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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에서는 '매출'이 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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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에서는 '매출'이 인격?

[작은책]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

2013년 그해에 세 명의 백화점 노동자가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 각각 "더 이상 백화점 일을 하고 싶지 않다", "사람들 그만 괴롭히세요"라는 말을 남기고서 떠난 그녀들을 내몬 것은 백화점의 매출과 해고의 압박, 서비스 모니터 점수와 평가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가 원인이라고 했다. 가장 '화려한' 쇼핑 공간인 백화점과 백화점 노동자의 '자살'. 사뭇 동떨어져 보이는 둘 사이에 놓인 백화점 노동자들의 이야기들을 만나 볼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민우회는 그해에 열 명의 백화점 노동자를 만나 그녀들의 일 이야기를 들었다. 듣는 것, 이것이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안미선·여성민우회 엮음, 그린비 펴냄) 책에 담긴 여정의 첫 시작이었다.

▲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안미선·여성민우회 엮음, 그린비 펴냄). ⓒ그린비
2개월에서 19년까지 다양한 시간 동안 백화점에서 일하고 있던 그녀들 중 백화점에 직접 소속된 노동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다양하고 복잡한 고용 형태 속에서 파편화되어 일하고 있던 그녀들은 백화점의 유일한 법도인 '매출'이라는 공식 아래, 일상적인 감시와 압박을 받고 있었다. 불경기여도 매출은 항상 올라가야 한다. 백화점은 매일 각 매장의 매출을 비교하고 목표를 달성하라고 요구했다. 매출이 떨어지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진상 고객이 오더라도, 그 고객이 백화점 노동자를 협박하고 괴롭혀도, 백화점은 매출로만 이어진다면 쉽게 눈을 감았다. "백화점에서는 매출이 인격"이라는 말이 공연하게 떠돌았다. 백화점, 브랜드 본사, 협력업체의 관리자들이 매일같이 닦달하는 통에 백화점 노동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일단 본인의 카드로 매출 목표를 채우거나 대출을 받아 메우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렇게 올린 실적이 다음 해에 다시 넘어서야 하는 기준이 되어 노동자의 발목을 잡았다.

백화점이 이윤에 눈이 멀어 외면하던 '사람'들, 백화점 노동자. 우리는 다시 그 '사람'을 보러 백화점에 가기로 했다. 서울, 고양, 광주, 춘천 등 각지에서 시민들이 모였다. 백화점에서 일해 본 적이 있다는, 일하고 있는 지인이 있다는, 백화점을 자주 이용하기도, 덜 이용하기도 한다는 시민들이 모여 백화점을 고객과 노동자 모두가 존중받는 공간으로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모았다. 고객의 입장이 아닌,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입장에서 백화점을 직접 모니터링하여 백화점이 어떤 공간인지, 우리 눈과 발로 알아보기로 했다. '우리가 간다! 바꾼다! 우다다액션단'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우리는 2014년 여름, 그렇게 물건이 아닌 '사람'을 보러 백화점에 갔다.

백화점은 고객을 위한 공간과 노동자를 위한 공간이라는 두 세계로 나뉘어 있었다. 깨끗하고 화려하게 단장된 고객용 화장실, 엘리베이터, 휴게실과 파우더룸은 백화점 노동자들에겐 철저하게 사용이 금지된 공간이었다. 고객이 모르는 노동자의 공간은, '스태프 온리(관계자 외 출입금지)'의 문 너머에 펼쳐져 있었다. 은은하고 화려한 조명으로 빛나는 백화점 매장과 달리, 노동자의 공간은 침침하고 어두웠다. 쾌적한 온도 대신 습하고 무거운 공기가 와 닿았다. 복도마다 상품 재고 박스가 가득 차 있었고, 몇 칸 없는 좁고 낡은 직원용 화장실에마저 상품 박스가 천장까지 쌓여 있었다. 우다다액션단은 직원용 휴게실 또한 확인할 수 있었다. 한 층에 백 명이 넘는 백화점 노동자가 모두 이용하는 휴게실은 매장 하나보다 작은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컨테이너 박스로 휴게실을 만들어 놓은 곳도 있었다. 낡은 장판 위에 찢어진 소파 하나가 전부인 곳,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운 곳. 그마저도 너무 부족해 여직원용 휴게실에서는 자리다툼이 자주 일어났다. 그런 탓에, 백화점 비상계단에는 어둠 속에 조용히 쪼그리고 앉아 쉬는 백화점 노동자를 여러 번 마주칠 수 있었다. 물건을 사기 위해 방문한 백화점과, 노동환경을 살펴보기 위해 방문한 백화점은 확연히 달랐다. 백화점 천장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던 CCTV(감시 카메라) 또한 다르게 보였다. 물건의 도난 방지 등 방범용으로 설치된 수많은 CCTV는 백화점 노동자 감시용으로 쓰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백화점은 노동자들이 앉아 있는지 서 있는지, 고객 접대를 어떻게 하는지 CCTV라는 빼곡한 눈을 통해 일상적으로 감시하고 있었다.

또한 '서비스 향상'을 위해 고객을 가장해 백화점 매장과 노동자에게 점수를 매기는 '미스터리 쇼퍼'도 있었다. 백화점에서, 브랜드에서, 입점 업체에서 각각 미스터리 쇼퍼를 보낼 경우, 2개월에 한 번꼴로 찾아오는 미스터리 쇼퍼 때문에 매 순간 모든 고객을 고강도의 긴장 속에 응대해야 했다. 백화점 노동자가 미스터리 쇼퍼 때문에 긴장하는 이유는 점수에 따라 가해지는 불이익 때문이다. 평가점수가 낮으면 관리자에게 끊임없이 주의를 받거나 특별교육을 받아야 한다. 심한 경우 점수에 따라 그 자리에서 잘리는 경우도 있었다. 2013년 그 해에 자살한 한 분의 노동자 역시, 자살하기 이틀 전 서비스평가에서 낮은 점수가 나왔다는 통보를 받았다. 어떤 부분을 평가하고 있는지, 미스터리 쇼퍼가 점검하는 항목들을 살펴보았다. '5초 이내에' '꼭' '형식적이지 않은' '두 마디 인사말'을 해야 하고, 항상 '밝고 경쾌'하면서도 '솔' 톤을 지켜야 하고, 무표정하지 않아야 하며, '고객과 눈 맞춤'을 요구하는 등의 수십 가지 항목이 평가표에 있었다. 이 모든 항목들을 모두 지켜야 점수가 깎이지 않는다는 것을 내내 생각하며 사람을 대해야 하는 백화점 노동자들에게 미스터리 쇼퍼 제도는 정말 '서비스향상'에 도움이 되는 평가 방식이 맞을까?

▲ 서울의 한 백화점 모습. ⓒ연합뉴스

이런 이야기들을 기록한 책이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다. 시민의 눈으로 499개의 백화점 매장을 모니터링했던 우다다액션단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민우회가 인터뷰한 14명의 백화점 노동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다. 상품과 이윤 뒤에 가려진 백화점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노동자와 소비자가 서로 만날 수 없도록 갈라진 두 세계에서 다시 '사람'을 보자고 말한다.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고, 고객만을 위한 노동환경이 아닌, 고객과 노동자 모두를 위한 노동환경이 필요하다고, 그렇게 우리가 다시 '사람'을 만날 때, 갈라진 두 세계를 잇기 위한 우리 모두의 여정이 이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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