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올해로 조선소 경력 10년 차인 '김기한(가명)' 씨를 만나기로 약속했다. 토요일에 출근하는 조선소 노동자들은 5시에 퇴근하는데, 갑자기 그가 출근을 하지 않았다고 연락을 해왔다. 급하게 시간을 당겨서 그를 만났다. 40대 중반인 김 씨는 거제의 한 대형조선소에서 120명 규모의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 오늘 출근은 왜 안 하셨어요?
요새는 일이 예전보다 줄어서 토요일에 쉬기도 해요. 오히려 회사가 쉬라고 하기도 하는데요 뭐. 저는 오늘 허리가 아파서 출근 안 했어요. 무거운 걸 들고 옮기고, 같은 자세로 일하니까요. 처음 조선소에서 일 시작하자마자 10킬로그램(kg)이 빠졌어요. 육체적으로 힘든 거, 장난 아니에요.
- 어떤 작업을 하시는데요?
플라스틱 프라모델 만드는 거처럼 이미 잘린 부재들을 가지고 와서 도면에 맞게 표시된 위치에 놓고, 그걸 붙이는 작업이요. 조선소에서는 '취부사'라고 하죠. 그게 무거운 자재와 부재를 많이 쓰는 일이거든요. 철제 부재의 무게는 사람이 들 수 없는 중량물이라서 크레인으로 대충 갖다놓고, 사람이 들고 쓰는 중량장비를 이용해서 표시된 위치에 정확히 갖다놔야 해요. 그게 3밀리미터(mm) 정도의 오차만 허용하기 때문에 정확해야 해요.
취부사들이 쓰는 기본 장비가 용접기·용접와이어·산소호스·절단기·레바블록·에어호스·에어그라인더·용접면·망치 같은 게 있는데요. 무게가 엄청나요. 산소호스 하나만 해도 25킬로그램(kg)이고 레바블록 이런 것도 17kg 정도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 사고가 자주 나고 몸이 성한 날이 없어요. 그러니까 신문에도 만날 '조선소 노동자 사고 나서 죽었다'는 기사가 나오죠.
- 그러게요, 조선소에서는 사람들이 매일 죽어나가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골절이나 화상은 일상이라서 죽지 않으면, 그냥 대충 넘어가고 그래요. 저도 손가락 골절을 몇 번 당했는데요. 망치 한 번만 잘못 휘둘러도 손가락뼈 부러지는 건 예삿일도 아니죠. 용접기를 쓰니까 화상도 자주 당하고요. 화상 당했을 때 현장에서 빨간약 바르면 된다고 선임들이 그랬거든요.
진짜로 빨간약 바르고 나면 잘 낫긴 해요. 산재라는 거 알지만, 회사가 싫어하니까 신청할 수도 없고. 한다고 해도 사고 나서 다치는 거 아니면, 우리가 그걸 어떻게 증명합니까. 게다가 작업 현장이 워낙 시끄러워서요. 망치 소리·그라인더 소리·기계장비 소리 때문에 저도 왼쪽 귀에서 이명(耳鳴)이 발생한 지 오래됐습니다. 하루에 12시간 회사에서 소음을 듣는데 귀마개로 만으로는 못 버티죠.
그래도 겨울엔 그나마 견딜만한데, 여름엔 블록 안 온도가 50도가 넘어가요. 그런 작업 공간에서 일하니, 열사병 환자들이 속출하죠. 통근버스 타잖아요? 땀 냄새가 진동해요. 노동자는 피땀 흘려 일했는데, 경영진의 잘못된 경영판단으로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한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에요.
- 요즘 조선소 위기라고 하잖아요. 물량이 없다고 하던데?
'도크장이 비었다'고 하잖아요. 이전보다 일이 없는 건 맞는데요. 그게 우리만 그런 건 아니잖아요. 다른 나라도 그런 거고, 이것만 버티면 다시 좋아질 거잖아요. 사실 '삼성은 수주를 했는데 발표를 안 하고 있다'는 얘기도 돌거든요. 수주 계약했다고 다 발표하라는 법 없잖아요.
