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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왜 정치인들은 '탄핵'을 주장하지 않나?

[기고] 탄핵과 광장은 만나야 한다

2016년 11월 12일은 87년 6월 항쟁 이후 최대 시민이 광화문에 집결할 역사적 하루가 될 것이다. 최근 며칠 동안 어떤 이들은 대통령의 즉각 하야를 이야기하고, 어떤 이들은 혁명과 개헌을 외치고 있다.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즉각 하야로 모아지고 있다면, 정치권은 대통령의 2선 후퇴를 전제한 거국중립내각과 내년 봄의 조기 대선을 상정한 '일정 있는 퇴진'으로 나눠지는 양상이다.

필자는 이 시점에서 민주주의의 관점, 특히 헌정주의와 정치발전의 입장에서 현재의 난국을 해결할 가장 바람직한 방안은 탄핵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과 같이 국민적 분노와 시민행동의 에너지가 폭발하려는 시점에서, 왜 어떤 때는 선거 개입을 빌미로 노무현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그의 핵심 정책을 뒤집었으며, 어떤 때는 지극히 졸렬한 논리로 통합진보당을 해산하였던 보수주의적 처방에 의존하려고 하냐는 의문과 비판이 당연히 제기할만하다. 필자가 볼 때 탄핵은 현재 한국의 민주주의가 감내할 수 있는, 그리고 그것을 통해 한 발 더 나갈 수 있는 통렬하면서도 신중한 해법이 될 수 있다.

'망명과 저격'의 반복이 아니라 탄핵의 길로 나아가자

정치인들의 다수, 특히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이 존엄한 헌법기관이자 의회주의자임을 힘주어 강조하여 왔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발견한 재미있는 점은 여야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이번 사태를 헌법과 민주주의가 아니라 정치적 관점에서 파악·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은 제1야당의 당수도 아니면서 신중함의 외피를 쓴 채 움칫거리고 있고, 제1야당은 탄핵을 유·불리 속에서 따지고 있으며, 2등 주자들만 '즉각 하야'라는 강경한 주장을 외치고 있다. 이 정도 되면 여당 안에서도 생각 있는 보수주의자라면 그들이 좋아하는 헌정질서를 내세워 탄핵을 이야기할만한데도 아직은 살아 있는 권력의 눈치 보기에 바쁜 것 같다.

이 시점에서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에게 한 말씀 드려야겠다. 직무유기는 우병우 민정수석만 한 것이 아니다. 이미 지금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사실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 헌법 65조 ①항(대통령은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의 요건을 충분히 충족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0명의 국회의원들 가운데 왜 탄핵 발의를 외치는 이들을 찾기 어려운가! 적지 않은 이들이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이유로 주저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이는 셈법과 당략에 빠져 헌법이 부여한 자신들의 고유한 직무를 유기한 것이다. 국회는 검찰조사와 특검을 통해 대통령과 그 친인척의 측근비리의 실체를 동시에 밝히면서, 그를 근거로 하루빨리 헌정침해와 국정문란에 대해 탄핵을 발의, 의결해야 한다. 새누리당이 대통령의 탄핵 의결에 동참하지 않을 거라고 예단하지 말라. 하야든 탄핵이든, 그들이 선택할 전략적 선택지는 많지 않다. 오히려 집권당으로서 새누리당이 훗날을 모색하려면 국내외적인 조롱거리로 전락한 대통령을 대선과 다음 총선까지 질질 끌고 가는 것보다는 국회 탄핵 의결을 거쳐 헌법재판소로 공을 넘기는 것이 훨씬 개운하다. 어찌 보면 집권세력인 당··청이 노리는 것은 책임총리로 시간을 벌고,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연명하는 것 일수도 있다. 또 일각의 예측대로 설령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이 의결되었다하더라도 결국 헌재에서 심리만 끌다가 탄핵 결정이 기각되는 경우 야권과 시민단체는 헌재 판결을 따를 수도, 불복할 수도 없이 자중지란에 빠질 수도 있다.


