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장면 하나. 지난 봄 들렀던 도쿄의 번화가 시부야 역은 충견 하치의 동상이 있는 만남의 장소로도 유명하지만 사거리를 모든 방향으로 이어주는 스크램블 교차로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팔방 교차로는 한국에도 없는 것이 아니지만 시부야 역 교차로는 스케일이 다르다. 왕복 4차선에서 6차선에 이르는 길의 인도에서 기다리던 시민들이 파란 신호등이 켜지면서 교차로 한가운데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데, 흡사 도로 점거 시위가 시작된 것 같았다. 그리고 신호가 바뀌면 거리의 주인공은 자동차들로 금세 바뀐다. 이런 풍경은 밤낮을 가리지 않는데, (사람들의) 러시아워 때는 한번에 3000명이 오간다고 한다. 그래서 시부야 역 교차로는 그 자체가 체험해보고 싶은 관광 포인트가 되고 있다.
물론 이 교차로는 관광객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도쿄 시민 생활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 교차로는 해방감, 존중감 그리고 유대감을 선사하며, 이 거리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그렇다고 시부야 역이 자동차 통행이 적은 곳이 절대 아니다. 하지만 누구도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리지 않고, 조바심 내며 신호를 재촉하지도 않는다. 행정이 만든 물리적 공간과 제도에 보행하는 이들과 운전하는 이들 사이의 경험적 합의가 더해져 만들어진 평화 상태다.
보행권이란 이런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말하자면, 자동차가 다니는 길을 포함하여 발과 휠체어가 닿을 수 있는 모든 거리를 이용하고 공유할 수 있는 권리 말이다. 그게 아니라 주어진 궤도를 통해서만 움직일 수 있는 권리라면 그것은 절반 이하의 보행권이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역 고가 공원, 아니 서울로 7017은 어떠한가?
서울역 고가 공원이 보행권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동안 보행이 단절되었던 회현역과 서부역 사이를 이어준다는 것과 함께 주변을 17개의 램프 또는 계단 형태의 사람길로 이어준다는 것이다. 물론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길을 만들어주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회현역과 서부역 사이의 사람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서울역사와 롯데마트 옆을 지나는 계단길도 있고, 조금 돌아가지만 염천교를 통하는 길도 있다. 게다가 얼마 전 서울역 북부 역세권 개발이 코레일과 합의되었기 때문에 염천교와 서울역 사이에도 기차 선로 위를 덮는 구조물이 생길 공산이 크다. 이 역시 보행 기능을 가질 것이다.
조건과 배경, 추진 방식이 모두 서울역과 달랐던 뉴욕의 하이라인과의 비교는 그만두자. 서울역 앞의 구조물로 나름의 기능을 가지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로 7017은 계획 단계에서도 그렇고 지금도 몇 가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안전성은 보강하고 지속적으로 점검한다고 하더라도, 고가 위에 놓인다는 645개의 화분의 관리 부담이라든가 땡볕과 찬바람에 노출될 한여름과 한겨울의 이용 곤란 문제는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보행권 측면에서는 그다지 문제가 지적되지 않았는데, 나는 세 가지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첫째는 개념 또는 가치 부여의 문제로, 시민들의 생활 보행보다는 관광객의 사진 촬영 용도로 쓰일 것이 분명한 고가 공원이라면 그것을 진정한 보행권 증진이라고 평가해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보행 관광권'은 보행권의 아주 일부일 수밖에 없다. 둘째는 설령 서울로 7017이 보행 기능으로 호응을 얻는다 하더라도, 보행권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구조물이나 공간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라는 협소한 인식을 확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울로 7017의 성공은 보행권을 오히려 사회적으로 후퇴시키는 역설을 초래할 것이다. 셋째는 서울로 7017이라는 보행 수단이 있다는 이유로 한강대로와 서울역 광장, 서울역사, 염천교 등의 보행 통행 기능 개선 노력이 부차화될 수 있다는 염려다.
380억 원의 예산으로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만들고, 아름다운 화분과 내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효과에 가치를 부여할 수도 있다. 만리재로를 걷기 좋은 길로 조성하여 서부역에서 공덕역으로 연결한다는 구상도 좋다. 그러나 서울역 고가 공원이 애초에 보행권을 위한 사업이었다면, 그 보행권의 의미와 현실을 같이 돌아볼 때이기도 하다. 이런 저런 보행로를 덧붙이는 것이 보행권의 하나라면, 서울역 고가 바로 아래를 시부야 역 스크램블 교차로처럼 이용하게 하는 것은 보행권의 열 또는 백일 것이다. 물론 그 사이에는 많은 절충 지점이 가능하다.
따지고 보면 문제의 근원은 자동차와 싸우지 않으면서 순치된 보행권만을 바라는 태도에 있는지 모른다. 주어진 도로 공간을 놓고 자동차와 보행자는 제로섬 관계라는 전제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 보행과 자전거 이용 환경이 좋기로 잘 알려진 덴마크의 코펜하겐과 콜롬비아의 보고타, 그리고 가까이는 신촌 연세로의 대중교통 전용 지구까지의 사례들은 행정력과 시민의 힘이 차량을 그만큼 몰아낸 결과다. 싸우지 않고 얻어지는 보행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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