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대한민국에도 '법가(法家)'의 시대가 도래했나 보다. '엄단', '엄벌', '척결' 등 무시무시한 단어들이 넘치고 있다.
포문은 임채진 검찰총장이 먼저 열었다. 이른바 4대 권력기관장 가운데 유일하게 자리 보전이 확실시 되는 임 총장은 지난 2일 신년사에서 "친북좌익 이념을 퍼뜨리고 사회혼란을 획책하는 세력을 발본색원해야 한다"고 선포했다.
그 직후 미네르바로 지목된 인터넷 논객이 체포됐고 '국가신인도를 떨어뜨렸다'는 이유로 구속됐다. 이어 임 총장은 수원·부산지검 공안부장, 대검 공안1과장, 중앙지검 공안 1·2부장, 대검공안기획관 등 '공안통'으로 소문난 천성관 수원지검장을 서울중앙지검장에 앉히면서 검찰의 향후 행보를 예고했다.
'검사 OB'들의 활약도 눈이 부시다. 고검장 출신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 특수부 검사 출신 홍준표 원내대표, 역시 검사 출신인 이범래 의원은 퇴거 요구에 응하지만 않아도 1년 이상의 징역을 정찰제로 매기는 긴급조치식 '국회폭력방지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경찰도 손을 놓고 있긴 불안한 모양인지, 불심검문을 불응하면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오가작통법과 불고지죄의 원조, 상앙의 최후는?
춘추전국시대, 법가의 상징으로 불리던 인물은 상앙이다. 위나라 출신으로 진나라에서 중용된 상앙은 각종 부국강병 개혁 정책을 거세게 밀어붙였다.
진나라의 국력이 강해진 것은 분명하고 상앙의 법가개혁에 대한 재조명도 적지 않다. 하지만 역사는 상앙을 냉혈한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는 5개 호구를 '오(伍)', 10개 호구를 '십(什)'이라 부르면서 상호감시토록 하고 자유 이전을 금지했다. 이른바 오가작통제의 시초 격이다. 게다가 그는 범죄를 고발하지 않거나 범인을 숨겨주면 허리를 베어 죽이는 요참형에 처했다. "벌과 상의 비율을 아홉과 하나 정도로 하라(刑九賞一)"는 말은 상앙의 법가정치를 잘 설명하고 있다.
진왕 효공의 극진한 총애를 받던 상앙은 태자가 사소한 법령을 위배했다는 이유로 측근을 처형했고 태자 사부의 이마에 문신을 새겨넣었다.
5개월 뒤 효공이 사망했다. 태자가 즉위해 혜공이라 칭하며 상앙을 잡아들이라 명했다. 상앙은 체포 직전 도주해 국경 부근에 이르러 객사에 묵으려 했지만 자신이 제정한 법령에 따라, 여권을 소지하지 않았다고 해서 쫓겨났다.
이 때 상앙은 "내가 만든 법 때문에 내가 죽는구나"라고 외쳤다고 한다. 결국 상앙은 자신이 만들었던 거열형, 수레에 매달아 사지를 찢어 죽이는 극형을 피하지 못했다.
물론 '국회폭력방지법' 추진의 주역인 이범래 의원은 "이 법이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한이 있더라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니 현대판 상앙이라 할 만하다.
상앙만큼은 하고들 있나?
상앙은 죽었지만 진나라는 법가 정책을 버리지 않았다. 한비자를 거쳐 진시황에 이르러 결국 진나라는 천하를 통일했다. 하지만 법가정책의 결정판인 분서갱유로 대표되는 통일 제국 진은 20년을 이어가지 못했다. '미네르바 구속은 현대판 분서갱유'라는 누리꾼들의 지적이 흥미롭다.
정치인생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존중할 만한 법조 이력을 갖고 있는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지난 11일 "실정법에 위반되기만 하면 처벌하는 형식적 법치주의는 국민을 억압하는 독재의 유물"이라며 "우리는 사회적 정의에 부합하는지 가려서 처벌을 결정하는 실질적 법치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판 상앙들은 이 총재의 일갈을 가슴 속에 새길 일이다.
첨언하자면, 상앙은 노예라도 전투에서 공을 세우면 작위를 높여줬다. 왕실 사람이나 귀족이라고 해도 군공이 없으면 작위를 주지 않았고 부동산 소유를 금했다. 농업에서 생산량을 늘리거나 새로운 땅을 개척한 경우에도 부역을 면제하고 우대했다.
상앙만큼은 하고들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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