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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말아먹은 환관 정치, 최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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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말아먹은 환관 정치, 최후는?

[최성흠의 문화로 읽는 중국 정치] 환관 정치의 말로

중국 역사에는 나라를 멸망의 길로 이끄는 주인공으로 환관이 종종 등장한다. 소설 <삼국지>에 등장하는 후한 말의 십상시(十常侍)가 대표적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유명한 환관으로는 명(明) 말에 궁정을 농단한 위충현(魏忠賢)이 있다.

그는 원래 글자도 모르고 술과 도박을 좋아하는 동네 불량배에 지나지 않았다. 어느 날 도박 빚을 지고 도망 다니다 처자식도 팽개치고 스스로 환관이 됐다. 일설에 의하면 평소 알고 지내던 환관과 짜고 한쪽 고환은 남겨두었다는 얘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위충현은 명나라의 마지막에서 두 번째 황제인 천계제(天啓帝)를 등에 업고 이른바 동림당(東林黨) 사건을 일으키며 국정을 농단했다. 그가 거리에 나가면 황제가 있으니 차마 만세(萬歲)를 제창하지는 못하고 구천세(九千歲)를 외치는 소리에 온 거리가 들썩였다고 한다. 그런 위충현에게 은인과도 같은 여자가 한 명 있었으니 천계제의 어릴 적 유모 객인월(客印月)이었다. 역사책에서는 그녀를 주로 객 씨라 부른다.

객 씨는 농부의 딸로 태어나서 18세에 입궐하여 훗날 천계제가 되는 주유교(朱由校)의 유모가 됐다. 그녀는 자태가 요염하고 성품이 음탕하며 잔혹했다고 전해진다. 그런 그녀가 위충현을 이끌어 주었다. 객 씨와 위충현의 관계를 중국에서는 대식(對食) 관계라고 말한다. 대식 관계란 궁궐의 궁녀들끼리 은밀히 맺는 동성애 관계를 뜻하기도 하고, 궁녀와 환관의 은밀한 관계를 칭하기도 한다. 요염하고 음탕하다는 말이 괜한 말은 아닌 것이다.

객 씨는 자신의 요염하고 음탕함으로 어린 주유교를 사로잡았다. 주유교가 15세에 황제에 즉위하자 객 씨는 봉성(奉聖) 부인으로 봉해졌고 위충현은 드디어 권력을 잡았다. 위충현과 객 씨는 대식 관계답게 죽이 척척 맞았다. 위충현이 동림당을 위시해서 자신의 정적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예전의 윗사람 왕안(王安)의 처결을 머뭇거릴 때 객 씨가 대신해서 귀양을 보내고 죽이기도 했다.

위충현과 객 씨가 국정을 농단하기는 쉬웠다. 천계제는 어려서부터 목공일을 좋아했기 때문에 위충현은 그에게 알맞은 놀잇감을 갖다 주고 모든 국사를 도맡아 처리하면 됐다. 천계제가 얼마나 목공일을 좋아했냐면 어느 날은 자금성 내에 있는 건청궁(乾淸宮)의 모형을 만들어 놓고 자랑하기도 했다고 한다.

객인월은 겉으로는 그저 황제의 유모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녀가 지날 때 사람들은 천세(千歲)를 외치며 그녀에게 아부했다. 천계제가 황후를 맞이한 후 객 씨는 궁에 있을 명분이 없어져서 출궁되기는 했지만 천계제는 객 씨의 생일이면 축하하기 위해 그녀의 사가를 찾았으며 객 씨는 출궁 후에도 아침부터 입궐하여 천계제의 시중을 들다 밤늦게 돌아가는 일이 잦았다. 그렇기 때문에 객 씨는 단순한 유모가 아니라 어린 황제의 후궁 역할도 했을 것으로 세인들은 짐작하고 있다.

위충현과 객인월의 몰락의 원인은 간단하다. 그들을 총애하던 천계제가 재위 7년 만에 죽었기 때문이다. 뒤이어 등극한 숭정제(崇禎帝)는 동림당 출신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위충현은 귀양 가는 도중에 자살했고, 객인월은 장형에 처해져 맞아 죽었다. 그 둘이 죽었다고 해서 명나라의 운명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동림당 출신의 관리들도 명나라의 명을 연장시키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숭정제 재위 17년 되던 해에 명나라는 멸망하고 말았다.

명나라의 멸망을 목도한 학자 중에 고염무(顧炎武)가 있었다. 그는 위충현의 국정 농단도 경험했고, 동림당의 폐해도 지켜봤다. 명나라의 멸망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겠지만 오랑캐로 여겼던 청나라의 건국은 더욱 더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반청 운동에 가담했다가 실패한 후 연구와 저술에만 몰두하다 생을 마쳤다. 그의 저술 중에 가장 유명한 <일지록(日知錄)>을 보면 망국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 중국 쿤산 팅린 공원에 있는 고염무의 석상. ⓒwikimedia.org

"자고이래로 나라가 망하는 일도 있고, 천하가 망하는 일도 있었다. 나라가 망하는 것과 천하가 망하는 것의 차이는 다음과 같다. 성을 바꾸고 국호를 바꾸는 것을 나라가 망한다고 하고, 인의도덕이 사라져서 짐승들이 사람을 잡아먹고, 사람끼리도 서로 잡아먹게 되면 천하가 망한 것이다. 우선 천하를 지킬 줄 알아야 하고, 그 다음 나라를 지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나라를 지키는 것은 군왕과 신하의 위치에 있는 통치자들이 고려해야 하는 것이고, 천하를 지키는 것은 지위가 낮은 일반 백성들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이다."

고염무의 입장에서 보면 그저 왕조가 바뀌는 것은 나라가 망하는 것이고, 공자의 가르침을 지키는 명나라가 오랑캐 만주족에게 멸망한 것은 천하가 망한 것이다. 이것을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정권이 바뀌는 것은 정치인들의 문제이지만 국가의 정의가 무너지는 것은 필부필녀, 남녀노소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키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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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흠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중국 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대륙연구소, 북방권교류협의회, 한림대학교 학술원 등에서 연구원을 역임했다. 중국의 관료 체제에 관한 연구로 국립대만사범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중국의 정치 문화에 대한 연구로 건국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 권으로 읽는 유교> 등의 번역서와 <중국 인민의 근대성 비판> 등 다수의 연구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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