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기고] "공무원은 국민 앞에 책임을 지는 존재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기고] "공무원은 국민 앞에 책임을 지는 존재다"

'적극행정 면책제도'의 위험성

책임지지 않는 관료제를 빗댄 '국파관료재(國破官僚在)라는 말이 있다.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에서 따온 말로 나라는 망해도 관료는 그대로'라는 일종의 비아냥이다. 우리도 시민이 주인 되는 공화국이 아닌 관료공화국을 만들 셈인가?

감사원은 지난 10일 「적극행정 면책제도」도입 등 감사대책을 발표했다. '사심 없이 순수한 동기로'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한 경우에는 '절차적 하자'가 발생한 경우라도 해당 공직자 등의 징계책임 등을 감면해주겠다는 것이다.

대체 '순수한 동기'란 무엇인가? 그 순수함을 누가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으며 평가할 것인가? 어떤 경우가 '사심 없이 순수한 동기(감사원 보도자료)'가 될 수 있을까? 법치의 기본요건인 명확성의 원칙은 어디로 숨었을까? 감사원의 설명자료를 뒤져봐도 시원치 않다.

감사원은 면책의 3대 요건을 발표했다. "현실적 타당성, 시급성, 클린 핸드(clean hand)"가 그것이다. 클린핸드 요건은 설명하기를 "업무처리과정에서 관련자의 사적인 이익 도모 등의 개인 비리가 감사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개인비리만 없으면 순수하다. 감사과정에서 드러나지 않기만 하면 순수하다. 이렇게 이해해도 무방할까? 좀더 분명한 기준을 제시해줘야 한다.

미국과 우리가 같다고?

일부 언론은 외국의 사례를 들었다. 미국이 최근 7000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구제금융 투입 결정과 집행과정에서 재무부 관리들이 법원 재판이나 감사원 감사를 받지 않도록 하는 면책조항(긴급경제안정화법; EESA 8장)을 명시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필요하다는 논리일 것이다. 감사원도 "특히 경제난 타개와 관련된 업무에 대해서는 면책제도를 더욱 적극적으로 운영할 계획임"이라고 했다. 일정 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우리 헌법과 미국 헌법은 다르다. 당연히 후속법규도 다를 수 밖에 없다. 미국의 헌법질서 하에서, 미국의 경제질서 하에서, 그 질서 아래에서의 구제금융, 시장경제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미국에서는 당연히 위헌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위헌논란이 있었고, 이런 주장은 공화당 의원들 사이에서 널리 공유되어 처음에는 구제금융법안이 부결되기까지 했다.

잘 알다시피 미국은 우리 헌법과 같은 경제질서조항이 아예 없다. 미 연방헌법 제1조 제10항의 계약조항과 수정헌법 제5조와 제14조의 적법절차에 대한 조항이 경제적 기본권 혹은 경제질서조항의 전부이다.

그래서 대공황 당시 미 연방대법원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에 대해 '과감한' 위헌을 선언할 수 있었던 것이다.(루즈벨트 대통령은 연방대법원의 변화를 위한 강력한 정치적 압력까지 시도한 적이 있다. 1936년 대통령에 재선된 그는 연방대법원 신규충원계획을 제안한다. 대법관 임명권을 가진 대통령이, 70세 이상이 된 대법관 1명당 대법관 1명씩을 추가로 임명하여 9명이던 대법관 수를 최대 15명까지 늘릴 수 있도록 아예 제도 자체를 바꾸려고 시도했다. 당시 그는 연방대법원이 자유방임주의의 철학을 신봉하여 몇몇 핵심적 뉴딜입법을 무효화한 것에 특히 화가 나 있었기 때문이다.)(Erwin Chemerinsky, Constitutional Law)

미국은 이와 같은 헌법과 헌법해석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위헌논쟁이 뒤따른다. 법적 근거가 취약한 만큼 당연히 책임 문제가 따른다. 그래서 면책조항에 대한 규정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공무원은 국민에게 법적 책임을 지는 존재

우리 헌법 제9장은 경제편이다. 헌법 제119조 제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IMF 직후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위헌논쟁이 없었다.

헌법이 예정해두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경제위기에 대한 정부의 개입, 규제, 조정 또한 헌법이 미리 규정해두었기 때문에 당연히 합헌성을 획득한다. 헌법에 근거한 정책결정인 이상 위법하지만 않는다면 책임문제가 뒤따를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감사원은 굳이 '경제난 타개와 관련된 업무에 대해서는 면책제도를 더욱 적극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헌법적 관점에서의 보완이 필요하다.

