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현지 시각) 미국 국무부 존 커비 대변인은 "이번 주말 러셀 차관보가 필리핀 정부 인사들과 만나 대화를 나눌 것"이라고 밝혔다. 커비 대변인은 "두테르테 대통령이 '미국으로부터 분리'하겠다고 말했는데 이것이 정확히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올지 (필리핀으로부터) 설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두테르테 대통령의 이같은 입장 표명이 당황스럽다고 생각한 것은 미국뿐만이 아닐 것"이라며 "역내 미국의 파트너 국가들도 어떻게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커비 대변인은 지난 70년 동안 이어진 필리핀과 동맹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면서 "양국의 상호방위협정 준수는 바위처럼 단단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중국을 방문한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 19일(현지 시각) 필리핀 교민들과 함께 한 간담회 자리에서 "다시는 미국의 간섭을 받는다거나 미국과 함께 군사훈련을 하지 않겠다"며 "이제 미국과 작별을 고할 시간"이라고 말해 파장을 일으켰다.
이어 다음날인 20일 두테르테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 정상회담을 통해 전통적 우방인 미국의 품을 벗어나 중국 쪽으로 확실히 돌아선 모습을 보였다.
중국 관영 매체 <신화통신>은 두테르테 대통령이 양국 정상회담에서 "겨울이 가까워지는 시기에 베이징에 왔지만 우리(양국) 관계는 봄날"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시 주석은 "양국은 바다를 사이에 둔 이웃 국가로 양 국민은 형제"라면서 "일대일로(一帶一路)의 틀 내에서 필리핀과 협력을 강화할 준비가 돼 있고, 중국 기업들의 필리핀 투자를 장려할 것"이라고 답했다.
통신은 양국이 필리핀의 고속철 사업을 비롯한 각종 인프라 시설, 에너지, 투자, 미디어, 검역 등 13건의 협정문에 서명했다고 전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400여 명의 기업인과 함께 중국을 방문하면서 중국의 투자 유치에 공을 들이기도 했다.
양국은 최대 난제인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은 잠시 뒤로 미뤄두기로 합의했다. 시 주석은 "한 번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미뤄두고 공동 발전을 추진함으로써 양국의 실질적인 이익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갈등을 적절히 관리하는 것이 양국 관계 발전의 기초"라고 밝혔다.
'경제'로 세력 넓히는 중국
중국과 필리핀이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까지 덮어두고 급속도로 관계를 진전시키면서 남중국해뿐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외교 지형에도 적잖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버락 오바마 정부의 이른바 '아시아로의 회귀' 전략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중국과 필리핀이 '영유권 분쟁'이라는 커다란 장애물을 뛰어 넘어 '경제적 이득'을 택한 만큼, 현재 양국의 밀월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성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 중국이 필리핀에 상당한 규모의 차관 및 투자를 약속한 것과 마찬가지로,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중국의 경제권에 편입시키는 공격적인 외교를 벌일 것으로 보여, 아시아에서 미국의 위상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 견제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우선 미국은 이대로 필리핀을 놓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일단 필리핀의 진의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필리핀에 대한 대안으로 베트남에 공을 들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23일(현지 시각)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뒤 베트남의 살상무기 수출금지 조치를 전면 해제하기로 결정하는 등 '베트남 끌어 안기'에 나서기도 했다.
미국은 지난 베트남과 정상회담 이후 중국 견제를 위해 자국 군함의 깜라인만 이용을 적극적으로 타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중국 역시 깜라인만에 3척의 함대를 보낼 예정이다. 중국 군함이 이곳에 기항하는 것은 처음으로 베트남 군과 공동 행사도 예정돼있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이 남중국해 주변의 동남아시아 국가들과 손을 잡으며 자국의 세력을 넓히는데 총력을 기울이면서 향후 이 지역에서의 양국 간 충돌 가능성 역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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