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킨도너츠의 협동조합 실험은 2012년 5개로 나뉘어 있던 구매 관련 관계사들을 NDCP(National DCP, LLC)라는 전국 단일의 거대 협동조합으로 통합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미국 전역에 8900여 가맹점에 식재료와 음료, 포장재, 각종 비품뿐 아니라 전산기술과 의료보험까지 제공하는 20억 달러 규모의 거대한 구매협동조합 기업을 탄생시켰다. NDCP는 2012~2015년 사이 가맹점주들에게 총 2억 달러의 경비 절감 혜택을 안겨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애틀랜타 본사 등에 모두 17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비슷한 사례를 하나 더 들어보자. 버거킹(Burger King) 가맹점주들은 1991년 본사와 함께 식재료 구매를 담당하는 협동조합 기업 RSI(Restaurant Service,Inc.)를 설립했다. 던킨도너츠처럼 협동조합 설립 제안은 버거킹 본사 쪽에서 먼저 나왔다. 식재료 가격에 대한 가맹점의 불만과 불신이 끊이지 않자 가맹점들이 주도하는 구매 협동조합을 별도로 세우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물론 협동조합의 1인 1표 정신에 따라 본사도 총회에서 가맹점주 1인과 똑같은 1표를 행사하기로 했다. 이사회 또한 각 지역을 대표하는 19명의 가맹점주 이사들로 대다수를 구성하고 본사는 1명의 이사직만 갖기로 했다.
RSI의 설립 이후 가맹점의 본사에 대한 불만은 잦아들었다. 또 가맹점주들이 RSI의 조합원으로 식재료 구매에 적극 관여하면서 실질적인 가격 인하 효과도 나타났다. "우리 가맹점주들에게 100% 완전한 구매 권한을 활용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여태까지 그런 구매력을 행사해본 적이 전혀 없습니다. 지금의 경쟁 환경을 생각하면, 바람직한 진보라고 생각합니다."(딕 포스 가맹점주연합 전(前) 대표) RSI는 가맹점주의 적극적인 경영 참여로 1991~1997년 사이에 3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하면서 흑자 경영을 이어갔다. 같은 기간에 조합원 가맹점주들에 대해 5000만 달러의 출자배당도 실시했다. 1997년 한 해에 가맹점주들은 구매단가 인하로 5399달러, RSI의 출자배당으로 1700달러를 확보해 가맹점당 평균 7000달러 이상의 순소득 증가를 누릴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이처럼 프랜차이즈에서 구매 업무를 떼어내 가맹점주들의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던컨도너츠와 버거킹뿐 아니라 맥도날드(McDonald’s), KFC, 타코벨(Taco Bell), 피자헛(Pizza Hut) 등 거대 레스토랑 프랜차이즈 다수가 구매 협동조합을 운영하고 있다. 미국 대법원도 1980년대에 '가맹점주는 프랜차이즈 본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식자재를 구매할 수 있다'고 판결해 가맹점주들의 구매협동조합 설립을 법적으로 뒷받침했다.
퇴출 가맹점들이 협동조합 프랜차이즈 설립
프랜차이즈의 구매사업 부문만이 아니라, 아예 프랜차이즈 본사를 통째로 협동조합으로 운영하는 사례도 생겨났다. 1999년 배스킨라빈스(Baskin Robbins)는 사업구조를 조정하면서 600여 가맹점에 대해 계약을 갱신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제리 메릴(Jerry Merrill)을 비롯한 34명의 가맹점주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한발 더 나아가 공동 출자로 아예 협동조합 프랜차이즈인 칼레이도스쿱스(Kaleido Scoops)를 설립하기에 이르렀다.
"주식회사는 주주들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지만, 우리는 조합원들의 뜻을 따르면 됩니다. 협동조합 모델에서는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승자가 됩니다. 고객과 조합원(가맹점주), 프랜차이즈 본사가 모두 이익을 누립니다. 실제로 미국에서 그런 일을 (우리가) 이뤄내고 있습니다."
칼레이도스쿱스 쪽은 새 가맹점을 여는 데 10만 달러 이하의 비용으로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아이스크림 가맹점 개설에 들어가는 27~50만 달러의 30% 수준으로 낮췄다는 것이다. 다만, 칼레이도스쿱스 같은 협동조합 프랜차이즈가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맹점 입장에서는 전국적인 광고 홍보 지원을 받을 수 없고 본사의 지원 인력 역량도 떨어진다.
