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미르재단이 졸속 출범하게 된 배경에 박근혜 대통령의 채근이 있었던 정황을 검찰이 포착했다.
14일 재계와 사정당국에 따르면 '최순실 의혹'을 수사중인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영렬 서울중앙지검장)는 작년 10월 박 대통령이 당시 경제수석이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구속)에게 미르재단 설립 준비 상황을 물었으나 실무 준비가 거의 되지 않은 사실을 알고 역정을 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그해 7월 24일 청와대로 대기업 총수 17명을 불러 오찬을 겸한 공식 간담회를 개최했다. 박 대통령은 공식 행사 때 "한류를 확산하는 취지에서 대기업들이 재단을 만들어 지원했으면 좋겠다"는 취지로 주문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이날과 다음날에 걸쳐 청와대와 외부 모처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총수 7명과 개별 면담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미르·K스포츠 재단 설립의 취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검찰은 안 전 수석과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상근부회장 등으로부터 박 대통령이 미르재단의 구상, 준비, 설립 과정에 각별한 관심을 두고 진행 경과를 챙겨봤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안 전 수석이 박 대통령의 질책을 받은 이후 다급해진 나머지 대통령의 의중이라 생각해 재단 설립 실무를 맡은 전경련과 승인 업무를 맡은 문화체육관광부를 강하게 압박하면서 '속도전'에 나섰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미르재단은 작년 10월 27일 문체부의 설립 허가를 받았다. 이 과정에 '초고속 법인 설립 허가', '창립총회 회의록 거짓 작성' 의혹 등이 제기됐다.
재단법인 설립 허가에는 통상 3주의 시간이 걸리는데 문체부는 담당자를 굳이 서울로 출장 보내면서까지 두 재단 설립을 하루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이유다.
재계에서는 갑자기 정해진 미르재단 출범일에 맞추기 위해 창립총회가 열리는 서울 팔레스호텔로 기업 관계자들이 출연증서와 법인 인감을 들고 모이라는 '소집령'이 떨어졌다는 증언이 쏟아져나왔다.
전경련은 10월 25일 기금을 내라는 공문을 각 기업에 보내고 이튿날인 26일 설립 신청서를 냈다. 바로 다음 날인 27일 문체부는 설립을 승인했다.
지금껏 박 대통령은 두 재단이 민간 주도로 설립됐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그동안 진행된 국정감사에서 경제단체 주도로 설립된 두 민간재단과 관련해 많은 의혹이 제기됐다"면서 두 재단이 청와대 주도로 설립됐다는 의혹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이후 두 차례의 대국민 사과에서 대통령은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이었다고 했을 뿐 '청와대 주도설'에 관해서는 명백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검찰은 15∼16일께로 예상되는 대면 조사 때 박 대통령이 미르재단의 구상과 설립 과정에 어느 정도로 관여했는지를 직접 확인할 방침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이 미르재단의 출범에 관심을 보이는 수준을 넘어 지시를 내린 증거가 확보될 경우 강제성 모금과 관련한 법적 책임을 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든다.
나아가 작년 7월 총수들과 '독대' 자리에서 출연을 요구하면서 각 기업의 '민원'을 청취하고 해결 노력을 약속했다면 직권남용을 넘어 제3자 뇌물수수 적용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4일 담화)이라고 성격을 규정해 사적인 이익을 취하거나 최씨에게 이익을 몰아주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공언한 상태다. 따라서 검찰이 이를 뒤집을 만한 물증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최씨 측이 두 재단 설립과 운영의 큰 그림을 그려 박 대통령을 통해 문화·체육 정책에 영향을 끼치고 그 안에 자신의 이권 사업을 끼워 넣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대통령이 이들의 의도를 사전에 알았는지 입증하는 문제가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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