탄핵과 광장은 만나야한다

탄핵의 발의와 의결, 헌재의 심리와 결정이 이루어지는 앞으로 몇 달은 한국정치사상 의회정치와 시민정치, 헌정주의와 공화주의, 급진주의와 반동주의가 때로는 경쟁하고 때로는 보완하면서 국민의 지지를 놓고 경합하는 '뜨거운 겨울'이 될 것이다. 광장과 촛불은 헌정을 유린한 대통령과 그 측근세력들이 의회와 헌법재판소의 엄준한 심판의 과녁을 벗어나지 않도록 불을 밝히는 등대이자 조타수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었다는 명분으로 통합진보당을 해산하였던 바로 그 헌법재판소에 당당히 되물어야 한다. 특혜와 축재를 일삼은 비선 실세에 조정당한 '식물 대통령'이야말로 안정적 임기를 보장하면서까지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 대통령제와 삼권분립의 헌정원리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 아닌가?

나의 논지 중 하나는 박근혜 대통령의 자진 하야는 심대한 국가위기를 가져온 그들의 행위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처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전철을 밟아 헌정을 유린한 그녀의 행위는 헌정 사상 처음으로 탄핵받은 대통령으로 역사교과서에 또렷이 기록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에 야당과 촛불시민 등 정치적 반대자만이 아니라 그녀가 속했던 정당도, 심지어 보수성향의 헌법재판소도 함께 하였음을 역사가 기록하게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탄핵은 정국의 주도권을 제도정치에 위임하는 소극적, 패배주의적 사고가 아니라 의회정치와 시민정치가 만날 수 있는 매개전략일 수 있다. 만약 의회에서 탄핵 가결이 실패하거나 헌재의 판결이 기각된다면, 1년 뒤의 19대 대선은 기존의 여야 정당구조와 87년 헌정체제의 전면 해체라는 급진적 과제 앞에 당면하게 될 것이다.

박근혜 이후를 고민하자

사실 탄핵이든 하야이든, 거국내각이든 책임총리든 실질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소생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는 동지까지(12.21) 하야하면 내년 봄이 오기 전에 대선을 치루고, 탄핵당하면 오뉴월에 치르고, 책임총리로 연명하면 1년 뒤에 물러난다. 탄핵은 자진 하야에 비해 몇 가지 장점을 갖고 있다. 우리는 엄청난 수의 4.19 희생자를 초래한 이승만에게 자진 하야와 망명의 길을 열어줌으로써 그의 과오를 철저하게 따지지 못했다. 박정희 역시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쏘았다'던 김재규의 총탄에 갑자기 쓰러져버려 역사의 법정에 세울 기회를 놓쳐 버렸다. 박근혜 정부만큼은 국회와 헌재를 통해 헌정문란의 중죄를 엄정히 심판하고, 이후에는 민형사상의 책임마저 물음으로써 '국부'니 '한강의 기적을 이끈 민족지도자'니 하는 허무맹랑한 보수 신화의 여지를 없애 버려야 한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이제 '탄핵 박근혜'의 단일 대오로 그 역량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의회를 중심으로 집권당과 재벌대기업을 압박하고, 국민들과 함께 헌재의 존재 이유를 되물어야 한다. 탄핵발의와 특검, 검찰조사의 병행으로 집권당의 분당은 조만간 가시화될 것이다. 이명박·박근혜의 10년은 권력을 사유화한 보수정권이 얼마나 무능하고 위험한 지를 보수 세력에게조차 여실이 보여주었다.

이번 사태를 통해 이 땅의 보수는 부패한 극우반공세력에서 법과 원칙을 존중하는 합리적 보수로 거듭나야 한다는 사활적 과제를 부여받았다. 한편, 야 3당의 대표와 대권주자들은 보다 책임 있는 국가지도자의 모습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야3당 대표들은 당장 정치협약을 통해 탄핵안의 로드맵 및 내년 선거까지의 정치일정을 제시함으로써 국민적 불안을 잠식시켜야 한다. 그것을 발판으로 향후 선거제도 및 개헌 방향에 대한 정치권의 합의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야 모두 탄핵 이후를 준비하자. 그것이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한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시민들의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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