칼레이도스쿱스는 사업 첫해에 매출이 20%가량 줄었지만, 새로운 아이스크림을 개발하면서 2000년과 2003년 사이 매출을 두 배로 늘렸다. 지금은 미국 20개 주에서 조합원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칼레이도스쿱스와 비슷한 협동조합 프랜차이즈 사례가 또 있다. 도넛커넥션(Donut Connection)이다. 도넛커넥션은 1991년 던킨도너츠가 미스터도넛(Mister Donut)이란 프랜차이즈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던킨도너츠가 550개의 기존 매장 중 375개를 폐쇄하기로 결정하자, 미스터도넛의 운영 책임을 지고 있던 제임스 모턴(James Morton)이 45명의 가맹점주들을 규합해 협동조합 프랜차이즈 설립을 이끌었던 것이다. 1995년 어렵게 설립된 도넛커넥션은 그사이 가맹점이 200개 가까이 늘어났다.
"협동조합 도넛커넥션은 전국적인 브랜드 파워를 유지합니다. 그러면서, 가맹점에서는 조합원 점주가 원하는 가게를 꾸릴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물을 팔든, 아이스크림이나 피자를 팔든, 스스로 결정하면 됩니다. 새로 가맹점을 열 때 10~20%의 로열티를 물지 않을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이죠."
도넛커넥션 쪽이 설명하는 협동조합 프랜차이즈의 장점이다.
프랜차이즈의 구매협동조합 장점과 도전 과제
2010년 국제프랜차이즈업계 전문 매체인 <프랜차이즈 월드>는 프랜차이즈에서 구매협동조합이 갖는 세 가지 장점과 도전 과제를 아래와 같이 기술했다.첫 번째로 꼽은 장점은 경제적 실익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레스토랑 프랜차이즈에서 협동조합 모델이 큰 성공을 거두었고, 실제로 설립된 구매협동조합이 지금까지 하나도 무너지지 않고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협동조합 방식 도입을 통해 규모의 경제, 단가 인하, 역량의 공유, 혁신 촉진을 이뤄냈고, 동시에 투자이익까지 안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 시간과 돈을 절약하면서도 가치를 더할 수 있다는 장점을 들었다. 구매협동조합의 등장으로 가맹점주들은 애로사항이나 궁금한 점을 협동조합의 구매 전문가들한테 직접 편안하게 문의할 수 있게 됐다. 프랜차이즈 본사 또한 구매 업무와 관련해 가맹점주를 일일이 상대할 것 없이 협동조합 한 곳만 상대하면 됐다. 그만큼 시간 절약 효과를 누리게 된 것이다. 돈을 절약하는 효과도 뚜렷이 체감됐다. 상품과 서비스 비용이 줄어들었을 뿐 아니라 IT, 재고 관리와 같은 서비스까지 협동조합에서 제공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에 더해 협동조합 브랜드 채택은 프랜차이즈에 가치를 더해주었다.
셋째, 구매협동조합 가동 이후, 프랜차이즈 본사나 가맹점 모두 각각의 강점에 집중하는 효과를 누리게 됐다. 공급 체인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협동조합에서 구매 업무를 전담함에 따라, 프랜차이즈 본사는 브랜드의 구축 및 방어, 강화하는 핵심 업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가맹점들 또한 식자재나 서비스의 품질과 가격을 협상하고 따지는 데 에너지를 뺏기지 않고 가게 운영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
이런 구매협동조합의 장점이 실질적인 성과로 나타나고 지속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도전 과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우선, 프랜차이즈 본사와 구매협동조합 간의 협력이 잘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애초 구매협동조합의 탄생이 가맹점들의 뿌리 깊은 본사 불신에서 비롯됐고, 그 불신이 언제라도 다시 고개를 들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불신의 상황이 다시 벌어진다면 구매협동조합이란 존재가 오히려 사업의 비효율을 낳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가맹점들이 구매협동조합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모든 물품을 구매협동조합에서 구입해야 한다는, 조합원의 당연한 책무를 두 번째 도전 과제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가맹점주들에 대한 협동조합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혹여 가맹점들이 상품과 서비스를 다른 곳에서 구입하는 게 더 경제적이라고 느끼거나 그렇게 행동하는 일이 일어난다면 구매협동조합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과제로,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들은 왜 구매협동조합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는지, 총회 의결권과 이사회의 대표성을 어떻게 행사하고 분쟁과 이견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등에 대해 협동조합 설립 초기에 충분히 의견을 나누고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는 점을 들었다. 그런 과정이 미흡하다면 법적 다툼의 수렁으로 빠져들 위험성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레스토랑 프랜차이즈에서 구매사업 부문을 떼어내거나, 또는 기존 가맹점의 일부가 별도로 소규모 프랜차이즈를 세우는 식으로 협동조합의 프랜차이즈 모델이 진화해왔다. 이밖에 작은 가게를 꾸리는 소상인들이 자기 브랜드를 유지하면서도 공동구매 또는 공동물류의 비용 절감 혜택을 누리기 위해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사례들이 적잖이 눈에 띈다. 미국 건축자재 소매상들의 공동구매 협동조합인 아마크(AMARK Cooperative)와 동네 빵집들의 식재료를 공동구매하는 밸리베이커스(Valley Bakers Cooperative Association)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협동조합은 유럽에서 건너온 모델인데, 소상인들이 각자 브랜드를 그대로 사용하고 가맹본부 개념도 없다는 점에서 본격적인 프랜차이즈라고 분류하기 어렵다고 해야 할 것이다.
