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김환구 사장은 사측이 주도적으로 구성 및 운용해왔다는 지적이 제기돼 온 사업장 내 비선 조직이 실제로 존재했음을 13일 인정했다. 다만 김 사장은 알려진 것과 달리 현대중공업이 노동조합 선거 개입 등 불법적인 노무 관리를 위해 이 조직들을 "만든 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이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 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회사 자금과 인력이 지원된 비선 조직이 구성되어 노조 선거에 불법적으로 대응한 것을 알고 있느냐'는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 질문에 "2004~2008년 당시 (비선조직인) PR이나 OL이 존재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PR·OL·YL은 현대중공업 운영과 과장을 지냈던 이재림 씨가 지난 2004년부터 2011년까지 약 7년에 걸쳐 쓴 업무 일지가 올해 초 <프레시안> 등을 통해 공개되며 알려진 대규모의 비선 조직으로, 일종의 '정보원'들이다. (☞ 관련 기사 : [단독] "현대중공업, 스파이 심어 노조 감시했다", "스파이 직원 보내 노회찬 강연도 염탐했다")
송 의원 설명과 이 씨의 업무 일지 등을 종합하면, PR은 현대중공업 아래 각 사업본부 소속 부서별 운영 과장 또는 노무 과장 200여 명을 지칭한다. OL은 부서 규모에 따라 10~30명 정도로 선발된 요원이고, YL은 노조 활동가 중에 선발된 사측 '정보원'인 것으로 보인다. 송 의원은 OL과 YL은 약 2000~3000명 규모로 추산했으며 YL은 그룹 노사 협력실이 직할 관리한 것으로 알려진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김 사장은 "OL은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의 약칭"이라고 이날 국감장에서 설명했다. YL은 젊은 리더(Young Leader)의 약칭으로 보인다.
송 의원은 이들이 "노조 활동 동향을 조사해 회사에 정기적으로 보고하고, 정기적으로 회의를 개최하며 위원장 선거 대비 계획을 수립했으며, 조합원 성향 분석 보고서를 만들었다"고 이날 지적했다.
실제로 이 전 업무과장의 일지를 보면 현대중공업은 부서별로 소속 노동자들을 G(녹색·green)-Y(노란색·yellow)-R(적색·red)로 구분해 성향을 분석하고, 일일 단위로 보고서를 제출하는 활동을 해 온 것으로 보인다. 송 의원은 "이들 OL 요원은 회사로부터 계속해서 검증을 받아 왔고, 현대중은 심지어 사내 하청업체에도 행동 요원을 투입해 동향을 분석해온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송 의원은 "이런 일은 사장 또는 부사장을 탑(TOP)으로 하는 전체 PR 회의에서 주간 단위로 관리한 게 확인된다"면서 이런 관리를 통해 "회사는 대의원 출마 예정자를 선정하고 관리했으며, 특정 후보를 찍을 것을 (직원들을 대상으로) 확인했고, 이른바 줄 투표를 기획하기도 했다"고 했다.
'줄 투표'란 투표장에 관리자인 직·반장이 직원들을 데리고 가 투표를 시킨 후 기표를 확인하는 일로 알려져 있다.
송 의원은 이 같은 불법적인 노조 선거 개입 등을 위한 '자금' 또한 현대중공업이 조직적으로 지원 및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는 "2007년 10월 대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조합원 1인당 1만5000원 지원금이 책정돼 각 부서로 내려갔고 그 외에 사업본부 차원에서도 자체적으로 (자금이) 마련됐다"고 했다.
그는 "그 밖에도 각 사업본부가 협력업체로부터 150~400만 원 정도씩을 걷어 비선 조직 활동비로 사용해온 것이 확인되기도 했다"면서 "2004년에서 2008년 선거에서 (비선 조직에) 지급된 선거 자금이 최소 4300만 원에서 최대 22억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사장은 "조직은 존재했으나 노조 대의원이나 위원장 선거에 개입하기 위해 만든 조직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얘기한 비용들도 사사로이 내려간 것이 아니고 아마 현대중이 봄 가을에 하는 친목 단합대회 비용이 지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송 의원은 "현대중에서는 내년에 노조 대의원 선거와 임원 선거가 예정돼 있고, 이런 비선 조직은 최근까지도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주장하며 "노동조합의 공정한 선거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고용노동부나 관계기관이 부당노동행위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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