다시 헌법이다.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제7조 제1항)."고 정했다. 헌법은 공무원은 책임을 지는 존재라는 것이다. 무슨 책임? 법적 책임이다. 우리 헌법은 제1차적으로는 '국가내부에서의 공무원의 책임', 즉 기관내부에서의 변상책임과 공무원법상의 책임 등을 명시하고 있다. 감사원법과 국가공무원법에 근거하여 피감공무원으로서의 책임, 공직자로서의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국가공무원법 제56조는 "모든 공무원은 법령을 준수하며 성실히 직무를 수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했다. 감사원법은 제20조에서 행정기관 및 공무원의 직무를 감찰하여 행정행위의 개선향상을 기한다고 정했다. 헌법과 하위 법률에 정한 책임조항이 도처에 널려있다.

법을 '예규'로 무력화시킬 수 있나?

제2차적으로는 '공무원의 국민에 대한 책임', 즉 국민에 대한 형사책임 및 정치적 책임을 밝히고 있다. "공무원의 국민에 대한 책임은 직업공무원제도에서는 제1차적으로 법적인 배상책임과 형사책임을 뜻하는 것이고, 제2차적으로는 민주적인 직무지시계통을 통한 대의적·정치적 책임을 뜻하는 것(허영, 한국헌법론, p. 761)"이다.

그런데 감사원은 '현실적 타당성'이라는 면책기준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법령 등의 문리적 해석과는 부합되지 않더라도" 처리할 필요성 및 업무처리과정의 투명성만 인정된다면 해당 공무원은 면책하겠다는 것이다. 국회가 정한 법이 무시되는 건 아닐까? 감사원의 가치선택이나 일관성 결여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다만 민주적 절차를 통해 제정된 법을 감사원이 '예규'라는 형식으로 무효화시키는 그런 우려는 없는 것일까? 권력분립과 국민주권에 대한 근본적 부정으로 이어질 위험성은 없는 것일까? 그런 관점에서 재검토를 희망한다.

아예 '사법적 면책'까지 해 달라는 주장이 있다. 매일경제 12월 11일자 사설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사법적 책임도 면해주는 관련법 보완도 필요하다고 본다." 모든 공무원은 자신의 소신있는 행위에 대해 법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해주자는 것이다. 국가공무원법도 뜯어고치고, 국가배상법도 이번 기회에 뜯어고치자, 모든 공무원들의 행위를 '순수'하기만 하면 법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자는 것이다. 법치행정이라는 행정의 대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주장이 아닐까?

'팔의'와 '관당'의 시대로 회귀하나?

고대 중국에는 봉건 특권층을 위한 '팔의(八議)'제도가 있었다. 왕족과 귀족 등 여덟 부류의 특권층이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황제가 사면을 해주는 제도다. 이와 더불어 '관당(官當)' 제도가 있었다. 관리가 자신의 관직을 내놓으면 처벌하지 않는 제도였다. 특권층을 위한 면책의 근거였다. 관료가 특권층화할 위험성에 대해서는 충분한 검토가 있었을까? 다시 강조하건대 초헌법적, 초법률적 면책의 위험성은 없다는 것일까?

때로는 무리한 감사가 공무원의 보신주의에 한몫을 하는 측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법치주의, 나아가 법치행정이라는 기본틀 자체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미 법은 공무원이 지켜야 할 기준과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행정법규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사안에 따라서 적절하게 자유재량을 부여해 두었다. 이런 가장 기본적인 행정법의 원리에 따라서 행정은 이루어지는 것이고, 그 기준으로 위법 여부와 책임 여부를 따져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무리하게 '적극면책'을 이야기한다. 좀 더 명확한 기준이 제시되었으면 좋겠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행정에 대한 시민통제의 가치를 보장해야 한다. 행정에 대한 시민의 접근성을 강화하고, 시민의 정보접근을 보장해야 한다. 정보 공개를 좀 더 폭넓게 인정해야 한다. 또한 내내 미루고 있는 정책실명제를 통해 권한과 책임을 분명히 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제도가 갖는 위험성에 대한 염려는 쉬이 가시지 않는다.

"우리 헌법질서 내에서 공무원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존재일 수도 없고 또 특정한 개인 또는 집단 내지 정당에게만 충성하는 사복(私僕)도 아니고 주권자인 전체국민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하고 활동하는 공복(公僕)으로서 그 행위에 대해서도 주권자인 국민에게 책임을 진다.(허영, 한국헌법론, p. 760)"

"직업공무원제도는 모든 공무원으로 하여금 어떤 특정 정당이나 특정 상급자를 위하여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법에 따라 그 소임을 다할 수 있게 함으로써 공무원 개인의 권리나 이익을 보호함에 그치지 아니하고 나아가 국가기능의 측면에서 정치적 안정의 유지에 기여하도록 하는 제도이다.(헌재결 1997.4.24. 95헌바48)"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