미국의 레스토랑 프랜차이즈에서 성공적인 모델로 자리 잡은 구매협동조합 방식이 한국에서도 통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미국과 한국의 프랜차이즈 사업 방식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의 프랜차이즈는 본사에서 표준화된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 및 공급 노하우를 제공하고 판촉 및 브랜드 광고를 집행하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로열티를 가맹점들에게 받는 식이다. 애초부터 식자재 등의 구매 공급을 통해 취하는 본사의 이득이 없거나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프랜차이즈는 식자재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과정에서 본사가 절대적 이익을 취하는 식이다. 이러한 사업구조 자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구매협동조합 설립을 본사에서 용인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레베그룹, 독일 소매상들의 거대 프랜차이즈 협동조합
지금까지 주로 미국의 레스토랑 프랜차이즈에서 '파생'된 협동조합 사례들을 살펴보았다. 유럽의 몇몇 나라에서는 협동조합형 프랜차이즈 모델이 전체 소매시장을 끌어가는 대규모 사업체로 발전해 나간 점이 돋보인다.
독일의 레베(REWE) 그룹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1927년 독일 쾰른에서 17명의 소상인들이 시작한 레베 협동조합은 지금 33만 명의 직원, 13개국에 산재한 1만 5500여 개의 매장, 500억 유로(약 70조 원)의 매출, 독일 소매시장 점유율 2위(16%)를 자랑하는 거대 소매 그룹으로 눈부시게 성장했다. 슈퍼마켓뿐 아니라 대형 할인점으로도 진출했으며, 가구점과 정육점, 여행사업 등으로도 사업 분야를 확장해가고 있다.
가맹본부(프랜차이즈 본사)가 주도해 가맹점(소매점포)들을 모집하는 게 일반적인 프랜차이즈 모델이라면, 레베 같은 소상인협동조합은 가맹점에 해당하는 소매점 상인들이 먼저 있었고 그들이 프랜차이즈 본사인 소상인 협동조합을 세우고 운영하는 주인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쉽게 말하자면, 가맹점에 해당하는 소상인들이 가맹본부(프랜차이즈 본사) 구실을 하는 사업자협동조합을 역으로 설립한 형태라고 말할 수 있겠다.
재미있는 점은, 소상인협동조합 레베가 전반적인 협동조합의 확산 위협에 맞선 소상인들의 자구책으로 생겨났다는 점이다. 20세기 초 영국과 프랑스에서 건너온 소비자협동조합 모델이 독일에서 붐을 이루면서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 1933년엔 무려 2200개 이상으로 소비자협동조합이 불어나게 된다. 소비자협동조합들이 공동구매의 장점을 살려 원가 및 가격 인하를 단행하면서 소비자들의 큰 인기를 끌게 되자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소규모 상점들이 큰 타격을 입었던 것이다. 이때 소상인들이 강구한 타개책이 바로 1927년 쾰른에서 시작한 소상인협동조합, 곧 프랜차이즈형 협동조합 레베의 설립이었다. 17명의 상인으로 소박하게 시작한 레베 협동조합은 초기부터 기세 좋게 상승곡선을 타면서 설립 1년 만에 80%의 매출 성장을 이뤄냈다. 1940년까지 8000명의 조합원, 106개의 상인협동조합이 가입한 1억600만 마르크 규모의 협동조합 그룹으로 고속 성장 가도를 달렸다.
