 사회 내의 사회적 힘의 관계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박근혜가 물러설 의사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선택은 탄핵밖에 없는 것 같다.
탄핵은 독재에 대한 가장 확실한 응징이자 두고두고 역사적 교훈이 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첫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역풍 가능성이 상당히 있으며 둘째, 시간이 너무 걸리고 셋째, 국회 표결 사법부 판결에서 통과 가능성이 불확실하다. 그 같은 이유로 개인적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대중은 역풍 가능성에 관한 한 최소한 아직까지는 압도적인 촛불의 힘으로 나같이 나약한 먹물의 기우를 쓸고 가 버렸다. 게다가 박근혜가 퇴진도, 2선 후퇴도 거부함으로써 탄핵 이외의 다른 선택을 없애버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있다. 제도 정치권의 탄핵 움직임과는 별개로 광장과 '거리의 정치'에서의 하야, 퇴진 운동을 접지 말고 지속해야 한다. 정치권의 탄핵 운동과 거리의 퇴진 운동을 병행해야 한다. 이 같은 광장의 압박만이 탄핵에 필요한 동력을 국회와 정치권이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것이며 보수적인 사법부에 대해서도 강한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포스트 박근혜는 어떠한가? 박근혜는, 나라야 망가지든 말든, 2선 후퇴조차 거부하고 있다. 심지어 계엄령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이 효과는 양면적이다. 우선 국정 표류로 나라가 망가질 것이다, 제2의 외환 위기가 올 것이라는 우려까지 있다. 그러나 다른 한쪽으로는 박근혜, 그리고 친박의 버티기로 해방 정국의 농지 개혁, 6월 항쟁 당시의 6.29 선언과 같이 '수동 혁명'(위로부터의 '혁명 예방적인 개혁')에 의해 지배 세력이 계속 권력을 유지하기는 어려워질 것이다.
결국 국민은 떠나고 친박과 '간신'들, 그리고 5%의 콘크리트 지지자들만 남은 명목만의 식물 정부, 즉 '근실(근혜순실) 정부'와 국민을 대표하는 '국민 정부'가 공존하는, 상당 기간의 '이중 권력' 상태가 불가피해 보인다. 따라서 국회가 중심이 되어 빨리 실질적으로 국정을 이끌어갈 대체 내각을 구성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에 대해서는 국회를 중심으로 한 거국 중립 내각이냐, 시민 사회와 광장도 참여하여 선출하는 국민 내각이냐가 대립하고 있다. 바람직한 것은 후자이다. 그러나 야권에서도 일부는 이에 소극적 내지 부정적인 것 같고 새누리당의 합의를 고려하면 어려울 것 같다. 따라서 양자의 절충적 형태가 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국민 내각이냐 거국 중립 내각이냐는 형식도 형식이지만 속도이다. 빠른 시간 내에 합의된 대안을 국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박근혜가 국내외적으로 국정을 재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러하다. 빠른 시간 내에 국회가 야권을 중심으로 긍정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대안 내각과 대안 정치를 국민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야당 간의 주도권 싸움, 특히 지금과 같은 대권 주자를 중심으로 한 대권 정치, 대권 경쟁을 최소한 국민 앞에서는 중단해야 한다.
물론 정치란 경쟁이고 정치인에게 경쟁하지 말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혁명적 상황'은 다르다. 대권 주자들과 야권은 지금과 같이 현 정국을 개별적인 언론 플레이로 대권 경쟁에 이용하려는 행태를 중단하고 내부적으로 논의해 국민에게 합의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사실 (아직까지는) 야권의 가장 강력한 대권 후보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과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대표만 해도 지금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은 당대회 야합으로 여론의 지탄을 받은 이해찬, 박지원을 과감하게 내치는 등 '당 혁신'에 나서지 않음으로써, 안철수는 '아름다운 후보 단일화'를 거부하고 일방적인 후보 사퇴를 단행함으로써, 질 수 없는 대선을 지게 만들었다. 이 점에서 이들은 국민들이 현재의 비극을 겪게 만든 '원인 제공자들'이다. 따라서 둘이 지금처럼 힘 겨루기를 할 것이 아니라 광화문 광장에 나와 "저희들이 4년 전 잘못해 여러분들이 고생하고 있다"고 석고대죄해야 한다. 그리고 만일 그리 한다면 그들은 앞으로 더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것이고 더 큰 정치인으로 성장할 것이다.