삼성은 상황이 괜찮고 버틸 만한데, 전체적 구조조정 상황이니까 지금 발표하나 나중에 발표하나 마찬가지니까. '위기'라는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기들 유리한 방법으로 가려고 한다는 얘기도 많아요. 그런데 물량이 없어서 문제라면서, 왜 국가나 경영자들은 책임을 안 지고 노동자만 책임져요?
- 조선소가 위기라는 이유로 바뀐 게 많나요?
임금이 깎였어요, 가장 먼저. 정말 열 받는 게, 최저시급이 올라가니까 그거 염두에 두고 회사가 상여금을 쪼개서 기본급으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실제 제가 받는 금액은 낮아졌어요. 예전에는 시급이 7300원이면, 능률수당 1500원 더해서 최대 시급이 8800원이었거든요. 지금은 기본시급하고 능률수당하고 보너스까지 합해서 9000원이 최대 시급이에요. 그냥 보면 시급이 오른 거 같지만, 실제로는 시급에 별도로 주던 보너스까지 합쳐서 계산하니까 보너스는 없어진 거죠.
일거리가 줄어서 원래 일하던 시간만큼 일을 못하니까, 월급이 또 줄었죠. 예전엔 평균 350시간은 너끈히 일했거든요. 지금은 260시간 정도밖에 못 해요. 우리가 일주일에 배 한 척은 만든다고 하거든요. 그러면 1년에 52주니까 요즘은 평균 50척은 만들어요. 그런데 예전에 잘 나갈 때는 1년에 70척도 만들었어요. 그만큼 일을 못하니까 월급이 줄어들고 살기가 퍽퍽하죠.
지금은 시간은 남고 돈은 없고, 의도하지 않은 '저녁이 있는 삶'이에요. 그런데 그 삶을 못 누리죠.
- 일하는 시간이 줄어서 몸은 좀 덜 힘드시겠어요.
무슨 소리를…. 처음에는 10명이 일했는데 물량이 줄어드니까 일하는 시간도 줄어서 그런 것 같았죠. 그런데 물량은 어느 정도 이상 안 줄어들더라고요. 대신 사람은 계속 내보내고 있으니까 노동 강도가 세졌어요. 우리도 '2인 1조'로 나가거든요. 그래서 작업에 따라 1개 조에서 4개 조까지 투입돼요. 규정에는 '2인 1조'로 일하라고 되어 있는데, 업체에선 그렇게 안 시켜요. 요새 저도 혼자 나가요.
몇 달 전인가, 그것 때문에 사고가 났거든요. 용접하고 전기그라인더 치핑하다가 허벅지 동맥을 베었는데, 빨리 발견돼 병원에 가면 사실 죽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2인 1조'가 아니라 혼자 작업하니까, 보는 사람이 없으니까, 과다출혈로 죽었어요. 병원 후송이 늦었던 거죠. 들리는 얘기로는 본인이 겨우 동료에게 전화했다고도 하고, 119에 본인이 직접 전화했다고도 하고 그런데, 어쨌든 그래요.
밀폐구역에서 작업할 때도 그렇거든요. 밖에서 감시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돼요. 우리가 작업할 때는 밀폐구역 공기가 희박한지 어쩐지 잘 몰라요. 그런데 사람을 줄인다고 감시자를 없애버리니까 밀폐 구역에서 일하다가 죽죠. 저는요, 아는 사람이 조선소 와서 일하겠다고 하면 말릴 거에요.
- 조선소는 하청노동자가 70%라고 하잖아요? 다단계 하청이라고 하기도 하고요.
네, 맞아요. 제가 지금 업체 이전에는 사외업체에서 일했거든요. 사외업체는 배의 한 부분을 원청에서 맡기면, 그걸 블록 작업을 해서 납품하는 거예요. 사내업체랑 다를 건 없어요. 공장이 따로 있다는 것뿐이죠.
그 업체는 직원이 200명이었는데, 4팀 정도로 나눠놨어요. 물량 1팀은 30명, 물량 2팀은 50명, 물량 3팀은 50명 뭐 이렇게 나누고, 나머지는 업체직원이었어요. 그러니까 전체 200명인데 그게 다 업체 직원은 아니고, 그 안에서 업체 정직원과 물량팀이 나뉘어 있고 일은 같이하는 거죠.
