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영 씨(54세)는 15년째 현대자동차를 판매하는 영업사원이다. 김 씨의 하루 일과는 아침 8시 30분 대리점으로 출근해 전시장 및 사무실을 청소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현대자동차 본사(이하 본사)에서 송출되는 방송에 맞춰 아침 체조를 하고, 본사의 교육과 지시사항을 시청한다. 때때로 본사는 전단을 돌릴 시간과 장소까지 정해줬다. 본사 지역본부 직원은 직접 현장을 돌면서 지시를 이행했는지 확인했다.
"800장 뿌리면 차 한 대를 팔 수 있습니다. 그냥 길바닥에 뿌리는 게 아니라 사람을 800명 만나는 거죠. 판촉물 주면서 인사하고 얼굴을 익히는 겁니다."
김 씨는 현대자동차 로고와 직급이 새겨진 명함을 각종 관공서와 빌딩을 돌며 전단을 뿌렸다.
한 달에 팔아야 하는 차량 대수는 세 대 이상. 그렇지 않으면 실적이 부진하다는 이유로 본사 지역본부장으로부터 '부진자 교육'을 받아야 했다. 김 씨는 그 시간이 가장 싫었다.
"'그렇게 해서 먹고 살겠느냐?'고 모멸감을 주고 쓸모없는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이 교육을 듣고 그만둔 직원들이 많아요."
자동차판매처는 지점과 판매 대리점(대리점)으로 나뉜다. 지점은 본사가 직접 운영하고 정규직원인 지점 영업사원이 판매한다. 지점 영업사원의 고용주는 정몽구 회장이다. 대리점의 경우 개인사업자인 대리점 대표가 본사와 판매 계약을 맺고 운영하는데, 김 씨의 경우 대리점 대표가 고용한 영업사원에 해당된다. 전국 현대기아차 800개 대리점에 약 1만 명이 있다.
"대리점은 1999년에 처음 생겼어요. 본사가 IMF 때 구조조정하면서 영업사원들에게 희망퇴직 또는 대리점 소사장제 선택을 요구했어요."
당시 40대였던 노동자들은 대리점 대표가 되어 소사장으로 신분을 바꿨다. 그리고 영업사원을 모집했다. 같은 시기에 본사에서도 정규직 영업사원을 모집했다. 김 씨와 같은 처지의 친구 두 명은 정규직에 지원했고, 별 어려움 없이 입사했다. 대리점과 지점에서 하는 일도 똑같고 연봉 차이도 별로 없었다. 김 씨는 경기도 안산중앙대리점에 입사했다. 그때가 2001년 6월이었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은 격차가 너무 벌어져 생계가 어려운 지경이 됐다.
"기본급 없죠. 4대 보험 없고 퇴직금도 당연히 없습니다. 빵대를 치면(실적 없음) 그달 월급은 0원이에요. 실적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줘요. 판매 매출의 70퍼센트가 대리점에서 나와요. 정규직은 실적 미달이어도 부진자 교육을 안 받습니다. 한마디로 비정규직만 조지는(압박하는) 거예요.”
대리점 영업사원은 차를 네 대 팔면 320만 원을 버는데, 여기에서 블랙박스·내비게이션 등을 자비로 고객에게 제공하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다. 이는 본사의 판매 지침을 어기는 행위이기도 하다. 결국 '미스터리 쇼퍼'(고객을 가장한 감시 요원)에게 걸려 징계를 받는다.
그에 반해 직영 영업사원은 기본급에 4대 보험은 당연하고, 매일 교통비와 식대로 2만1000원이 나온다. 자녀 대학 학자금 등 복리후생도 좋다. 노조가 있어 해마다 투쟁한 결과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대리점 영업사원보다 급여가 두 배는 높다. 김 씨는 정규직 친구들을 만날 때면 상대적 박탈감이 컸다. 하지만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대표의 폭언과 횡포였다.
"야! 이 씨발, 개새끼야. 청소도 이렇게밖에 못해?"
