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과 문화와 종교를 팔아 나랏돈을 가로 채려는 뻔뻔함, 정부 요직에 있는 친척과 최고 권력자 가족의 이름을 팔아 호가호위하는 비열함, 자기보다 약한 자를 철저히 짓밟으며 보람과 만족을 느끼는 변태스러움, 법적 처벌을 피하려 죽을 병을 들먹이는 치졸함, 승마 등 별난 스포츠에 대한 남다른 관심, 분명한 직업이 없으면서도 각종 부동산에 여러 외제차를 굴리며 호사스런 생활을 하는 재력, 때만 되면 어디론가 홀연히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신비로움까지.
거친 서울말을 쓰는 '승려'의 등장
무슨 이야기냐 하면 경상북도 어느 군에 소재한 시골 마을을 사실상 지배하면서 순박한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한 승려를 자처한 폭력배의 이야기다. 눈을 부라리는 험악한 인상에 서울 억양을 쓰며 늘 머리를 박박 밀고 다니는 오십대의 거구인 이 자가 처음 나타난 때는 2007년 전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색 승복을 입고 여러 명의 비슷한 무리와 등장해서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인적이 드문 저수지 뒤에 정체불명의 '절'을 지어 똬리를 틀고는 저수지 위로 난 임도 주변의 전답과 대지, 임야를 대량으로 사들였다. 산지를 사서 무엇을 할 거냐 묻는 주민에게 "승마장을 만들려 한다"고 답했다.
이 자는 전입 초기에 여성 주민들을 "보살님"이라 부르며 골치 아프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자기에게 부탁하라며 친절과 호의를 베푸는 시늉을 했다. 자신이 매입한 산지로 통하는 밭을 가진 노인에게 "왜 이런 데서 힘들 게 농사를 짓느냐. 내가 서울에 아드님이 다닐 좋은 직장을 소개할 테니 서울 가서 사시라"면서 남의 땅에 대한 소유 의도도 은근슬쩍 내비쳤다.
남자 주민에겐 자기 말을 안 들은 자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포클레인으로 파묻어 버린다"는 흉악담을 꺼내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실제로 포클레인을 구해다가 사찰 마당에 세워 두었고, 곧잘 포클레인을 몰고 다니며 멀쩡한 땅을 뒤집어엎곤 했다.
"대통령의 동생을 데려오겠다"
이 자는 자신이 청와대 경호실 출신이며, 자기 형이 산업통상자원부 고위 관료 출신으로 이명박에 의해 유럽 어느 나라의 "특명 전권 대사"로 임명된 아무개 씨라 떠벌리면서 "산자부에 근무하면서도 동생 소유의 산에 전기를 놓아주지도 않는다"며 투덜대기도 했다. 정말 그 형의 위력 때문이었을까.
가옥은 몇 채 있으나 상시 거주하는 가구가 한 집밖에 없어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계곡 위 산지에 얼마 후 전주가 세워지고 전기가 들어왔다. 참고로 산자부 출신으론 특이하게도 유럽 국가의 대사를 지낸 이 자의 '형'은 박근혜 정부 들어 홍준표 경남도지사 밑에서 공공기관의 고위직을 맡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 이 자는 자기의 위세를 과시할 목적으로 "이번 선거 때는 내가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과 박근령을 마을에 데려오겠다"고 실명을 거론하며 마을 주민에게 거듭 장담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동생은 아니지만 텔레비전에 얼굴이 알려진 연예인(이 사람도 조폭인지 승려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머리를 박박 밀었다) 등을 마을에 데려와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이 연예인은 "우리 아우님을 잘 부탁합니다"며 주민들에게 능글거렸다. 정신 나간 공무원은 "스님 대단합니다. 중앙에 인맥도 많습니다. 존경합니다. 이런 분들이 많아야 합니다. 우리 군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라며 한술 더 떴다.
주민 복지비로 지어진 수상 별장, '민족중흥기원전'
권력자 팔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카카오톡의 자기 소개 사진에 박근혜 대통령의 새해 인사 사진을 올리고, 몰고 다니는 트럭의 자동차 열쇠고리에는 박정희의 얼굴 사진을 박아놓기도 했다. 더욱 가관인 것은 마을 주민을 위한 개발 복지비로 군청에서 나온 돈으로 자기 '사찰' 앞 저수지에 불법으로 수상 별장을 지어놓고는 '민족중흥기원전'이라 새긴 현판을 자기 마음대로 달고선, 별장 안에 불상을 안치하고 그 뒤에 박정희와 육영수의 영정을 모셔놓은 일이다.
더욱 어처구니없는 일은 군청 예산으로 수상 별장과 절집을 연결하는 데크를 설치하고는 마을 주민을 비롯한 외부인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저수지와 임도가 만나는 공로에 철제 대문을 달고 사람들의 도로 통행을 통제하고 방해하면서 공유지를 사유지인양 독점하려 했다는 점이다.