아니 그 같은 감동은 주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현재와 같은 정국에서까지 계속되고 있는 개인적인 대권 경쟁은 중단해야 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박근혜 처리 문제는 별로 고민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민은 포스트 박근혜, 특히 무능한, 그러면서도 탐욕스러운 야권이다. 최근의 야권 대권 주자들의 행태를 볼 때마다 머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60년 4.19 학생 혁명과 80년 봄(부마 항쟁이 가져다준), 그리고 87년 6월 항쟁의 비극적 결말이다.
현 유력 야권 대선 주자들의 얼굴에는 학생들의 피의 대가로 어부지리로 권력을 잡은 뒤 정쟁으로 날을 샌 민주당 구파 윤보선 전 대통령과 신파 장면 전 총리의 얼굴이, 분열로 80년과 87년을 말아먹은 DJ와 YS의 얼굴이 중첩되어 나타난다. 오죽했으면 한 후배 정치학자는 꿈에 해방 정국의 혼란 속에서 '국민의 희망'으로 미화되어 미군기로 여의도에 내리는 이승만의 모습이 나타났다고 한다. 헌데 자세히 보니 얼굴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었다는 것이다. 박근혜의 버티기, 야권의 분열 속에 내년 봄 반기문이 '구세주'로 귀국하는 섬뜩한 꿈이다.
이와 관련, 안철수의 제안으로 차기 주요 야권 대선 주자들이 비상시국정치회의를 열고 박근혜의 탄핵 추진 등 합의를 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특히 야권의 유력 정치인들이 함께 모여 손을 잡음으로써 "이런 시국에도 대선 주자들이 대선 경쟁이나 하고 있느냐"는 대중의 우려를 어느 정도 불식시킨 것은 매우 긍정적이고 박수를 쳐줄 일이다. 그러나 김윤철 교수가 잘 지적했듯이, 이 역시 "여론 조사 수치에 기대어 대선 주자냐 아니냐를 따지며, 참여 범위의 경계를 나누고 '대선 주자'라는 계급 놀이"를 벌이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예를 들어, 왜 지지율이 거의 없는 천정배는 들어가고 노회찬은 배제했는가?
그리고 일각에서는 이들이 박근혜 탄핵을 한 목소리로 요구하는 것은 "우리가 자리에 앉게 빨리 내려오라"고 압박하는 느낌을 주는 만큼 이 문제는 차라리 세 당의 대표들 간의 합의에 맡기고 합의문의 후반부에 밝힌 단합에 초점을 두었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즉 "촛불 시민에게 감사하며 시민들의 뜻을 받들어 제 2공화국(장면 정권)과 87년과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데 주안점을 두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 더 짚고 넘어간다면 이중 권력 상태에서 대안 정부의 '제2권력'은 대안 내각으로 표상되겠지만 그 뿌리는 광장의 시민에게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대안내각에 대한 광장의 통제와 직접 민주주의적 기제를 극대화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광장의 퇴진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비상국민행동을 전체 시민을 대표하는 정통성을 가진 안정적인 민주적 기구로 재편하여 장기 투쟁을 준비해야 한다.
김세균 교수는 일반 국민들로부터 대표성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개인 가입과 민주적 선출 원칙에 따라 부문별/지역별 비상국민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이들을 묶어 전국 단위의 비상국민위원회를 출범시켜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이 같은 조직이 과도 정부로부터 차기 대선('국민 후보' 선출)까지 국민들의 의사를 집약해 정치권에 압박해야 한다. 사실 우리가 촛불을 내려놓아서는 안 되는 이유는 박근혜에게 퇴진을 압박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아니 그보다 어쩌면 더 중요한 이유는 야권이 4.19, 80년, 87년 같은 분열과 '뻘 짓'을 감시하고 막기 위해서이다.