레베그룹은 1980년을 전후해 본격적인 기업 인수와 신규 사업 진출에 나섰다. 1974년 소매 체인점 대기업인 라이브란트(Leibbrand) 그룹 지분을 50%를 인수한 데 이어, 1989년에는 나머지 지분까지 100% 전량을 확보했다. 1980년대 들어서도 연이어 대규모 식료품 체인점 인수를 성사시켰다. 또, 1990년에는 바이에른과 바덴뷔템베르그 주 400개 협동조합들의 레베그룹 가입을 이끌어냈다.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에는 동독 지역의 작은 식료품 매장들을 대대적으로 인수했다.
탄탄하게 사업 기반을 굳힌 레베그룹은 유럽 각국의 소매시장을 끌어가는 대규모 소비자협동조합과 비슷한 사업 다각화의 길을 달려왔다. 예를 들어, 200만 명의 조합원을 확보한 스위스의 대표적 소비자협동조합인 미그로(Migros)는 대형마트 이외에 백화점 체인, 의류 매장, 은행, 주유소, 여행사업, 로펌 등 전방위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다. 미그로가 소비자 조합원들이 원하는 다양한 사업에 뛰어들었듯이, 레베 같은 소상인협동조합 또한 소상인 조합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신규 사업 확장에 적극으로 나섰던 것이다.
레베그룹이 힘을 쏟는 신규 사업으로는 여행사업을 꼽는다. 1988년 아틀라스 여행사 지분 50% 취득으로 여행사업에 첫발을 디딘 데 이어, 1994년 아틀라스 지분 100%를 인수했다. 이듬해에는 단체여행 전문회사인 ITS를 인수하는 등 지금은 10개가 넘는 여행사 브랜드를 확보해 이미 여행업계 3위 자리를 굳히고 있다. 전문 소매시장에도 뛰어들어, 1990년 말에 기존 가구점 190개를 인수해 DIY(Do-It-Yourself) 시장 1위를 차지했으며 2007년 이후로는 가구 체인점 인수에 나서 업계 3위로 도약했다. 가전제품 소매시장에도 공격적으로 진출하고 있다.
레베그룹은 해외시장 진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1994년 이후 자회사 브랜드인 페니 마켓(Penny Market)을 이탈리아에 성공적으로 진출시켰으며, 오스트리아와 호주에 이어 2008년부터는 동유럽과 러시아 시장 공략에 힘을 쏟고 있다. 스위스에서는 또 하나의 거대 소비자협동조합인 코프스위스(Coop Swiss)와 합작해 창고형 도매마켓과 음식서비스 사업에 성공적으로 진출했다.
소매사업 분야의 협동조합 국제 연대에도 앞장서고 있다. 벨기에의 콜루이트(Colruyt), 프랑스의 르클레르(E. Leclerc), 이탈리아의 코나드(CONAD), 스위스의 미그로(Migros)와 함께 5개국의 대규모 협동조합소매업체 공동으로 다국적 브랜드 코페르닉(COOPERNIC) 그룹을 탄생시켰다. 코페르닉 그룹은 코페르니쿠스의 역발상으로 협동조합 국제 연대의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만들어가자는 기치를 내걸고 있다.
이탈리아 코나드, 중소 슈퍼마켓들의 전형적인 사업자협동조합
프랜차이즈형 협동조합 모델로, 독일에 레베그룹이 있다면 이탈리아에는 코나드(CONAD)가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1950년대 중반부터 여러 지역에서 소매상들이 자발적으로 공동구매 그룹을 조직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다가, 1962년 14개 공동구매 그룹의 420명 소매상들이 볼로냐에 모여 전국소매상컨소시엄(CONAD)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코나드는 3000여 소매상(슈퍼마켓 주인)들이 가입한 협동조합으로 이탈리아 전체 소매시장의 11.3%를 점유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매출액 110억 유로, 직원들은 4만 6000명에 이른다(2012년 수치). 이탈리아에서 소매시장 1위 업체는 시장 점유율 15.3%의 소비자협동조합 코프 이탈리아이다. 둘의 점유율을 합하면 26.4%로, 이탈리아 전체 소매시장의 4분의 1 이상을 협동조합 부문에서 차지하는 셈이다.
