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이를 바꾸자는 말을 못한다. 마땅한 대안을 제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과제가 단순히 교육만의 문제가 아닌 까닭이다. (☞관련 기사 : 독일 교육 부럽다? 해법은 교육 '밖'에 있다).
이와 같은 입시 경쟁은 타협의 여지가 없는 무한 경쟁이다. 설령 아무리 우수한 학생들만 모였을지라도 석차를 내어 줄을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도 그 대열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일부 상위 학생들을 위해 나머지 다수는 불필요한 경쟁에 들러리를 서고 있는 것이다. 대다수 학생들은 자신이 미래에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는다. 할 수도 없다.
이러한 교육 제도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 왜 소수를 위해 다수가 희생양이 되어야 할까? 바로 여기에 우리 중‧고등학교 개혁의 당위성이 존재한다. 그러면 어떻게 바꿔야 할 것인가? 독일의 사례에서 그 시사점을 찾아볼 수 있다.
독일에서는 교육과정을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하고 있는데, 1단계가 초등학교, 2단계가 우리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 일부를 합쳐 놓은 것과 유사한 하우프트슐레(Hauptschule), 레알슐레(Realschule), 김나지움(Gymnasium) 과정이고, 3단계는 대학과정이다. 먼저 독일의 초등학교는 4년제이다. 일부에서 6년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그것은 예외적인 경우이다.(☞ 관련 기사 : 5세 아이가 "모욕하지 마세요" 외치면 당신은?) 이어서 2단계로 진학한다.
이러한 과정들은 그 기간과 교육 내용 면에서 우리 학제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단순하게 일대일로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 그러나 우리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현실을 돌아볼 때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중‧고등학교가 오로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 반면, 독일의 2단계 과정은 학생들을 학습 능력에 맞추어 서로 다른 학교에 진학시키고, 직업학교나 대학에 가는데 적절한 교육을 실시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학생들은 누구나 자신에 맞는 교육을 받을 수 있고, 교사들도 사명감을 가지고 가르칠 수 있다.
하우프트슐레에는 주로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진학하는데, 학문적 지향이나 이론에 치중하기보다 실습이나 방법론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여 향후 받게 될 직업 교육에 대비한다. 주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개 5~6년 과정으로 2010년 기준 전국에 약 5200개의 학교가 있으며, 학생 수는 65만 명으로 조금씩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를 마칠 경우 교육 기간으로 볼 때 우리의 중학교 졸업과 비슷하다. 졸업한 후에는 4년 가량의 직업교육을 받고 제빵사, 배관공, 미장공 등과 같은 비교적 단순한 직업을 갖게 된다.
이보다 공부를 조금 더 잘하는 학생들이 가는 레알슐레는 6년 과정이며, 약 3000개의 학교에 110만 명이 넘는 학생들이 재학 중이다. 여기서는 학문적 지향을 포기하지 않고 자연과학, 공학 또는 사회과학 등 다양한 과목들을 공부하게 된다. 졸업하면 직업전문학교, 전문상위학교 또는 김나지움의 아비투어 코스 등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된다. 역시 3년 정도의 직업교육을 받고 간호사, 샐러리맨 등 좀 더 학력을 필요로 하는 직업 세계로 진출하게 된다.
독일에는 직업교육을 위한 다양한 형태의 학교가 존재한다. 직업준비학교, 직업기초학교, 직업전문학교, 직업발전학교, 직업 김나지움 등 9가지에 이르는 이들 학교는 각각의 특성에 맞는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하우프트슐레 졸업장이 없어서 직업교육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은 직업기초학교에서 해당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직업교육 관련 이중 교육 시스템이란 기업과 학교에서 동시에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는데, 일주일에 2일은 학교에서, 3일은 회사에서 교육을 받는 식이다.
반면에 공부를 잘하여 대학 진학을 준비하는 김나지움은 8~9년 과정이다. 9년 과정일 경우에는 우리의 대학 1학년 과정을 마친 것과 유사하다. 약 3000개가 넘는 학교가 있으며, 여기에는 약 240만 명의 학생과 16만 명의 교사가 함께하고 있다.
이들은 김나지움을 마치면서 보는 졸업시험을 통해 대학 입학 자격을 얻게 된다. 이를 보통 아비투어(Abitur)라고 하는데, 이 아비투어의 성적이 좋을수록 우선적으로 원하는 대학의 학과에 가게 된다.
대학 입학 자격(아비투어)을 취득한 학생 수는 2010년 기준으로 약 50만 명에 이르는데, 독일에서도 학생들의 아비투어 취득률은 부모의 학력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나지움 졸업자의 60%는 그 부모들도 아비투어를 가진 반면, 졸업생 가운데 하우프트슐레를 졸업한 부모를 가진 비율은 단지 8%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위 내용들을 종합하여 비교하면, 대학에 갈 학생들만 김나지움에서 입시를 위해 2~4년 더 공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즉 하우프트슐레나 레알슐레 졸업생은 그 입시 준비 기간에 직업 관련 교육을 받음으로써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피할 수 있다. 공부에 관심도 없고 잘 하지도 못하는데 획일적으로 자리를 채워야 하는 우리 중‧고등학교 시스템과는 다른 것이다.
