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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나온다"

[민들레] 글똥 누는 교사의 말글 훈련법

날마다 글똥 누는 교사

나는 글을 즐겨 쓰는 교사다. 나의 일상에서 제일 중요한 두 가지 과업을 말하자면,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것과 집에서 글을 써서 페이스북에 올리는 것이라 하겠다. 페이스북에서 거의 매일 글똥을 누고 있는 내가 학창시절에는 글을 써본 기억이 거의 없다. 글쓰기라곤 초등학교(초등학교) 때 숙제로 일기를 쓴 것이 전부다. 그런 내가 인터넷시대의 도래와 함께 온라인 공간에서 이런저런 글을 남기면서 글쓰기에 재미를 붙여갔다.

글쓰기를 음악 연주에 비유하자면, 청중 없이 혼자 악기를 연주하면서 어떤 고상한 미적 쾌감을 느낄 수도 있고, 자신의 연주를 매개로 여러 사람과 그 기쁨을 나눌 수도 있다. 나의 경우는 후자에 해당한다. 즉, 인터넷 공간에서 시작한 나의 글쓰기는 처음부터 독자를 염두에 두고 썼으며 독자와의 대화를 통해 발전해왔다.

읽는 이를 염두에 둔 글이든 자기 독백의 글이든, 글쓰기는 결국 독자를 향한다. 독백 형식의 글은 자기 자신이 독자다.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 가운데 자기 내면을 밖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자기표현의 욕구가 있다. 청중이 없는 연주를 생각할 수 없듯이, 독자가 없는 글쓰기 또한 생각할 수 없다. 글쓰기는 독자를 향해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이다. 속에 담고 있기엔 갑갑한 어떤 비상한 감정이나 의견을 표출함으로써 정신의 항상성(恒常性)을 꾀하는 것, 이것이 글쓰기의 첫 번째 이점이다.

흔히 사람들은 마음속에 있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글말이 아닌 입말로 표출하며 정신의 항상성을 유지하곤 한다. '수다'라는 이름의 배설과 글쓰기가 차원이 다른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 번 뱉고 나면, 허공으로 사라져 버리는 입말과 달리 글말은 기록으로 남는 것이 큰 장점이다. 글쓴이는 자기 글의 독자가 되어 자신의 생각을 응시할 수 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며 얼굴에 묻은 불순물을 지우듯이, 자기 글을 모니터링하면서 심리학자 비고츠키의 용어로 자기 조절을 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글말 속에는 입말과 달리 얼굴 표정이나 억양, 톤이 없으며, 말하는 이와 듣는 이 사이에 맥락의 공유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최소 수준의 이해를 위해서라도 높은 수준의 추상화와 정교화가 요구된다. 사람들이 글쓰기를 기피하는 것도 이런 점 때문이지만, 바꿔 말하면 이 과정을 통해 글 쓰는 이의 사고력이 증대된다. 글쓰기는 성찰적 태도와 사고력을 키우는 최고의 방법이다.

▲ 초등학생들이 한글날을 기념해 경필쓰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단 쓰고 볼 것

어떻게 하면 글을 무난하게, 그리고 잘 쓸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은 "일단 쓰라"는 것이다. 일단 쓰고 볼 일이다. 마치 눈 감고도 자기 집을 찾아갈 수 있을 정도로 훤히 알고 있는 일상의 이야기를 글의 주제로 잡는다면 쉽게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교한 사고와 짜임새를 요하는 글이라면 쉽게 써지지 않는다. 이 경우 한 번에 글을 완성하려 하지 말고 일단 쓰고 난 뒤 쓴 글을 여러 번 곱씹으면서 계속 고쳐 나가는 것이 좋다.

쉽게 써지지 않는 글은 쓰고 나면 마음에 안 들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아이디어는 좋지만 논리의 전개나 글의 짜임새가 어설프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자신의 글에서 어떤 점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일단 ‘글을 썼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것이다. 수영을 배우기 위해선 물에 뛰어들어야 하듯이, 글을 잘 쓰기 위해선 일단 글을 써야만 한다. 쓰고 난 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차츰 고쳐 나가면 된다.