레베그룹이 다국적 복합 소매업체로 진화했다면, 코나드는 국내 중소 슈퍼마켓들의 전형적인 사업자협동조합 모습을 대체로 유지하고 있다. 조직구조는 단순한 2단계로, 3000여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2800여 슈퍼마켓 주인(조합원)들이 8개의 지역 협동조합에 가입하고, 8개의 지역 조합이 전국 단위 조직인 코나드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식이다. 코나드 컨소시엄은 조합원들의 슈퍼마켓에서 판매할 상품의 구매, 자체 상품 개발 및 생산, 홍보·마케팅 등 프랜차이즈 본사의 기능을 수행한다. 8개 조합의 출자로 운영되는 코나드 컨소시엄의 자기자본은 6500만 유로이고, 물품 공급 10억 유로, 175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다. 코나드 컨소시엄의 이사회는 8개 협동조합을 대표하는 12명 이사들로 구성되며, 이사회 산하에 경영위원회와 브랜드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다.
조합원들은 가게 크기에 따라 90평 미만의 소규모 점포(Daisy), 90~180평 규모의 중간 크기 점포(Conad City) 그리고 600평 이상의 대규모 점포(Conad Superstore)를 운영하는 소매상으로 나뉜다. 조합원들은 점포 크기에 상관없이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대규모 슈퍼마켓들은 처음부터 큰 가게를 시작했다기보다는, 작은 점포를 운영하던 조합원들이 합병과 공동출자 등을 통해 힘을 합치는 과정에서 많이 생겨났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코나드의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조합원들이 지역 주민이고 사업의 뿌리를 지역에 두고 있는 만큼 지역사회를 위한 다양한 활동도 전개하고 있다.
프랑스 안경 소매업계 휩쓰는 프랜차이즈형 협동조합 모델
프랑스의 프랜차이즈형 사업자협동조합 모델로는 옵틱2000(Optic2000)을 들 수 있겠다. 1962년 4명의 안경 소매상들이 세운 옵틱2000은 지금 1000여 명의 안경점 소매상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한 대규모 협동조합형 프랜차이즈로 성장했다. 프랑스 안경 및 렌즈 시장의 15%를 점유하는 1위 업체이며, 옵틱2000을 비롯한 3대 안경 소매상 협동조합들이 프랑스 전체 시장의 무려 32%를 점유하고 있다.
일반 안경점 프랜차이즈의 가맹점이 되는데 4~5만 유로의 가입비를 내야 하는 반면, 옵틱2000 같은 협동조합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4500유로의 출자금을 납입하면 된다. 또 일반 프랜차이즈 가맹점 계약 기간이 3~5년에 불과하지만, 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영구히 계약을 지속할 수 있다. 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안경 재료 공동구매의 단가 인하 혜택도 톡톡히 누린다. 옵틱2000 조합원의 80%는 옵틱2000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지만, 자신의 고유 브랜드를 그대로 사용하는 매장도 20%에 이른다. 2013년 기준 옵틱2000의 매출은 2억 3600만 유로이고, 매장당 매출액은 프랑스의 안경점당 평균 매출액보다 38%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장종익 한신대 교수는 '프랜차이즈 모델형 사업자협동조합의 발전 전략'이란 보고서에서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사례로부터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시사점을 제시했다. 첫째, 협동조합형 프랜차이즈 시스템이 독립적인 소매상이나 안경점 등에 비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는 것이다. 레베그룹이나 코나드 같은 프랜차이즈 모델형 소상인(사업자)협동조합이 일반 프랜차이즈 본사보다 공동구매, 상품 개발, 브랜드 관리, 공동물류, 기술 훈련, 금융 지원 등의 기능을 더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이들 프랜차이즈형 소상인협동조합이 자리를 잡기까지는 외부의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코나드는 설립 초기에 이탈리아 최대 협동조합 연합인 레가총연맹과 프랑스의 대규모 소매상협동조합인 르클레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마지막으로, 레베그룹과 코나드 모두 자체 금융기관을 운영했다는 점이다. 조합원 점포를 혁신하고 그에 걸맞은 시설 투자를 위해서는 상당한 규모의 자금 투입이 요구된다. 그러한 자금을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 던킨도너츠와 버거킹 사례는 1998년 국제프랜차이즈협회에서 펴낸 'The franchise cooperative handbook'에서 인용
- NDCP(nationaldco.com)와 칼레이도스쿱스(www.kaleidoscoops.com) 사례는 해당 협동조합 홈페이지
- 국제프랜차이즈연합회(International franchise association) 기관지인 Franchise World 2010년 4월호
- 한신대 장종익 교수의 2014년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연구사업 보고서 '프랜차이즈 모델형 사업자협동조합의 발전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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