요약하면 초등학교 4년을 마치고 성적에 따라 하우프트슐레, 레알슐레, 김나지움으로 나누어 진학을 하는데, 이는 우리의 초등학교 상급반 및 중학교 과정에 해당한다. 이곳을 마치면 하우프트슐레와 레알슐레 졸업생은 직업교육을 받는 반면, 김나지움은 대학진학을 준비하는 곳이다. 이 과정이 우리의 고등학교 과정에 해당한다. 독일에서는 이미 우리의 고등학교 과정에서 직업 준비 등 사회 진출을 준비하는 반면, 우리는 그냥 대학 입시 준비에만 몰두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김나지움에 가지 않았다고 아예 대학에 갈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사정에 따라 어렸을 때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그래서 못할 수도 있다. 그러다가 뒤늦게 공부를 하고 싶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학생들이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이들은 추가적으로 저녁 시간에 운영하는 김나지움 과정을 이수하여 아비투어를 취득하면 된다. 이처럼 누구나 공부하고자 한다면 언제든지 다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실제로 쾰른대학에서 유학할 때 그런 사례를 종종 보았다. 마틴(Martin)이라는 친구는 나이가 꽤 들었는데, 하우프트슐레를 나와서 벽돌 쌓는 미장공으로 일하다가 대학에 온 경우였다. 크리스토프(Christophe)는 남자인데 레알슐레를 마치고 간호사로 일하면서 정치학을 공부한 경우였다. 병원에서 교대 근무를 하면서 학업을 병행한 것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여전히 병원 일을 계속하면서 박사과정을 모색하고 있다.
세 가지 학교로 나누어 진행하는 독일의 2단계 교육 과정은 우리에게 몇 가지 중요한 시사점들을 제공한다. 첫째, 학교의 공교육이 살아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사교육을 받지 않는다. 우리와 같은 사설 학원이나 과외가 없다. 간혹 대학의 교육학과 게시판에 과외교사(Nachhilfe)를 구한다는 게시물이 붙는데, 이것들은 대부분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운 학생을 위한 보충학습 교사를 찾는다는 의미다.
이처럼 사교육이 불필요한 이유는 학생들을 학업 능력에 따라 적절하게 구분하여 그들에게 맞는 교육을 실시하고, 또 대학별 서열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며, 보다 더 궁극적으로는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우리의 사교육비 부담은 아예 아이 출산을 포기하게 만들고 있다. 이 사교육은 보충수업이 아니라 남들보다 더 잘하기 위해 또는 선행학습을 위해서다. 그에 따라 학교의 공교육은 그 기능과 역할을 상실해 버렸다. 학교는 단지 잠자는 곳이라는 냉소적 이야기도 들린다. 그 막대한 사교육비를 세금으로 거두어 공교육에 투자한다면, 학생과 교사 모두가 훨씬 더 나은 환경에서 적절한 교육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는 까닭은 우선 한국에서는 대학 입시에 의한 경쟁의 결과가 너무나도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대학 서열이 너무나도 견고하고, 그에 따른 임금 격차 등의 기득권이 너무나 커서 어느 대학을 가느냐가 개개인의 일생을 규정해 버린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기 자식만큼은 어떻게 해서라도 일류대에 보내고자 한다. 결국 이러한 이기심들이 모여서 우수한 교사들의 자질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공교육은 점점 더 피폐해지고 있다.
두 번째는 교육의 공정성이 살아있다는 점이다. 대학 입학 자격을 부여하는 아비투어 시험이 각 주별로 또는 각 김나지움 학교별로 알아서 따로 실시되는데, 그 결과들이 온전히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특별히 출신 지역이나 학교에 따른 차별이 없다. 이 시험은 필기와 구두시험으로 나뉘어 치러지는데, 필기시험은 대부분 주관식으로 구성되며, 구두시험은 평가 교사에 달려있다. 하지만 부정시험이라든지 성적을 인정할 수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없다. 이러한 방식에 대해 교사와 학생 모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독일에서는 최순실, 정유라와 같은 사례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심심찮게 내신 조작을 둘러싼 잡음이 일어나고 있는 현재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이러한 평가 방식을 도입한다면 아마도 난리가 날 것이다. 주관식 평가도 쉽지 않을 것이고, 구두시험은 온갖 말썽의 온상이 될 확률이 높다.
이러한 문제가 단순히 정서적,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그 경쟁에 따른 결과의 차이가 과도하게 크기 때문이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평생을 손해를 보고 살아야 하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근본적 원인이다.
세 번째로 독일에서는 한국과 달리 학생에 대한 평가가 대부분 절대평가로 이루어진다. 애초에 비슷한 학업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 문제를 더 맞고 덜 맞았다는 이유로 나누어버리는 것은 대단히 비교육적일 뿐만 아니라 비효율적이다. 그러한 상대평가 방식은 불필요한 과잉 경쟁을 초래하여 사회 전반적으로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의 과도한 스펙 쌓기는 그 대표적 사례이다.
공교육의 활성화, 교육의 공정성 확보, 절대평가 방식 등으로 대표되는 독일의 교육 시스템에서 우리 중‧고등학교 개혁의 단초를 마련해야 한다. 여기에는 물론 교육 후에 일어나는 지나치게 과도한 격차를 보이는 보상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이 반드시 그 전제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의 시스템을 아무리 독일식으로 바꾸어놓더라고 그것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 때 만든 마이스터 고등학교의 실패가 그 사례이다. 졸업생의 대다수가 다시 대학에 간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이스터고의 원래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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