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지지율 0%다. 20대와 30대 지지율은 1%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25일 첫 번째 사과 직후, 각종 여론조사상 국정 운영 지지율은 수직 낙하했다. 그리고 4일 국정 운영 지지율 5%를 기록했다. 환란 시기의 김영삼 전 대통령 지지율을 경신했다. 이게 바닥이 아닐지 모른다는 게 우선 드는 '공포감'이다.
박 대통령은 첫 번째 사과에서 교훈을 못 얻은 채 두 번째 사과문을 4일 발표했다. 달라진 점은 딱 두 가지다. 필요하다면 검찰 수사를 받을 것이며 특검도 수용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여야 대표를 만나겠다는 것.
이 외의 모든 발언은 지난 10월 25일 사과문을 조금 더 길게 늘인 데 불과하다. 냉정하게 평하자면, 1차 사과문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문구를 더 많이 집어넣고, 1차 사과문에 없던 눈물(혹은 울먹임)을 삽입한 것 정도가 눈에 띈다. 청와대는 사전에 질의응답이 없음을 공지했다. 예상됐던 일이다. 박 대통령은 담화문을 다 읽은 후 잠시 머뭇거린 듯하더니, 단상 앞으로 나서 "(기자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라고 마이크 없이 말한 후 곧바로 무대 뒤로 사라졌다. 이 역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질문을 받겠다고 한 것도 아니었으면서, 불필요한 행동을 추가해 버렸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이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의 느낌을 주려고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오히려 '허약하고 심약해진 대통령'이라는, 일종의 '불안감'을 부추기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만약 동정심을 극대화하려는 기획으로 그런 불필요한 행동이 시도된 것이라면, 민심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자들의 기획일 것"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담화문에 없는 것'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첫째,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책임 총리'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 둘째,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의 헌정 질서 문란 성격이나, 국가 시스템적 재앙으로 규정하지도 않았다. 그저 개인의 비리 수준으로 묘사하며 감성에 호소했다. 여기에 앞으로 주변의 모든 인간관계를 '절연'하겠다는, 언뜻 들으면 '해보자'는 것처럼 느껴지는 태도까지 보였다.
이 때문에 세간에는 대통령 연설 해석이 유행이다. "대통령 연설문을 해석하면 '도대체 뭘 어쩌란 말이냐. 어느 수준까지 사과하라는 말이냐'는 짜증 수준"이라는 해석이 그냥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감성적 담화문이었기 때문에, 시민들의 반응도 '감성적 느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논리적 반박을 포기한 시민들은 박 대통령의 언어로 박 대통령의 담화문을 '되치기' 하고 있다.
책임 총리 김병준은 '오리알' 신세…여전히 대통령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진정성 있게 호소했다고 느끼는 것 같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마음속으로 "펑펑 울었다"고 했고, 청와대 관계자들도 "진솔한 대통령의 심경이 표현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민심과 한참 괴리된 평가다. 아직도 왜 시민들이 박 대통령의 사과문을 조롱하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 왜 담화문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을까?
말과 행동이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책임 총리 부분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책임 총리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다. 대신 국정 운영을 직접 계속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금 우리 안보가 매우 큰 위기에 직면해있고, 우리 경제도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외의 여러 현안이 산적해 있는 만큼 국정은 한시라도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해 말했다.
김병준 국무총리 내정자는 여전히 '오리알'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헌법상 국정 운영의 최고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대통령만이 이 권력을 할애하고 나눌 수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가 "박근혜 대통령이 발령 전에 김 내정자와 충분히 협의해서 권한을 드렸다"고 강조했지만, 믿기 어려운 말이다. 이미 앞서 청와대 관계자가 "내치는 총리, 외치는 대통령"이 맡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인사수석이 "청와대에서 그런 입장이 나간 적이 없다"고 뒤집은 일까지 있다. 청와대의 반응들도 이제는 믿기 어렵다.
김 내정자도 이날 출근길에 "저도 담화문(내용이) 뭔지 모른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과 총리 내정자 간에 전혀 공유되는 게 없다는 말이다. '김병준 카드'는 결국 버리는 카드였다는 관측까지 제기된다.
야당은 이날 한광옥 비서실장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김 내정자 인사 철회 요구를 했다. 국회 인준을 통과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한 실장 면전에서 "대통령이 김병준 총리 지명을 철회하거나 본인이 사퇴하는 것이 답이다. 대통령이 탈당한 다음에 3당 영수회담에서 합의해서 새로운 총리를 임명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결정적으로 한광옥 비서실장은 이날 국회 운영위에 출석, 박 대통령이 국정에서 손을 떼고 2선으로 후퇴하는 방안에 대해 "나로서는 그런 건의를 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명백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여전히 국정 운영의 주체다. '셀프 책임 총리'는 웃음거리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국민 마음 달래겠다며 집회 행진 불허…말 끝나기 무섭게 뒤통수 치는 朴
말과 행동이 다른 사례는 많다. 이를테면 박 대통령은 이날 "무엇으로도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들이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라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고 말했고, "국민이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해 드리겠다는 각오로 노력해왔는데 이렇게 정반대의 결과를 낳게 되어 가슴이 찢어지는 느낌"이라고 했다.
민심을 달래고 싶다는 의지의 표명인데, 이 발언의 진정성은 곧바로 의심받고 있다. 박 대통령의 담화가 끝난 후, 경찰은 이날 오후 "5일 예정된 주말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종로와 을지로 방면으로 거리 행진하는 것을 금지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국민의 분노 표출 통로를 막겠다는 것이다. "국민의 마음을 달래드리기 어렵다"고 말한 뒤, 뒤통수를 친 행위다.
이 같은 상황은 계속 반복돼 왔다. 박 대통령이 재벌 오너들과 독대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었다. 그러나 청와대의 설명을 뒤집는 정황들이 제시되고 있다. 최순실 씨 관련 의혹이 불거질 때도 청와대는 "사실이 아니다",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었다. 그러나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다. 이미 박 대통령은 신뢰를 잃었다. 병세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고 있었던 것이다. 박 대통령은 '벌거벗은 임금님' 신세였다. 대통령의 담화가 조롱받는 이유다.
박 대통령이 취임 후부터 현재까지 추진한 정책들은 모두 의심받고 있다. 창조경제는 물론, 주요 경제 정책, 사회 문화 정책, 스포츠 정책, 심지어 외교 정책까지도 비전문가인 최순실 씨의 흔적이 있는 것으로 의심받아 신뢰성을 상실하고 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논란이 크게 일었던 정책들을 여전히 밀어붙이고 있다. 그것도 아주 강력하게.
오는 28일에는 '뉴라이트 사관' 논란을 일으킨 국정교과서 현장 검토본과 집필진 등이 공개된다. 내년 3월에 학생들에게 배포한다는 입장도 변함이 없다. 이명박 정부 시절 거센 반발에 부딪혔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도 거침없이 밀어붙이고 있다. 공공기관 노동자 파업을 불러일으켰던 성과연봉제 도입, 각종 공공 부문 민영화 등도 중단 없는 상태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 핵심 요직에 있던 인사들이 모여 광화문에 '박정희 동상'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시민들은 "광화문 박정희 동상에 찬성한다. 단, 옆에 총을 겨누고 있는 김재규 동상을 함께 만든다면"이라고 반응하고 있다.
아버지의 '신화'에 기대 끊임없이 기만적 통치를 일관해왔던 박 대통령은 왜 본인이 국민의 신뢰를 잃었는지, 그 진짜 이유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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