심각한 문제는 이 공사가 군청에서 하는 공공 사업인지 폭력배가 자기 돈으로 하는 사설 사업인지 주민 다수가 몰랐다는 점이다. 무슨 뒷덜미가 잡혔는지, 군수와 면장은 불법 행위를 묵인 방조했으며, 일부 공무원은 불법 공사의 기획과 진행에 적극 가담하기도 했다.
공중으로 날아간 10억 원
부면장을 비롯한 일부 공무원은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려는 주민이 적법하게 청구한 정보에 대해 "관련 정보가 부존재한다"며 고의로 거짓말을 늘어놓는가 하면, 면장은 마을을 찾아와 주민들에게 "지나친 정보 공개 청구로 면사무소 업무가 마비되고 있다"는 불평을 늘어놓으며 "업무 방해 등으로 법적 조치를 취할 수도 있다"고 협박해 주민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마을 주민이 정보 공개를 통해 확인한 바로만 10억 원이 넘는 국고가 이 자의 편의와 이익을 충족시키는 데 사용되었다. 참고로 이 마을이 속한 군 전체의 초중고 무상 급식 비용은 연간 6억 원가량이다.
문제가 된 수상 별장을 비롯해 완공 이후 누구도 사용한 적 없이 늘 문 잠겨 있는 화장실, 수상 별장 옆에 자리한 분수대와 조명 시설, 사찰을 위한 연꽃 수백 본, 이 자의 사유지를 연결할 목적으로 추진된 임도에 대한 콘크리트 포장, 사찰로 이어지는 길에 설치된 가로등, 사찰 뒤 계곡에 건설된 사방댐, 마을 주민 감시용으로 의심 되는 CCTV 카메라의 불법적 설치, 그리고 그 모니터링 장비의 사찰 내 설치와 사적 통제, 저수지 둑 위의 무의미한 국기 게양대 등 모두 마을 개발과 주민 복지와 별 상관없는 사업과 공사였다. (그렇다. 그는 마을에 CCTV를 설치하고, 그 CCTV를 자기 사찰의 모니터링 장비에 연결해 마을 주민을 감시했다. 강우석 감독의 영화 <이끼>(2010년)가 생각나는 섬뜩한 대목이다.)
사방댐 건설과 임도 콘크리트 포장을 뺀 나머지 사업들은 농사용 저수지에 대한 '공원화' 사업의 명목으로 지출되었다. "(폭력배 소유의 사찰과 토지에 맞닿은) 저수지에 공원을 만들면 주민들도 이용이 가능하여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외래 관광객 유치가 가능하여 소득 증대에 도움이 된다"는 게 공사를 주도한 얼빠진 공무원들의 주장이었다.
저수지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계곡에 위치하고 주민 다수가 노인이라 거동이 불편하여 이른바 공원이란 곳을 이용하기가 애초 불가능한 게 명백했음에도 특정인의 사리사욕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궤변을 늘어놓은 것이다.
관련 공무원은 훈계와 경징계에 그쳐
문제의 심각성을 느낀 마을 주민은 경북도청에 민원을 제기했고, 도청의 감사 결과 이 공사는 계획 단계에서부터 불법이었음이 드러났다. 도지사는 군수에게 원상 복구와 관련 공무원 징계 명령을 내렸으나, 군청은 도지사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몇 달을 질질 끌다가 마을 주민들의 거듭된 항의를 받고서야 수상 별장과 데크를 마지못해 철거하였다. 철거 비용으로만 군청 예산이 1억 원 가까이 추가로 들어갔지만, 관련 공무원들은 경징계와 훈계를 받는 데 그쳤다.
그 와중에 마을 주민의 제보를 받은 KBS대구총국이 불법 공사의 문제점을 두 차례 보도까지 했으나, 군청은 적극적으로 나서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폭력배를 두둔하고 문제가 된 공무원들을 감싸는 데 급급했다. 감사 신청 전 조속한 시정을 촉구하는 주민에게 면장은 "전임자가 결정한 일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다 적법한 절차와 과정을 거쳐서 했을 것"이라며 "30년 공무원 생활동안 단 한 번도 양심에 거스르는 일을 한 적이 없다"며 넉살을 부리기도 했다.
공원을 지을 수 없는 지역에 들어선 '공원'
이런 사정으로 인하여 '00 발원지 공원'이라 명명된 이 공사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국비가 소요되었음에도 군청은 준공식조차 열지 못하고 쉬쉬하는 지경이 됐다. 참고로 한 글자가 가로세로 1미터가 넘는 크기로 모두 일곱 자의 공원 이름을 저수지 둑 위에 설치하였는데, 그 비용이 글자 하나당 100만 원에 달했다. 물론 지금은 주민들의 끈질긴 항의 끝에 공원명 구조물이 철거되었다.
