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칼럼은 다음 3개의 질문에 답하려 한다.
1. 대선 TV 토론의 진지한 목적은 무엇인가?
2. 왜 2차 TV 토론을 역대 최악이라고 하나?
3. 누가 2차 TV 토론의 승자인가? 그리고 패자는 누구인가?
첫 번째 질문을 짚어보자. 대선 후보의 TV 토론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답은 간단하다. 대선 TV 토론은 대통령 선거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1987년에 중립을 선언하고 설립한 민간 비영리 단체 '대선 토론 위원회(The commission on Presidential Debates)'가 전국 유권자에게 본선에 나온 "후보를 더 잘 알고 투표하도록 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이다. 다시 말하면 유권자로 하여금 어느 후보가 미국의 장래를 짊어질 더 훌륭한 정치인인가를 판단하여 투표하도록 돕기 위한 방법의 하나다.
이 경우 판단의 최고 기준은 두 개이다. 하나는 후보의 '정책 공약'이고 또 하나는 그 공약을 실천할 수 있는 '인물'인가 여부이다. 따라서 TV 토론은 각 정당의 후보들이 천문학적 선거 자금을 들여 1년 이상의 지역 유세와 전당 대회 그리고 TV 선전 등을 통해 자신의 정책 공약과 대통령 자질을 유권자에게 알린 후 선거를 코앞에 앞두고 열린다. 이 자리는 후보가 다시 한 번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마지막 기회가 되는 중대한 행사이다. 그래서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전투이다.
특히 후보의 정직성과 호감도가 역대 최저인 2016년 대선에서는 대선 토론의 중요성이 거의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불행히도 대선 토론의 중요성이 현실에서는 깡그리 뭉개지는 경우가 있다. 바로 이번 2차 토론이 그렇다. 심지어 CNN과 폭스뉴스 등이 벌써부터 제3차 토론을 홍보하는 상황에서, 완전히 삼류 코미디 흥행물로 전락한 대선 토론 '무용론'까지 나온다. 특히 친 트럼프 성향인 폭스뉴스는 10월 19일에 있을 제3차 토론의 사회자가 폭스뉴스의 앵커인 크리스 월러스라고 며칠 전부터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재벌 미디어의 민낯이다.
그러면 두 번째 질문을 짚어보자. 왜 2차 TV 토론을 역대 최악이라고 하나?
미 언론은 지난 9일에 있었던 2차 토론을 '역대 최악'이라고 혹평한다. 왜냐하면, 위에 언급한 대선 TV 토론의 목적을 전혀 충족하지 못하는 저질의 '말 전쟁'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시궁창 싸움'이란 표현까지 등장한다. 구체적으로 토론 다음날 아침 힐러리 후보를 지지하는 재벌 미디어 CNN과 <워싱턴포스트(WP)>는 각각 "더러운 싸움" 그리고 "어둡고 쓴 대결"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반대로 친트럼프 성향의 폭스뉴스는 "트럼프의 귀환 : 2차 토론에서 자신의 후보직을 구하다"라는 기사에서 후보 낙마의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여성 폄하, 이메일 스캔들, 조세 회피와 부정 재산 축적 의혹 등의 무차별한 폭로로 미국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온 두 후보 간의 개인적 증오와 불신으로 색칠된 최악의 토론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누가 대통령감이 아닌가를 분명히 가려낸 역설적인 성과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대선의 투표율이 매우 낮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셋째, 2차 TV 토론의 승자와 패자는 누구인가?
불행히도 이 질문이 많은 유권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편파적인 미디어의 상업적 흥행에 도움을 주고 있다. 따라서 유권자들이 조심할 것은 토론의 승패를 가리는 방법이 다양하며, 각각의 신뢰성 격차가 극심하고, 많은 경우 치졸한 폭로성과 편파성에 오염되어 토론 직후 나오는 조사 수치의 해석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2차 토론 직후 나온 많은 조사에서 단연코 힐러리가 승자로 지목됐다. 우선 3가지 조사 결과를 보자. 1) 토론 후 1시간에서 10시간 이내에 나온 정치 전문가와 언론인(Pundits)의 평가는 약 70%대 30%로 힐러리가 이겼다고 본다. 2) 토론 중이거나 직후에 나온 온라인 스냅 결과는 조사 매체가 지지하는 후보가 이겼다고 나온다. 폭스뉴스의 경우 트럼프가, MSNBC의 경우 힐러리가 압도적으로 이겼다고 나왔다.
3) '아직 후보를 정하지 않은 무당층'의 긴급 조사도 어느 방송이 시행했느냐에 따라 극과 극의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CNN의 조사에서는 이들 무당층의 57%가 힐러리를 승자로 보고, 폭스뉴스의 조사에서는 약 70%가 트럼프를 승자로 꼽았다. 유의할 점은 위의 3가지 조사 결과가 오차 범위를 정할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사실이다.
오차 범위가 (+)(-) 2.5% 정도의 과학적인 여론 조사 결과는 토론 후 적어도 4, 5일 후에나 발표된다. 그리고 이 수치만이 앞으로의 후보 지지율에 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과학적으로 2차 토론의 승자를 확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비과학적 지표에 의하면 현 시점에서 힐러리가 2차 토론의 승자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면 질문을 좀 바꾸어보자. 2차 토론에서 힐러리와 트럼프는 각각 무엇을 얻었는가?
트럼프는 조그만 전리품을 거두었다. 미국 언론은 트럼프가 토론 48시간 전에 공개된 저질의 '음담패설' 동영상 여파로 후보 사퇴를 강력히 요구하던 일부 공화당 지도부와 지지자의 마음을 바꿀 정도의 선전을 했다는 평가이다. 반대로 힐러리는 크게 얻은 건 없지만, 맹수처럼 달려드는 트럼프의 저질 공박에 '전문가의 경험'으로 차분히 방어해냈다는 평가이다. 1차 토론과 같은 뚜렷한 우세를 보이지는 못했지만, 트럼프에 비해 '대통령 자질과 인내심'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
또 다른 질문을 해보자. 2차 토론의 결과가 과연 각 후보의 지지율을 상승 또는 하락시킬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미국 언론이 크게 둘로 갈라진다. 일부는 "별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지만, 일부는 토론 자체보다 토론 후 4, 5일 안에 발생하는 예기치 않은 폭로나 사건 등으로 각 후부의 "지지율이 크게 출렁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후자의 경우가 1차 토론 후 힐러리의 지지율이 각종 지표에서 크게 상승하고 트럼프의 지지율이 지속해서 하락한 예이다.
그러면 2차 토론의 패자는 누구인가? 불행히도 미국의 양당 정치 제도와 국민이다. 위에 언급한 비영리 단체인 대선 토론 위원회가 추구하는 대의 정치의 주인인 국민에게 양당 후보의 정치 공약과 인품에 대한 판단과 평가 기회를 제공한다는 목적에 완전히 실패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2016년 대선 2차 토론은 미국 정치 제도의 심각한 취약점을 만천하에 노출했다고 본다. 특히 최근까지 미국의 자랑이던 양당 체제와 대통령 선출 제도로는 국민 다수의 바람인 획기적인 개혁과 변화를 할 수 없으며 기득권 세력의 현상 유지가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엄연한 진리가 재확인되었다.
박영철 전 원광대학교 교수는 벨기에 루뱅 대학교 경제학과에서 국제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경제 분석가(Country Economist and Project Analyst)로 15년(1974~1988년)간 근무했다. 그 이후 원광대학교 교수(경제학부 국제경제학)를 역임했고, 2010년 은퇴 후 미국에 거주하며 개인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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