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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울기 위해 바다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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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울기 위해 바다로 간다

[문학의 현장] 세월호 관련 릴레이 단식에 참여하고

"요즘 참 우울합니다. 말은 해서 뭐하며, 글은 써서 뭐합니까? 말과 글이 모자라서 세상이 이렇습니까? 요즘은 밭에 가서 그냥 입을 다물고 힘든 일만 골라 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많은 시인작가들이 탄식해왔지만 뭐가 달라졌습니까? 세월호는 제주로 오는 배였습니다. 나를 찾아 우리 집에 오는 손님이 변을 당한 것이지요. 남들이 겪는 슬픔과는 크게 다르지요, 그게 제주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일 겁니다."

2년 전 세월 호 참사 직후 필자의 시집 발간 관련하여 제주도 내 한 잡지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그리고 올 8월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에서 "한 숟갈의 밥과 같은 힘을 보태주세요. 함께 하는 것만이 진실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라는 릴레이 단식 참여를 바라는 내용의 이메일이 왔다. 대통령이라는 성역에 숨겨진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자 정부에서 세월호 특조위 활동을 강제 종료시켜버린 것에 대한 최소한의 몸짓이다.

8월 29일 오전 10시 경 분향소가 차려진 광화문은 비교적 한산했다. 분향소에는 베트남 여행객 몇이서 향을 피우고 손 모아 예를 올리고 있었다. 중국, 태국, 베트남 여행객들이 줄을 잇고 분향하고 있었다. 304영정 앞에 나도 향을 피우고 고개를 숙였다.

시민들이 바쁜 걸음으로 스쳐 지나간다. 건망증 심한 우리 국민들에게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이미 세월호는 관심 밖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는 생각이 사람을 더 쓸쓸하게 했다. 아 저 모습은 전혀 무관심이 아니다. 저마다 먹고 살기에 급급한 나머지, 나라의 큰 아픔에 대해서 오래 신경 쓸 겨를이 없어서 그렇다. 필자 역시 이에 크게 다르지 않다.

땡볕에 마르는 유가족 대표 십여 분, 로만칼라의 신부님 두 분, 가장 진보적 정당이라는 정의당 공동대표를 비롯한 당원 대여섯, 대학생 서넛, 그리고 우리 한국작가회의 회원 예닐곱 명이 고작이었다. 이제 갓 당대표로 선출된 더민주 추미애 당대표는 어제 이곳에 달려와 노란 옷 입은 유족대표와 포옹하는 사진 한 컷 찍고 갔다는 게 고작이다.

ⓒ프레시안(최형락)

그런데 여기, 단식 이틀째인 '사생결단' 단식 대학생 네 명의 자리에 피켓 두 점이 눈 속에 와 박힌다. "박근혜 대통령과 무엇이 다른지 야당은 스스로 증명하라!"와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 안 할 거면 여소야대가 무슨 소용이냐?"는 내용이다. 백 번 천 번 옳은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이 나라에는 언론과 야당의 존재감이 사라지고 말았다. 지난 10년도 안 된 기간 동안 상상도 못할 사건들과 안하무인격인 통치자의 만행이 있었음에도 진실이 밝혀진 게 하나도 없잖은가. 그저 자잘한 지엽적인 문제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척하다가 유야무야 정부 여당에 끌려가고 마는 게 요즘 야당의 뒷모습이다.

5.16 이후 그 험악한 총칼 앞에서도 당당히 맞서 피 흘리며, 민주화를 이루어낸 당시의 그러한 기질은 다 어딜 갔단 말인가? 정의와 진실이라는 낱말을 차마 꺼내기조차 민망한 이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하여, 세월호 참사 앞에 몸부림치는 그 ‘진실’이라는 낱말은 여당보다 차라리 야당을 향해 통곡하고 있다. 야당이라는 술 부대에 물을 타도 너무 많이 탄 것 같다.

오늘 여기 노란 리본을 달고 백 명도 안 된 사람의 릴레이식 단식이 정부나 여당에 요구하는 것은 오직 하나 바로 '진실'이다. "뭐, 진실?!" 차라리 고양이 앞에 생선을 달라하자. 304명의 목숨들을 한꺼번에 수장시켜 놓고서도 꿈쩍 않는 통치자, 정부 여당을 제대로 알기나 알고 하는 소린가?

국회엔 야당국회의원이 넘쳐나고, 교육엔 석박사가 넘쳐나고, 언론에는 말과 글이 넘쳐나지만 어쩌랴, 그 방향이 부정과 거짓의 들러리밖엔 뭐란 말이냐. 이것이 이 나이든 시골사람의 세상을 보는 눈이다.

고작 한나절의 광화문 릴레이 단식을 하고 돌아오는 나의 뒷덜미가 많이 불편했다. 이제 말장난 같은 시를 그만 쓰고 싶다. 시를 써도 읽을 사람도 없다. 차라리 엉엉 소리 내어 울지 않으면 병이 나 죽을 것 같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씩은 섬으로 간다. 그게 이 막돼버린 세상에 살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다.

그리고 9월의 막바지인 오늘밤, 진도 해역 가까운 낙도 바위에 쭈그려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는다. 그때 단원고의 이백오십 꽃송이, 열한 분의 단원고 선생님, 마흔셋 선원과 일반인의 원혼이 어느새 하늘의 별이 되어 울먹이는 나의 어깨에 와 내린다. 거기에 아직도 수습되지 못한 아홉 분 원혼이 수평선 불빛으로 아롱아롱 글썽여 온다. 흐느낌이 시작되면서 다도해의 순하디 순한 파도가 조용히 다가와 함께 울먹인다.

해치 문에 갇힌 세월호 캄캄한 객실에 눈뜬 채로 죽어간 어린 학생들, 아직 돌아오지 못해 그곳에서 부유하는 아홉 원혼들에겐 차라리 그냥 엉엉 소리 내어 우는 것이 좋으리라.

그리고 어쩌랴, 물대포 맞고 300여 일 의식불명이던 백남기 선생의 사망 소식을 듣는다. 사망원인의 진실을 밝힌다는 핑계로 유가족이나 시민단체가 그토록 반대하는 부검을 실시한단다. 그 부검의 이유가 무엇일까, 진실을 밝히려는 것일까, 진실을 감추려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을 누구에게 던져야 한단 말인가? 그래, 정부 여당 당신들, 그리고 야당 정치인들..., 끝내 잘 먹고 잘 살아라! 나 여기 만세삼창 할 터이니, 당신들도 따라 불러봐라.

"거짓말 공화국 만세!, 만세!,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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