탄핵이 시간이 걸리고 박근혜가 국정을 재개한 만큼 야권과 광장은 조속한 대안 내각으로 전제로 투쟁의 강도를 한 단계 높여야 한다. 특히 검찰이 박근혜를 피의자로 지목한 만큼 더욱 그러하다. 우선 현 내각을 무력화시키는 한편 전면적인 '불복종 비협조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와 관련, 정치권은 박근혜에게 모든 통치 행위 중단, 외국에게 모든 협정 일시 중지, 군과 경찰에게 정치적 중립, 공무원들에게 박근혜 정책 집행 거부를 요구하는 공동 선언을 발표해야 한다는 이도흠 교수의 제안은 중요하다. 그리고 정치권은 현 내각에서 시한을 제시해 사임을 요구하고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해임건의안을 올리겠다고 압박하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모두들 과도 체제의 형식과 누가 총리로 적합하냐는 인물에 관심을 쏟고 있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 아니 어쩌면 이보다 중요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과도 체제가, 그리고 다음 정부가 해나가야 할 과제들이다. 나는 과도 체제가 어찌되건, 총리가 누가 되건, 광장의 사회운동 세력들이 광화문 항쟁 뒤에 자리 잡고 있는 대중들의 분노의 내용과 과제들을 응축하여 과도 체제와 이후 정부에 이를 압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가능하다면 이 같은 '대리주의'까지도 넘어서 광장에 모인 대중들 스스로 자신들을 거리로 내몬 분노의 내용과 과제를 집약하여 과도 체제와 이후 정부에 이를 압박해야 한다.
이번 '근실게이트'에는 세 층위가 중첩되어 있다. 표층에는 '73년 체제'(유신 체제)와 '고조선'(한 학부생의 표현으로 "우리 사회는 헬조선이 아니라 샤머니즘이 지배하는 '신정일치의 고조선'이었다")이다. 중간층에는 '87년(헌정) 체제'이다(요즘도 한국 사회를 87년 체제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87년 체제는 97년 IMF에 의해 무너져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97년 체제로 변화했고 87년 체제 중 남아있는 것은 87년 헌법에 기초한 헌정 체제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깊은 심층에는 1대 99의 양극화를 특징으로 하는 '97년 체제'(신자유주의 체제)가 자리 잡고 있다.
우선 표층 수준이다. 유신 체제와 고조선 체제가 결합한 근실 게이트에 대한 특검이 이루어지겠지만 특검에서 다루지 못한 여러 분야의 국정 농단과 탄압 등에 대한 조사와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니 특검의 조사 내용에 특정하지 않은 분야에 대한 조사가 포함되어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조사를 특검에 요구해야 한다. 시간 등 여러 이유로 이것이 관철되지 않는 경우 별도의 조사와 개혁 조치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 중 생각나는 것을 몇 가지만 열거하고자 한다. 정유라 이화여자대학교 부정 입학에 대해 교육부는 이대와 정유라 지도교수 등에게 주어진 각종 사업과 연구 과제에 대해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았다. 따라서 교육부와 연구재단에 대해 정유라 관련 사업과 영남대 새마을 운동 지원 사업 등 '근실 사업'에 대한 조사를 해야 한다. 국정 교과서 '복면 집필자'를 포함해 국정 교과서 제정 과정을 조사해야 한다.
이미 밝혀진 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비롯한 학계 등 각 분야의 블랙리스트의 존재와 작성 과정, 공영 방송의 파괴 과정을 조사해야 한다. 검찰의 사유화 과정을 조사하고 검찰에 대한 국민 통제 기제를 확실하게 만들어야 한다. 성과급 연봉제 등 근실 정부의 노동 개악을 즉각 중단시켜야 한다. 근실과 재벌 유착을 파헤쳐야 한다. 한상균 민주노총위원장 등 박근혜 정부에 의해 부당하게 투옥된 노동운동가들과 양심수들의 석방을 관철시켜야 한다,
다음은 중간층으로 87년 헌정 체제이다. 이번 사태의 이면에는 분명히 제왕적 대통령제와 승자 독식적인 정치 체제가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개헌이라는 뜨거운 감자에 직면하게 된다. 물론 현 국면을 개헌이란 문제로 초점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 나아가 평소 다음과 같은 이유로 나는 개인적으로 개헌에 대해 부정적 생각이 강했다.
