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 12월 24일 '공화국 창건 60돌을 맞이한 2008년 10대 뉴스'를 선정했다.
10대 뉴스에 포함된 남북 관련 소식은?
첫 번째는 '9.9절 60돌 경축행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9월 5일 담화 발표'다. 두 번째는 '뉴욕필하모닉 평양공연', 아홉 번째는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삭제를 통한 북미신뢰조성의 역사적 첫걸음'이었다.
그렇다면 남북관계에 대해선 어떤 뉴스를 꼽았을까? 유일하고도 마지막인 열 번째가 '12.1조치 단행'이었다.
이 신문은 "남조선에서 새로 출범한 이명박 정권의 반북대결정책으로 인하여 북남관계는 전면차단의 중대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고 우려하면서, "12월 1일, 군사분계선을 통한 육로통행을 엄격히 제한, 차단하는 조치를 취하였다"고 설명했다.
북미관계는 긍정적 사건이, 남북관계는 부정적 사건이 선택됐다. 이것이 북한이 의도한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의 현 주소다.
이런 흐름은 17일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으로 이어졌다. 성명은 '전면대결태세에 진입하고 남측의 선제타격 논의와 관련해 강력한 군사적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했다.
우리측 대응과 분석은 간단 명료하다. 먼저 합동참모본부는 17일 오후 6시를 기해 육·해·공군에 대북경계태세 강화 지시를 하달했다. 정석일 것이다. 한나라당의 성명은 무시와 비웃음이다. "이렇게 협박한다고 한국이 호들갑을 떨 줄 알았다면 오산"이라고 했다. 전형적인 하드파워적 대응이다.
'비핵개방 3000'의 '선핵폐기' 주장에서 한치도 어긋남이 없다. 지난 1년간의 남북한 상호강경정책의 결과다. 남측은 통미봉북을, 북측은 통미봉남을 추구했다. 남측은 전단을 날려보내며 혼란을 획책한다. 북측은 이명박 정부를 비난하며 경제적, 군사적으로 압박한다. 공히 치킨게임의 양상이다.
북미친선축구 소식, 전형적 소프트 파워
오는 20일 취임하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기간부터 '직접적이고, 지속가능하며, 적극적인 대북접근법'을 천명해왔다. 이에 대해 지난 12월 "신정부와 한반도 평화"라는 주제로 강연한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 대사는 "(적극적인 대북접근법은) 단호하고, 목적이 있고, 창의적이며, 강력한(tough) 대화일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내정자가 인준 청문회에서 밝힌 새 정부의 외교정책 기조도 연장선상에 있다. 힐러리는 하드 파워도 고려하겠지만 외교, 법률, 문화 등 소프트 파워를 결합한 '스마트 파워'를 전면에 내세울 것임을 강조했다. 군사력 위주의 일방주의에서 벗어나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협력적 대외관계를 추구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스마트 파워 이론을 제창했고, 현재 주일 미대사로 내정된 조셉 나이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석좌교수는 '성공적인 리더십에는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 기술이 모두 필요하지만 파워의 배분은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르며 상황에 가장 적합한 파워 기술이 필요한데 이것이 스마트 파워(smart power)'라고 설명한 바있다.
그렇다면 스마트 파워 이론이 한반도에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제창자인 그는 "북한에 대해 한국은 소프트 파워를, 중국은 하드 파워를 행사할 수 있다"고 했다.(<뉴스위크> 한국판 1월 21일자) 그는 소프트 파워의 본질은 '매혹과 설득'이라고 했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미국과 중국은 북한에 대해 소프트 파워를 행사하려 하고 있고, 우리는 하드 파워를 과시 중이다.
미국은 지난해 이미 뉴욕필의 평양공연을 성사시켰다. 또한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적성국교역금지법을 해제했고, 북한을 대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했다.
지난 17일 RFA(자유아시아방송)는 북한축구팀과 LA 갤럭시와의 친선경기가 민간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1970년대 이미 중국과의 국교 교섭시 '핑퐁외교'를 활용했다. 그보다 앞서 원폭 피해자인 일본과는 '베이스볼외교'를 활용했다. 1949년 미프로야구 마이너리그 시범경기가 일본에서 열렸다. 맥아더 장군은 이를 가리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외교방문"이라 했다. 이것이 미국식 소프트 외교의 역사다.
실험은 충분하다. 변해야 한다
지난 1년간의 실험은 충분했다. 남북 공히 학습효과를 얻었다. 이제 모두가 변화할 때다. 특히 우리가 더욱 그렇다.
첫째, 미국의 스마트 파워형 외교정책에 걸맞게 우리의 대북정책도 대변환이 있어야 한다. '비핵개방 3000'에 대한 탄력적 운용이 요구된다. 쌀, 비료등 인도적 지원을 재개하고 이산가족 만남을 성사시켜야 한다.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등 문화, 경제적 교류를 확대시켜 나가야 한다. 북미간 직접대화와 6자회담을 통해 북핵문제를 전면적으로 해결하고 이를 통해 한반도평화 프로세스를 진행시켜야 한다. 결국 시작은 6.15 공동성명과 10.4선언에 대한 인정이다.
일본과 공조할 생각은 버려야 한다. 하드 파워에 입각한 우리의 대북봉쇄정책과 일본인 납치문제를 핑계삼는 일본의 대북조선봉쇄정책이 결합되었을 때의 위험성은 강조될 필요가 있다. 일본은 지금이라도 일본제국주의 시절 강제징용과 침략에 대한 선 사과와 반성이 있어야 한다. 2002년 9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수상의 '조일평양선언'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둘째, 외교안보팀의 전면적 쇄신을 통한 대북정책변환이 요구된다. 특히, 명확한 비전과 가치를 제시하지 못하는 장관의 교체가 필요하다. 평화통일은 헌법이 추구하는 가치이고 대통령취임선서에도 그 의무가 확인되고 있음을 되새겨야 한다. 남북모순에 대한 해결없이 선진화는 없다. (19일 유명환 외교부장관은 유임됐고 통일부 장관에는 현인택 고려대 교수가 내정됐다)
셋째, 미 보수파와의 관계만을 염두에 둔 한미동맹을 좀 더 포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동맹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민주당의 미의회 지배와 오바마 행정부가 최소한 8년 정도는 갈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이명박 행정부와 한나라당 지배 국회의 남은 임기 동안 미국은 민주당 지배라는 것을 인정하자. 한미 FTA에 집착하고 있는 한미동맹의 현안을 좀 더 확장시켜야 한다. 북핵문제 해결, 정전협정체제의 평화협정체제로의 전환, 새로운 동북아질서에 대한 로드맵이 필요하다. 한미동맹의 재구축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래서 감히 주장한다. 대전환하기에는, 선단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서는 지금이 최적이다. 서로 으르렁대기만 할 뿐, 한반도의 미래에 대한 비전이 상실된, 현재의 하드파워적 접근은 이제 끝내야 한다.
지난 15일 서울 외신기자클럽이 주최한 기자간담회에서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이다. "1994년 제네바 핵협정 당시 한국정부가 핵을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가 철저히 소외되고 그야말로 통미봉남의 상태에 빠진 쓰라린 역사가 있습니다." 이제는 스마트파워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