사내협력업체도 마찬가지예요. 원청 직원이 있으면, 우리 같은 하청업체 직원도 있고, 우리랑 같이 일하는 물량팀도 있고 그래요. 이 물량팀이라는 걸 이용해서 업체사장이 돈을 벌어먹더라고요. 업체 직원들은 4대 보험은 해주는데, 물량팀은 그것도 없어요. 그런데 또 물량팀에게 주는 기성금에서 무조건 5%를 까요. 명목은 일용직 세금하고 고용보험 두 가지를 낸다는 건데, 착복하는 거죠. 중간착취를 다양하게 하는 구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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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월 29일 시민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거제로 모이고, 하청노동자들과 함께 대행진을 한다는데 현장에서는 알고 있나요?
알기는 알겠죠. 현수막도 많이 붙어 있고, 전단도 나눠주고, 뉴스에도 나오니까요. 그런데 사람들이 얘기를 안 해요. 두려운 거죠. 회사 얘기를 잘 안 하려고 하고, 입밖에 안 내요. 개인적인 생각도 가능한 얘기를 안 해요. 잘못하면 다른 업체들처럼 날아 갈까 봐 무서운 거죠. '나는 아닐 거야'라는 희망을 반복적으로 가지고 있어요. 전염병이 도는데, '내 가족은 안 걸릴 거라'는 터무니없는 기대인 거죠. 그러나 의식적으로 알고 있어요. '나만 피해 갈 수 있는 건 없다'는 걸요.
저는 제가 바뀐 것처럼 이번 '조선하청노동자대행진'을 통해 사람들이 바뀔 거라고 봐요. 의미 있어요. 저도 예전에는 이런 거에 관심이 없었거든요. 근데 제가 근로계약서라는 걸 처음 쓰고 그 내용을 잘 몰라서 임금도 깎이고 계약해지 당하고 이러면서, 법도 찾아보고, 우리한테 어떤 권리가 있는지도 찾아보고, 그랬어요. 그러면서 저도 바뀌고, 생각이 바뀌면서 많은 게 바뀌었거든요. 10월 29일은 그런 계기가 될 거라고 봐요. 이겨본 기억, 우리가 모여서 힘이 된 기억이 있으면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조선하청노동자대행진' 이후에 노조가 만들어지면 어떤 걸 하고 싶으세요?
가장 먼저는 회사가 시종시각을 정확하게 지키게 하고 싶어요. 자기들이 정한 작업시각인데, 안 지켜요. 오전 8시부터 일 시작인데, 7시 30분까지 나오라고 해요. 체조하고 반끼리 모여서 조회하고, 10분~20분 동안 현장에서 작업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8시부터 망치 두드리고 용접을 하던지 시작해라 이거죠. 그런데 저도 그랬고, 대부분 사람들이 그게 규칙인 줄 알아요. 8시 땡 하면, 조회하고 체조하고 이래야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도 있고. 알면서도 '회사가 하라는데 따져봐야 뭐 할 거야?' 이런 분도 있고. 80%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봐야죠. 그런데 근로기준법에 쓰여 있던데요? '관리자 감독하에 있는 시간은 근무시간으로 친다'고.
그리고 산재사고 처리나 임금체불은 원청이 책임지게 하고 싶어요. 자기 회사 안에서 발생한 건 원청이 책임져야 하잖아요. 사실 사내협력업체는 형식적으로는 협력업체가 노동자들을 고용한 거지만, 실제 작업은 원청업체가 하잖아요. 식당에 '현장개선 제안하라'고 붙여놓고 경쟁하는 그래프 그려 놓지 말고, 이미 뻔히 알고 있는 것부터 개선하면 좋겠어요.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침묵했다는 시 있잖아요. 연대한다고 금방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연대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내 문제가 되니까요. 조선업이 아닌 다른 분야의 분들이 본다고 해도 마찬가지예요. 조선업 위기가 해결된다고 해도 조선업에 한정된 것일 뿐이잖아요.
그리고 내 삶과 연계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단체가 활동할 수 있도록 그런 곳에 기부했으면 좋겠어요. 심장병 어린이 돕기는 필요한데 그런 일시적인 거 말고, 필요한 약을 싸게 공급할 것을 요구하는 단체를 지원하거나 이렇게 좀 더 근본적인 활동을 하는 단체를 도왔으면 좋겠어요. 저도 이제 그러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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