첫째, 우리의 문제는 헌법 그 자체에서 연유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 구체적인 정치 행태 때문이다. 둘째, 5년 대통령 단임제는 문제이나 이에 대한 '원샷 개헌'은 불가능하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전면적 개헌이 불가피하다. 셋째, 헌법은 결국 제정 당시의 사회 세력 간의 힘의 관계를 반영한 것인데 현재 개헌을 할 경우 전문의 임시정부 법통 삭제 등 개악으로 갈 것이 뻔하다.
그러나 이제 이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이는 우리의 현실이, 그리고 광장의 촛불이 단순한 근실 게이트의 청산을 넘어서 '민주 평등 연대에 기초한 새로운 공화국'에 대해 고민하고 구상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광장을 일종의 '제헌의회'로 발전시켜야 한다. 또 근실이 덕분에 사회적 힘의 관계까지 역전되어 현재보다 전향적인 헌법의 개정이 가능해졌다. 따라서 개헌이 아니라 '새로운 공화국의 구성'이라는 시각에서 기본권으로부터 정부 형태 등 이 문제를 고민하고 논의해 나가야 한다.
그 방향은 우선 세 개가 떠오른다. 소수자 권리 등 87년 이후의 변화를 감안한 기본권의 업데이트와 강화이다. 둘째, 내각제, 지방 정부에 권력을 대폭 양도하는 남한 연방제 등 권력 집중을 개선할 수 있는 정부 형태의 고민이다. 셋째, 어쩌면 둘째 보다 더 주요한 문제로 표의 등가성을 파괴하고 사실상의 보수 독점 정치를 영속화시키는 선거 제도를 비례 대표를 강화하고 독일식 연동제로 개혁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인구 차이로 농촌의 표가 도시보다 세 배 이상으로 취급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불합리한 선거 제도에 의해 아직도 보수표는 한 표가 진보 정당표 네 표로 취급되고 있다. 이를 시정하기 위해 선거관리위원회는 독일식 연동제 도입과 비례 대표 확대를 주장했다 (이 안에 여당도 관심을 보였으나 청와대의 반대로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여기에도 최순실이 개입한 것인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거대 보수 정당들은 올 총선에서 야합해서 비례 대표를 오히려 축소했다, 따라서 정부 형태 개혁을 선거 제도 개혁과 연계시켜야 한다.
마지막으로 97년 체제이다. 97년 시장 만능의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의 전면화에 따라 우리 사회는 무한경쟁과 1대 99의 양극화 사회로 변화했다. 이의 극단적 표현이 '헬조선'이다. 광장의 촛불을 통해 광장의 시민들은 대통령의 국정 농락과 최순실의 작태에 대한 분노(유신, 고조선 체제와 87년 헌정 체제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 있지만 그 심층에는 보다 근본적인 분노가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적 헬조선, 흙수저 세습 신분제에 대한 분노이다.
이번 항쟁의 최고의 수훈감은 박근혜도, 최순실도 아니고 정유라이다. "돈 많은 부모 만나는 것도 실력"이라는, SNS에 올린 정유라의 한마디가 헬조선의 현실과 결합하여 시민들, 특히 청소년들을 폭발시키고 만 것이다. '박근혜 이후 살고 싶은 사회'에 벽에 붙은 포스트에 유독 눈길을 끄는 것은 있다. "열심히 일하는 부모님이 돈 없다는 이유로 자식에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였다. 이 점에서 이번 항쟁은 신자유주위의 희생자들이 동력이 됐던 '트럼프 혁명', 정확히 표현해 '트럼프 반혁명'의 한국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아직 꺼지지 않았지만 일단은 좌초한 '샌더스 혁명'의 한국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샌더스와 트럼프는 신자유주의 희생자들의 두 출구이다).
답답한 것은 이와 관련해, 우리의 경우 광장의 99%의 분노를 묶어서 정치적 동력으로 만들 수 있는 샌더스와 같은 지도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야권을 대표하는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기본적으로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계승하는 바, 이 문제에 관한 한 (97년 경제 위기라는 상황에 집권했다는 사정이 있다고는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전면화를 주도한 사실상의 당사자들이다. 예를 들어, 정리 해고와 파견 근로제를 전면화시킨 것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고 쌍용자동차를 해외 매각한 것도 이들이다.