재미난 것은 '00 발원지 공원'이라는 작명을 군청의 어느 부서가 했냐는 정보 공개 청구에 군청이 "정보 부존재"라 답변했다는 점이다. 황당함을 느낀 주민이 군청의 해당 부서에 전화를 걸어 작명 경위를 밝히라고 독촉하자 "우리도 어느 부서에서 누가 했는지 모른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 저수지 지역은 용도가 농사용이기 때문에 법률상 공원이 들어설 수 없는 곳"이라는 첨언이었다. 공원 사업 자체가 각본이 잘 짜인 한편의 사기극이었던 셈이다.
이상은 나의 늙은 부모가 밭농사를 짓는 경북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관청을 등에 업고 공무원들의 권위를 이용해 주민들을 신체적 정신적 폭력으로 장악하고 자기 뜻을 거스른다며 부모를 괴롭히는 폭력배 문제를 풀기위해 동분서주하던 가운데 마을 사람으로부터 놀라운 제보를 듣게 되었다.
"문고리 3인방 이재만이 왔다갔다"
'공원화' 사업이 마무리 되어 군청에서 준공 허가가 떨어질 무렵이다. 당시 청와대의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으로 '문고리 3인방'과 '십상시'의 국정 농단과 전횡이 언론에서 떠들썩했다. 어느 것 하나 적법하게 진행된 게 없어 제대로 된 준공식 한번 열지 못한 '00 발원지 공원'을 서울에서 여자를 대동해 내려온 중년의 남성이 방문해 시설을 둘러보고 사찰에서 묵고 갔다. 그날 마을 아주머니가 폭력배의 강압으로 서울 손님에게 밥을 해주고 농산물도 마지못해 팔게 되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지나 도청 감사가 진행되고 공원화 사업의 불법성이 밝혀지게 되자 아주머니가 다음과 같이 제보했다.
"그때 내가 밥해주고 농산물 판 서울 사람 이름이 와 문고리 3인방 이재만이 아이가."
깜짝 놀란 필자가 군수 얼굴도 잘 모르면서 이재만 얼굴은 어떻게 아느냐고 되묻자, 이렇게 사뭇 진지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머리 벗겨지고 얼굴이 얍삽한데(호리한데) 나중에 보니 텔레비전 뉴스에 문고리 3인방이라고 맨날 나왔다 아이가."
당시엔 나도 이재만의 이름은 알고 있었으나 그 얼굴은 모르던 차였다. 인터넷이 되는 곳에서 '문고리 3인방 이재만'을 검색하니 아니나 다를까 "머리가 벗겨지고 얼굴이 얍삽"한 이재만의 사진이 나왔다. 하지만,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아무리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이라지만 청와대의 비서관이, 그것도 대통령 심복 중의 심복이 조폭으로 의심되는 모리배와 연결 되어 그 자가 저지른 부정 공사의 시설을 즐기러 경북 오지의 시골까지 왔을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이미 박근혜 정권의 '지질함'을 알고 있었지만 그 수준이 이 정도까지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그냥 비슷하게 생긴 사람을 동네 아주머니가 착각한 거라 판단했다.
'황인자 리스트'에 등장한 이재만
그런데 바로 그날 저녁 서울로 올라오는 KTX 안에서 아줌마의 이야기가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계기는 주간지 <시사저널>이었다. '정관계 브로커 황인자 리스트'에 청와대 이재만이 거론되고 있었다. 물론 이재만은 황인자를 알지 못한다고 기자에게 답했지만, <시사저널> 기자가 근거 없이 이재만을 언급한 건 아닐 터. 경상남도 통영의 복부인 격인 황인자와 얽혔다면 경북 오지의 시골 마을을 장악한 거친 서울말을 쓰는 모리배와 엮이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후 이재만과 그가 동행한 여자에게 밥을 해줬다는 동네 아주머니를 만날 때마다 이재만의 사진을 보여주며 같은 사람 맞느냐고 거듭 물었지만, 대답은 늘 같았다.
"하머. 이재만이 맞다. TV 뉴스에서 봤다 아이가. 머리 벗겨진 거. 이재만이다."
사정이 여기까지 이르자 경북의 시골 마을을 장악하여 순진한 주민들의 등골을 빨아먹은 이 자가 대한민국의 '정통' 조직폭력배가 아닐까 추측하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 일반적인 폭력배와 직업적 조폭의 차이점은 후자의 경우 극우 집단과의 연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만이 아니라 가깝게는 일본, 멀게는 미국에서도 공통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재만 제보를 접하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이 자와 극우 세력의 연계를 의심할 만한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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