기본 아이디어가 괜찮으면, 그 글을 정교하게 다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시간이 해결해준다. 일단 썼기 때문에 해결이 가능한 것이다. 자신이 쓴 글을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거듭 읽으면서 고치고 또 고쳐 가다 보면 퇴고의 손길이 많이 닿을수록 글의 완성도는 높아진다. 그리고 가능하면 글 고치는 시간 간격을 많이 두는 게 좋다.

글을 쓰고 나서 이내 훑어볼 때는 보이지 않던 결함이 그 다음 날에는 보일 수 있고, 열흘 뒤에는 또 새로운 문제가 포착될 수도 있다. 술이 그러하듯, 글도 오래 묵힐수록 좋은 작품이 나온다. 또한 컴퓨터로 글 작업을 한 뒤에 컴퓨터 화면으로 검토하지 말고 반드시 종이로 인쇄해서 읽어야 한다. 내가 쓴 글을 내가 독자가 되어 책을 읽듯이 검토하면서, '독자의 입장에서 이 말이 어떻게 다가갈 것인가' 생각해봐야 한다.

글을 일단 쓰고 봐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우리의 이성과 감성이 작동하는 원리와 관계가 있다. 흔히 우리는 데카르트에서 연유하는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해진 결과, 이성과 감성을 따로따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이성적이거나 감성적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과 감성은 수레의 나란한 두 바퀴처럼 언제나 함께 작동하는 법이다. 글쓰기에서 이성 못지않게 감성의 작동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대상에 대해 문제의식이나 감동을 느껴 글감으로 포착하는 것은 감성의 힘이 큰데, 이 감성은 글쓰기 작업이라는 자동차를 움직이는 엔진과 같다. 그런데 감성으로 야기된 통찰, 즉 영감은 찰나적으로 다가오는 것이어서 시간이 흐르면 사라져 버린다. 그때는 글을 쓰려고 해도 고장 난 자동차처럼 글쓰기의 시동이 걸리지 않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글짓기는 음악가들이 곡을 쓰는 것과도 같다. 곡이든 글이든 영감이 떠올랐을 때 바로 써야 한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조건으로 글에 관한 배경지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글을 쓰기 위해선 배경지식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지만, 거꾸로 글을 쓰면서 그 지식이 채워지는 면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글을 쓰기 전에 우리는 생각을 정리하고 머릿속으로든 지면으로 든 개요를 짠다. 비고츠키 용어로 이것은 어디까지나 '접힌 사고'이다. 접힌 사고를 막상 글로 펼쳐보면, 글이 어색하다. 글이 어색한 이유는 해당 주제에 관한 지적 역량의 부족과 관계있다. 즉, 우리는 어떤 주제와 관련하여 그 지적 수준만큼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내 삶과 직접 연결되어 익숙한 주제의 글은 쉽고 빨리 쓸 수 있지만, 추상적인 사상 언어로 채워야 하는 깊이 있는 주제의 글은 쉽게 써지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글을 쓰자면, 정교한 배경지식을 갖추기 위해 자신이 읽었던 책도 뒤적여보고 인터넷 검색도 하면서 글의 내용을 살찌우는 별도의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나의 지성이 발전해간다. 글쓰기는 가장 훌륭한 자기교육의 방법이라 하겠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요령을 논하기 전에 글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생각해보면, 글은 삶에서 온다. 교육 작가인 나의 글은 교육현장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생성된다. 현장에서 교사로 있더라도 학급담임이 아니라 교과전담을 맡을 때에는 글감이 현저히 줄어든다. 글감의 원천인 교실과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학급담임을 맡지 않아도 이러한데, 만약 교실을 떠나 교장실에 홀로 남겨진다면 아이들에 관해 쓸 글이 거의 없을 것이다. 글은 삶에서 오는 법이기에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 교사에게 좋은 삶이란 학교 안팎의 사회적 모순에 분노하고 아이들과 동료들과 치열하게 부대끼는 삶을 말한다. 정직한 삶은 정직한 글쓰기로 이어진다. 글쓴이의 삶의 진정성과 비례하여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적인 글이 만들어진다.