과거는 과거다. 문제는 이에 대해 이들이 아직까지 진솔한 반성이나 사과를 하고 있지 않으며 신자유주의 정책과 결별한 것 같지도 않다는 점이다. 사실 문재인의 경우 미르와 K재단으로 온 나라가 난리가 나고 모금에 앞장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을 해체하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는데 뻐젓이 재벌 기업 연구소장들과 회동을 했다. 한마디로, 설사 박근혜를 몰아내고 야당이 집권을 한다고 청소년들을 광장으로 내몰고 있는 헬조선이 별로 바뀔 것 같지 않다. 따라서 이에 대한 대안적 정책들을 만들어 과도 정부와 차기 정부에 압박해야 한다. 나아가 광장의 분노를 정치적으로 묶어낼 수 있는 정치적 프로젝트를 만들어야 한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초기, 광우병 문제로 촛불이 뜨겁게 타올랐다. 이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세계 민주주의 사상 유례없는 새로운 시민운동의 전형"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한 진보 언론이 나에게 현장에 가보고 르포를 써달라고 부탁했다. 원고를 보냈는데 기사가 계속 나오지 않아 문의를 하니 내 글에 문제가 있어 게재를 보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촛불을 찬양하는 '선동적' 글을 기대했는데 너무 '성찰적'인 글을 써준 것이 문제였다. 우여곡절 끝에 그 글은 결국 실렸는데 요즈음 광화문 항쟁을 보면서 자꾸 그 글이 생각난다.
광우병 촛불은 역사적 사건이다. 과거의 운동권 중심의 근엄주의를 넘어서 유모차를 끄는 엄마들이 참여하는 축제 분위기의 '즐거운 혁명'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가져온 것, 주요 사회운동 단체장들이 단상을 차지하는 낡은 단상 권력을 해체하고 모두가 단상에 오를 수 있는 '단상 혁명'을 이룬 것 등은 특히 그러하다. 그러나 지나친 낙관론은 금물이다. 촛불이 '정치적으로 주체화'되지 않는다면 결국 일회성 촛불로 끝나고 말 것이다. 촛불은 계속될 수 없다. 사실 광우병 촛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2002년 대선 때 미군 장갑차에 치어 죽은 효순 미선 촛불 시위가 있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분노한 촛불이 있었다. 그러나 이 촛불들은 정치적 주체화되지 못했고 시간이 지나자 꺼졌다. 그리고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이 승리했다.
불행히도, 나의 글은 맞았다. 광우병 촛불은 오래지 않아 꺼졌다. 얼마 뒤 용산 참사가 일어났지만 촛불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어진 대선에서 박근혜가 승리했다. 현재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광우병 집회보다 촛불은 더욱 진화하고 발전했다. 중고생들까지 촛불에 가담했고 집단지성은 현기증이 날 정도로 더 성숙했다.
대중은, 시민은 위대하다. 그러나 촛불은, 역사의 '광기의 순간'은 지속될 수 없다. 따라서 정치적 주체화가 시급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과 같은 자유주의적인 야당들도, 정의당 같은 진보 정당도 이들의 분노와 열기를 담아내기에는 부족하다. 그렇다고 이들을 정치적 주체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세력이, 새로운 진보적 프로젝트가 보이는 것도 아니다. 답답한 일이다.
광화문 항쟁은 마르크스의 정식대로 희극으로 끝나서도, 부마 항쟁, 4.19 학생 혁명, 6월 항쟁과 같은 비극으로 끝나서도 안 된다. 광화문 항쟁, 11월 항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광화문 혁명', '11월 혁명'으로 만들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정치권, 특히 야권이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촛불을 폄하했다. 그러나 4.19와 80년 봄, 그리고 87년 6월 항쟁이 보여주듯이 촛불을 꺼트리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야권의 뻘 짓이다.
이 같은 뻘 짓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촛불을 내려놓을 수 없다. 촛불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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