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전 세상을 놀라게 했던 지존파. 그들은 아무런 원한이 없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고, 시신을 구워 먹었다.
박근혜 이사장 비리와 지존파 탄생
악마가 탄생한 계기는 사립대 입시 부정 사건이었다.
지존파 보스 김기환은 머리가 좋았다. 학창 시절 우등상을 놓치지 않았었다. 우등생 김기환이 학교와 멀어진 건, 미술 준비물 때문이었다. 교사는 준비물을 못 챙겨왔다는 이유로 그를 때리고 야단쳤다. 하지만 그가 미술 준비물을 훔쳐서 마련해 오자, 야단치기를 멈췄다.
그가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와 형이 쓰러졌다. 김기환은 학교를 떠나, 공장과 공사판을 전전했다. 번 돈 가운데 대부분은 어머니 치료비로 썼다. 그 와중에도 검정고시 준비를 했다. 세상에 나가 보니 알았다. 가방 끈 짧으면 차별 당한다.
그가 스무 살 성인이 됐을 때, 88올림픽이 열렸다. 그리고 그 해, 영남대학교 입시 부정 사건이 있었다. 당시 영남대학교 이사장이 박근혜 대통령이다. 당시에도 최태민 목사 가족이 전횡을 부렸다고 한다. 최 목사의 의붓아들 조순제 씨의 아들도 부정 입학생이었다. 박 대통령은 이 사건으로 영남대학교 이사장에서 물러난다.
김기환은 공부를 잘 했지만, 중학교를 중퇴해야 했다. 하지만 그보다 성적이 나빴던 또래 청년들이 돈과 연줄로 대학에 갔다. 김기환은 그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리고 또 정권이 바뀐다. 이번엔 김영삼 정부다. 문민정부 개혁은 독재 권력과 유착해 특혜를 누리던 사립학교 재단의 비리를 터는 것으로 시작했다. 김문기 이사장이 전횡을 부리던 상지대학교 비리가 대표적이다.
김영삼 정부 출범 이 년째였던 1994년, 김기환이 체포됐다. 당시 그는 사립대 입시 부정 사건을 보고 세상을 증오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들은 왜 이대생들이 분노했는지를 모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거대한 차별 구조 위에 서 있다. 그래도 세상이 안 무너지는 건, 차별을 낳기까지의 과정은 공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학력, 학벌 등에 대한 차별이 유지돼 온 건, 입시는 공정하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판검사, 고위 관료가 누리는 기득권을 인정한 건, 고시 제도가 공정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정규직의 자기 정당화 역시 공채가 공정하다는 믿음과 맞물려 있다.
김기환은 그가 겪은 차별이 강력했기에, 차별을 낳은 과정이 불공정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악마가 됐다.
사회학자 오찬호는 20대 청년과 나눈 이야기를 기초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는 책을 냈다. 차별은 그만큼 젊은 세대의 내면이 깊이 뿌리박혔다.
그리고 지금, 차별로 이르는 과정이 불공정했다는 게 드러났다. 최태민 목사의 손녀, 즉 최순실 씨와 정윤회 씨의 딸 정유라 씨가 이화여자대학교에 부정 입학한 정황이 있다.
차별을 겪지 않은, 평생 특권만 누렸던 이들은, 정치에 관심 없다는 '요즘 대학생들'이 왜 이 사건에 분노하는지 알지 못할 게다.
입시 부정 사건으로 1988년 영남대학교 이사장 직에서 물러났던 박근혜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 일게다. 박 대통령 측은 영남대학교를 빼앗겼다고 본다. 당시 영남대학교를 포함한 비리 사학에서 벌어진 입시 부정 사건이 청년 김기환을 악마로 만들었다는 건, 그들의 관심 밖이다. 입시에 합격했지만, 등록금 마련 때문에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 하는 청년들의 사연 역시 그들의 관심 밖이다.
박근혜 대통령, '어른의 역할'은 없다
박근혜 이사장이 있던 대학교에서 벌어진 입시 비리, 박근혜 대통령이 있던 나라에서 벌어진 온갖 불공정 특혜.
가난한 청년들이 요즘 뉴스를 보며 느낄 절망과 분노가 두렵다. 그게 또 다른 지존파 탄생으로 이어지지 않게끔 하는 건, 어른들의 몫이다. 미술 준비물을 챙기지 못해서 야단 맞던 아이, 김기환 옆에 좋은 교사가, 좋은 어른이 있었다면 지존파는 없었을 게다.
그리고 박 대통령은 여전히 독재자의 딸, '큰 영애' 시절에 머물러 있다. 최순실 씨의 그림자가 그 증거다. 20대 시절의 기억에 갇힌 그에게서 '어른의 역할'을 기대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다른 좋은 어른들의 역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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