어린아이에게 혼잣말이 중요한 이유

낯선 곳에서 길을 물을 때 길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매우 쉽게 말하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선 굉장히 어렵게 느껴져 당혹스러웠던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예전에 외딴 산속에 위치한 어떤 건물을 찾아갈 일이 있었다. 중간마다 만나는 지역 주민들에게 길을 물으니 한결같이 "차를 타고 조금만 가면 나온다" "연못을 지나면 보인다" "길이 외길이니 찾기 쉽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조금만'이라는 거리는 초행자의 입장에서 굉장히 먼 거리이고, 그때는 건기여서 물이 말라 있었으며, 무엇보다 밤이어서 연못을 식별하기 어려웠다. 외길이라던 길도 막상 가보니 중간에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매일 다니는 사람 입장에선 자명한 풍경이겠지만 낯선 이방인의 입장에서 산중의 밤길은 암흑천지와도 같은데, 그들은 순전히 자기 입장에서만 길을 묘사한 것이다.

아이들과의 만남, 교육에 있어서도 글쓰기는 정말 중요하다. 초등학교 저학년생의 일기를 읽다 보면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종종 있다. 아이가 논리에 어긋나는 문장을 구사해서가 아니다. 자신의 주관적 입장에서 보면 다 맞는 말이고 이해하기 쉬운 내용인데, 자신의 생각을 대상화, 즉 상대방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기술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가장 흔한 오류가 '내 동생이랑' 할 것을 '○○이랑' 하는 식으로 이름을 거론하는 것이다.

비고츠키는 입말과 글말의 차이를 의사소통을 위한 사회적 상호작용 경험의 차이로 설명했다. 어린아이의 경우 친밀한 공동체적 관계망 속의 인물들과 소통을 하기 때문에 '○○라' 해도 뜻이 다 통하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글쓰기라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친밀한 상대와 말할 때는 아주 쉽게 말할 수 있는 내용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글쓰기에서는 고도의 추상화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 과정에서 인간의 사고가 발달한다.

내뱉는 즉시 사라져 버리는 입말과 달리 기록으로 남는 글말의 성격으로 인해 글쓰기는 학생의 사고력은 물론 정서와 인성 발달에도 큰 도움이 된다. 학생은 자기 글의 독자가 돼서 자신의 생각을 들여다보며 이른바 메타 인지를 꾀할 수 있다. 아이든 어른이든 사고의 발전, 정신의 성숙은 자기성찰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글은 그러한 자기검열(자기조절)의 훌륭한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비고츠키를 공부하면서 그의 통찰 가운데 가장 훌륭하다 싶었던 것이 '혼잣말' 개념이다. 심리학자 피아제는 이를 '자기중심적 언어'라 일컫고, '자폐성' 운운하면서 부정적인 속성으로 치부했다. 이런 피아제와 대조적으로 비고츠키는 어린아이가 혼잣말을 통해 사고를 키워가며, 이 혼잣말이 나중에는 사고 속으로 들어가 '내적 언어'를 이룬다고 했다. 즉, 내적 언어의 수준만큼 사고력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비고츠키의 혼잣말 개념이 놀라운 것은, 어린아이의 경우 생각을 한 다음 말(입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면서 생각을 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혼잣말을 많이 하는 만큼 아이의 생각은 발전하게 되고, 혼잣말하지 않으면 아이의 사고력은 성장하지 않는다.

혼잣말이 유아의 생각을 발전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초중등학생이나 성인은 글쓰기를 통해 사고를 발전시킬 수 있다. 유아가 생각한 뒤에 혼잣말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말을 하면서 생각을 키워 가듯이, 우리는 일단 글을 쓰면서 우리 내면에 잠재된 '접힌 사고'를 글로 펼쳐 내면서 우리의 사고를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갈 수 있다.

외딴 건물을 찾아 헤매던 그날 밤, 내게 길을 설명해준 그 사람들은 아마 평생 글 한 편 써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방인에게 길을 설명하기 위해선 자신의 입장이 아닌 초행자의 입장에서 설명을 해줘야 한다. 자신에겐 너무나 쉬운 이야기가 이방인에겐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알 때 그 사람은 '유능한 화자'가 될 수 있다. 때문에 글쓰기 능력은 곧 사회적 공감 능력과도 연결된다. 공감과 소통 능력을 기르는데 '글쓰기'보다 더 중요하고 효율적인 교육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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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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