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일상에서 저 말을 대면하여 직접 들은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몇 가지 점에서 상식 밖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그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배경설명이 필요하다. 유학 초기 집사람이 어학코스에서 '단핑'이라는 중국 여학생을 사귄 것이 그 시작이다. 인연은 이후 도시를 옮겨가면서도 지속됐고, 그 여학생은 자기보다 먼저 유학 와서 공부를 마치고 독일회사에 취직한 중국 남자와 결혼을 하여 뒤셀도르프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 부부와 서로의 집들을 오가며 알고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모욕하지 마세요!"란 말을 들은 것은 쾰른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대사관에서 일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이사한 후 단핑이 유치원에 다니는 5살 된 아들인 파스칼(아예 독일식으로 이름을 지음)을 데리고 우리 집을 방문해 열흘가량 머물 때였다. 오랜만에 만난 우리는 여러 가지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단핑이 파스칼에 대해, 중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녀석이 자신이 독일인인 줄 안다는 식으로 약간 흉보는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있었는데, 그 꼬마 녀석이 정색을 하면서 그 말을 하는 것이었다.
5살밖에 안 된 파스칼이 "자기를 모욕하지 말라"는 말을 한다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그것을 중국 부모가 가르쳤을 것 같지는 않았고, 아마도 유치원에서 배웠을 텐데, 교육이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소중함을 배웠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으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 독일의 유치원에서는 아이들에게 우리처럼 공부를 시키지 않는다. 적절한 의사 표현이나 함께 어울려 노는 것을 배우는 정도이다. 또 아이들끼리 놀다가 긁히거나 약간의 상처가 생기는 것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러면서 큰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애들을 대충 방치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산책 중에 종종 공원의 놀이터에서 다친 아이를 위해 구급 헬기가 날아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독일 기본법(헌법) 제1조 1항이 "인간의 존엄성은 건드릴 수 없는 것이다"인데, 5살 아이의 "모욕하지 말라"는 요구가 바로 이것을 지켜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다소 과장된 해석일지는 모르겠으나,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어려서의 생각과 자세가 평생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자신을 존중할 줄 알아야 남도 존중할 수 있게 되고,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럼 독일의 초등교육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우선 유치원은 1840년 프리드리히 프뢰벨(F. Fröbel)이 독일 중부의 한 작은 도시에 아동시설을 만들고 '킨더가르텐'(Kindergarten)이라고 명명한 데서 시작됐다. 이는 3~6세의 아동들을 위한 킨더가르텐과 0~3세를 위한 킨더크리페(Kinderkrippe, 탁아소)로 나누어진다. 이들은 사회복지 분야에 속하며, 여기에서는 유아교사, 보육교사, 사회교육자, 사회복지사 등 다양한 전문 인력들이 함께 일하고 있다. 이 시설들은 지방자치단체와 민간에 의해 운영되는데, 민간의 주체로는 종교단체, 사회복지기구, 협회, 개인 등이 참여하고 있다.
아기들을 수용할 수 있는 탁아소 비율은 주(州)별로 차이가 심한데, 2012년 기준으로 시설이 적은 주는 20~30%, 많은 주는 40~50% 정도이다. 반면에 유치원은 거의 모든 주들이 90%를 넘어섰기 때문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이다.
유치원비는 각 지자체에 의해 결정되며, 지역별로 편차가 심한 편이다. 일부 연방 주들의 몇몇 지자체에서는 특정 연령대의 아동들을 무료로 돌보기도 한다. 유치원비는 아동 수, 아동 연령, 가구 수, 교육 기간, 부모 수입 등의 요인에 따라 다르게 책정되고 있다.
2010년 100개의 지자체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살 어린이가 하루 4시간 유치원에 다닐 경우 부모의 연 소득이 4만 5000유로 이하면 한 달 원비는 0~146유로(약 0~19만 원), 부모소득이 8만 유로일 때는 210유로(약 27만 원)였다. 같은 조건에서 아이의 나이가 어릴수록 원비는 더 올라간다. 유럽의 다른 국가에 독일유치원을 차릴 경우 이는 민간시설로 취급되어 부모들이 그 비용을 부담해야 되는데, 원비는 평균 440유로(약 57만 원)이다.
연방통계청에 의하면 이러한 시설들의 3~5세 아이의 1인당 연간비용은 2009년 기준 국공립이 6100유로, 민간이 5900유로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러한 통계들을 살펴보면, 탁아비용의 60~70%를 국고에서 지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독일의 초등학교는 4년제이다. 예외적으로 베를린과 브란덴부르크 2개 주에서는 6년제를 시행하고 있다. 교육제도에 대한 권한이 연방정부가 아닌 주 정부에 있기 때문에 각 주는 그것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그래서 같은 초등과정이지만 주별로 교육시간, 교과목의 구성 등에서 조금씩 차이가 나기도 한다. 또 우리와 달리 교육감을 별도로 선출하지 않고, 주 정부 내에 교육부 장관이 있어서 관련 업무를 관장한다.
초등학교의 교과과정은 통일되어 있지 않고 주별로 차별화되어 있다. 모든 주가 공통으로 다루는 주요 과목들은 독일어, 수학, 사회(Sachunterricht) 정도이다. 이 초등과정은 독일에서 같은 연령대의 거의 모든 학생들이 똑같은 내용을 공부하는 유일한 과정이다. 지난 편(독일 교육 부럽다? 해법은 교육 '밖'에 있다)에서 살펴보았듯이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친 다음에는 각자의 학습능력에 따라 서로 다른 수준의 학교로 나누어 진학하기 때문이다.
독일과 너무 다른 한국 교육의 현실
독일의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살펴보면, 우리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유치원에서 아이들끼리 놀다가 단순히 때렸다는 이유로 양쪽 부모들이 총출동하기도 한다. 무언가 우리의 에너지가 낭비되는 느낌이다. 아이들에게 자존감을 갖게 하는 것과 같은 소중한 일에는 무관심하면서, 내버려둬도 괜찮을 일에는 서로 핏대를 올리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독일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데, 독일 유치원에서 아이가 놀다가 긁혔다고 찾아와서 항의하는 경우는 주로 한국 유학생들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어린아이들에게 과도하게 많은 것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아이들은 불필요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미래의 경쟁에 앞서기 위해 아이가 편안하게 자랄 틈을 주지 않는다. 그러한 선행학습이 점점 아래로 내려와 초등학교부터, 아니 유치원부터 경쟁이 시작되고 있다. 아침이면 국적불명의 이상한 이름을 단 유치원 차량들이 아파트 사이사이를 누비고 있다. 초등학생들에게는 중학교 과정을 미리 배우게 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정작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자신의 소중함이나 남에 대한 배려는 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인지 대학생이 되어서도, 또 군대에 가서도 얼차려나 구타와 같이 인간의 존엄성을 헤치는 일이 아직도 버젓이 발생하고 있다. 그 누구도, 심지어 공권력이라고 하더라도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할 권한은 없다. 이러한 문제는 지난 1970~80년대 못살고 가난한 독재시대의 유산인 줄 알았는데, OECD에 가입하고 세계 11~12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이 안타까운 현실의 원인은 우리의 유치원과 초등학교 교육이 잘못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들어 인성 교육이나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는데, 이는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오로지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을 최우선 가치로 주입하다가 뒤늦게 인간성의 회복을 말하는 것은 모순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교육은 아주 어릴 때부터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언제쯤이나 주변의 꼬마 녀석들이 정색을 하고 "나를 모욕하지 말라"고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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