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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의 성공과 실패에서 배울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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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의 성공과 실패에서 배울 것들

예종석의 'CEO에게 보내는 편지' <14>

K사장님!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환절기에 감기 걸리지 않으시도록 각별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CEO의 역할에 관해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최고경영자의 하고 많은 직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두말 할 것 없이 자신이 경영하는 기업이 이익을 내게 하는 일일 것입니다. 다른 모든 역할은 그 기업이 돈을 벌게 하는 데에 필요한 보조 수단일 뿐이죠. 아시다시피 이익창출은 기업경영의 가장 근본적인 목표입니다. 이익을 못 내는 경영자는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익을 내기 위해 경영자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기업이 돈을 벌게 하기 위해서 최고경영자가 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임무는 시장이 돌아가는 상황을 추적하고 시장의 변화하는 욕구를 파악하는 일입니다. 결국 한 기업이 수익을 올리느냐, 못 올리느냐 하는 문제는 시장에서 결정이 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시장이란 소비자와 동의어라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과거 공급이 부족하던 시장 상황에서는 소비자의 욕구파악 같은 것은 그리 필요하지도 또 중요하지도 않은 일이었습니다. 무엇이라도 생산하기만 하면 팔리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고객을 줄 세워 놓고 현찰만 받으면서 영업을 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1960~70년대에 존재했던 대다수의 기업들이 그러한 시장여건을 즐겼던 경험을 갖고 있죠. 우리나라 재벌들의 상당수가 그 시절에 독과점 품목 하나, 둘씩 보유하고 비교적 손쉽게 부의 성을 쌓았던 것은 공지의 사실입니다. 그 당시 최고경영자의 역할은 그러한 품목을 찾아내거나 그런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고 설비를 위한 자금을 끌어오는 것이 주된 일이었죠. 그때는 로비력 같은 것이 경영자의 중요한 능력이기도 했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량 생산의 시대가 열리고 시장여건이 공급 과잉으로 바뀌면서 소비자의 변화에 민감하고 수요자가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기업이 승기를 잡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월 마트의 창업자 샘 월튼의 말처럼 "당신의 고객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 사업성공의 열쇠"가 되게 된 것이죠. 이제는 소비자 지향적이고 시장친화적인 기업만이 경쟁력을 갖습니다. 이런 시대에 최고경영자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기업이 그런 능력을 갖게끔 끊임없이 자극하고 리드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소비자 지향경영의 선구자로는 오늘날 GM의 기틀을 닦은 알프레드 슬로언(Alfred Sloan)을 꼽을 수 있습니다. 1923년 GM의 최고경영자에 취임한 슬로언은 당시 포드 자동차 매출액의 5분의 1 규모에 불과하던 GM을 불과 5년 만에 포드를 압도하는 회사로 성장시켰습니다. 전설적인 T-모델을 1908년부터 19년 동안 무려 1500만 대 생산하며 자동차왕의 명성을 얻은 헨리 포드(Henry Ford)를 소비자지향 경영으로 물리친 것이죠. 값싸고 튼튼한 차를 생산하기 위해 T-모델 하나만을 고집하고 한때는 검정색 자동차만 생산할 정도로 원가절감에 집착하던 포드에 대항해서 슬로언은 소비자가 원하는 다양성과 폭넓은 가격대 욕구에 부응해 저렴한 가격의 시볼레부터 최고급 캐딜락에 이르기까지 무려 5가지 모델을 내놓는 다양화(Full Line) 전략으로 승부를 갈랐던 것입니다.

당시 GM의 슬로건이었던 "어떤 호주머니 사정에도(any purse), 어떤 사람에게도(any person), 어떤 목적에도(any purpose)에도 맞는 차"는 슬로언의 소비자 지향적 경영철학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포드는 컨베이어벨트 방식에 의한 대량생산의 성공으로 엄청난 가격 인하까지 이뤄냈지만 소비자의 진정한 욕구를 충족시킨 GM을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포드는 자신이 이룩한 대량 생산 시대의 희생자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대량 공급으로 인한 대량 소비 경험으로 실용성 추구를 뛰어넘게 된 소비자의 욕구변화를 파악하지 못하고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계속 값싸고 튼튼한 차일 것이라고 단순하게 예단하고 있었던 것이 실패의 원인이 되었으니 말이죠.

지금은 그의 모교, 메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경영대학원 이름(Sloan School of Management)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슬로언은 독립사업부제의 주창자로 유명하지만 시장 지향적 의사결정의 선구자라는 사실만으로도 위대한 경영자의 반열에 드는 인물입니다. 이때 GM에 추월당한 포드는 오늘날까지 단 한번도 GM의 아성을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이 에피소드는 오래된 것이지만 최고 경영자의 의사결정과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지금도 피부로 느끼게 해주는 사례입니다.

소비자 지향적 경영철학은 달리 표현하면 마케팅 중심 경영입니다. 마케팅 경영은 마케팅이 해당부서만의 업무가 아니라 기업 전체가 소비자 동향에 민감하고 시장의 변화에 신속히 반응하며 마케팅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경영철학을 말하는 것이죠. 그런 기업을 마케팅 컴퍼니라고도 합니다. 최근 작고한 걸출한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마케팅의 목적은 과도한 영업활동을 방지하는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마케팅이 잘되면 상품이 저절로 팔리기 때문에 영업활동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는 지적이지요.

마케팅중심 경영이 자리 잡으려면 최고경영자가 선두에 서서 분위기메이커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전사적인 소비자지향성 확립을 위해서는 경영자가 솔선수범해서 자극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죠.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1세대 경영자들은 마케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합니다. 천부적으로 마케팅 감각을 타고난 경영자들도 가끔은 있습니다만 대부분의 1세대 경영자들은 마케팅을 아예 배워본 적이 없습니다. 그분들의 학창시절엔 학교에서 마케팅의 개념을 가르치질 않았습니다.

그러니 마케팅을 배워보지도 못했고, 그것이 그렇게 필요하지도 않던 시절에 사업을 일으킨 경영자들이 마케팅경영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끼기는 힘들겠지요. 그러나 이제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시장을 알고 소비자의 동향을 읽을 수 있는 기업만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한 기업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최고경영자의 많은 일 중에서도 첫 번째 임무입니다. 이제 CEO는 CMO(Chief Marketing Officer)의 역할까지도 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요즘 GM의 경영상태가 좋지 않다는 소식이 들려오곤 합니다. 모터사이클을 만드는 할레이 데이빗슨보다도 주식의 시가총액이 작아졌고 토요타에 비해서는 14분의 1에 지나지 않게 됐다고 하더니 급기야는 파산 가능성까지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지난 한 세기를 세계기업의 제왕으로 군림해 온 GM에 몰락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기업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근자에 들어서 시장의 변화를 읽지 못했고 소비자가 원하는 자동차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알프레드 슬로언의 빈자리를 채울만한 경영자를 배출하지 못한 탓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언제나 "시대변화에 따라 항상 합리적으로 고객을 살펴야 한다"고 부르짖던 슬로언이 지하에서 이 사태에 대해 무어라고 할지 궁금합니다.

한 가지 아이로니칼 한 것은 지금 세계자동차 시장을 리드하고 있는 일본기업의 경영자들이 70년대 몸을 일으킬 때 성경처럼 탐독한 책이 바로 슬로언의 자서전 "GM과 함께한 나의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경영자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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