한여름에 에어컨도 못 틀게 했다. 다른 대리점도 사정은 비슷했다. 쉬는 날 대표의 주말농장에서 일한 직원들도 있었다. 그러다 못 참고 대표와 싸우고 나가는 직원이 생기면 대표들끼리 직원 정보를 공유했다. 마음에 안 드는 직원은 다른 대리점으로 이직도 못하고 그만둬야 했다.
"10년을 부려 먹고 직원들과 헤어질 때는 퇴직금 한 푼 안 주고 욕을 하면서 내보내요. '저 새끼 잘 되나 봐라', 그리고 직원의 불행을 고소해합니다."
대표들의 횡포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일정 매출액 이상을 달성하면 본사에서 성과금을 지급하는데, 중간에서 대표들이 이를 가로챘다. 실제 안산중앙대리점의 경우 2014년 초 700만 원의 성과금이 나왔는데, 대표가 지급하지 않아 3일간 파업한 적도 있다. 대리점 대표들은 이렇게 중간착취로 한 달에 2~3000만 원을 가져갔고, 지금은 대부분 건물주가 됐다.
결국 김 씨와 동료들은 지난해 8월 22일 전국자동차판매노동자연대(판매연대)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기아자동차 정규직 노동자인 박주상 씨가 대리점 영업사원을 위한 온라인 공간을 만들고 지원해 준 것이 큰 도움이 됐다. 김 씨는 위원장을 맡고 앞장섰다. 노조 가입 3일 만에 해고를 통보받았다. 김 씨는 부당해고라며 출근투쟁을 했다. 대표는 사무실 PC와 전화기를 압수하고 계약서와 사무실 열쇠도 빼앗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표가 제 귓불을 빨고 입술도 핥았습니다. 너무나 섬뜩했어요. 40분 동안 침을 뱉고 발로 차는 날도 있었습니다."
이 사실이 공중파 언론에 보도됐고 지난 1월 15일 안산중앙대리점은 폐점됐다. 그 밖에도 노조 가입 사실이 알려진 대리점들이 줄줄이 폐점되거나 조합원들만 해고됐다. 이렇게 해고된 사람만 80여 명에 이른다. 김 씨를 비롯한 조합원들은 매일 아침, 점심, 저녁으로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와 대치동 국내영업본부를 오가며,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판매연대 노조는 상급단체가 없다. 그 이유를 한 지점 영업사원은 이렇게 말했다.
"지점과 대리점 사이 감정이 많이 상해있어요. 서로 경쟁을 하니까요. 지점이 계약하려던 고객을 대리점이 가로채는 일도 있어요. 현대자동차지부 판매위원회(지점 영업사원 노조) 의장은 이런 이유를 대면서 판매연대 노조가 금속노조에 가입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어요."
정규직이 있어야 할 자리에 현대자동차는 비정규직 대리점 영업사원을 채웠다. 비정규직 제도는 자본 입장에서는 좋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직접 고용하지 않으니,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고, 유지비는 적게 들며, 이익은 많이 가져다주고, 노동자 사이를 분리시켰다.
김 씨는 노조 활동 후 1년이 넘게 돈을 벌지 못했다. 2000만 원을 대출받아 생활했는데, 이제 또 대출을 신청해야 한다. 김 씨의 가족으로는 아내와 세 딸이 있다. 아내도 같은 처지의 비정규직으로, 기아자동차 대리점에서 사무직으로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다.
"비정규직 신세는 비정규직이 알아요. 그래서 아내도 힘들지만 저를 지지해 줘요. 일곱 살 막내딸은 꿈이 판사에요. '내가 판사 되면 아빠 괴롭히는 정몽구를 혼내 줄 거야'라면서…."
대리점 영업사원에게도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본급과 4대 보험을 주고 노동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 그래야 지점과 대리점 간의 과도한 판매 경쟁도 사라질 것이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비정규직을 없애는 것이다.
"후회하지 않아요. 투쟁 전에는 몰랐는데, 이제는 비정규직인 게 너무나 당당해요. 전에는 남들에게 비정규직인 걸 굳이 밝히지 못했어요. 우리 딸들을 위해서도 꼭 해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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