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9월 초. 청와대가 내 놓은 '생활공감정책'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직접적인 질타를 전하는 이동관 대변인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애써 미소를 지우기 위해 노력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생할공감대책 보고회'를 주도했다 대통령으로부터 지적을 당한 주체가 바로 박형준 홍보기획관이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 MB도 등돌린 '추석용 서민대책')
대국민 홍보의 쌍두마차, 대변인실 vs 홍보기획관실
실제 청와대 2기 참모진의 진용이 구축된 이래 두 사람의 신경전은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변인실은 청와대 브리핑과 직접적인 내·외신 기자접촉, 홍보기획관실은 장기적인 홍보전략 수립과 부처 간 조정으로 구분돼 있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업무의 중복'이 적지 않아 혼선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은 청와대 내부에서도 적지 않다.
국내외 현안에 밀려 단행시기가 늦춰지는 분위기이긴 하지만 청와대 조직개편 논의와 맞물려 '대국민 홍보업무의 단일화'가 제기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까지로는 홍보수석실이 부활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경우 홍보수석은 청와대 대변인을 겸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동관 대변인과 박형준 홍보기획관의 입장에선 청와대 조직개편 이후 살아남느냐, 밀려나느냐의 문제가 닥쳐 온 셈이다. 현재까지 대변인실과 홍보기획관실 관계자들은 이와 관련해 일체 입을 다물고 있다. 거취와 직접적으로 관련될 수밖에 없는 일인 만큼 부담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지금 '총성없는 전쟁중'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전혀 다르다. 청와대 조직개편 논의가 가시권에 들어오면서부터 대변인실과 홍보기획관실 사이에 일종의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본인들은 물론 대변인실과 홍보기획관실 산하 비서관-행정관들 사이의 '기싸움'도 치열하다.
▲ 박형준 홍보기획관과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프레시안 |
누구보다 바빠진 것은 대변인실이다. 이미 출입기자들의 숙원이었던 '정례 브리핑'을 약속한 바 있는 이동관 대변인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오후 2시30분 브리핑'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대변인실이 28일 이 대변인의 '영어 브리핑' 원문을 이례적으로 배포하고 나선 것도 이같은 정황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적지 않다. 그동안 청와대는 각종 국제회의나 정상회담과 관련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록, 협정문, 국내용 라디오 연설문 등은 영어로 번역해 언론에 제공해 왔다.
배포된 영문본에는 전날 청와대에서 열린 이 대통령과 한나라당 지도부와의 오찬 간담회 내용이 전문 그대로 실렸다.
이날 간담회에서 주로 미국발(發) 금융위기와 관련된 정부의 진단과 대책이 화제로 올랐다는 점에서 "한국경제에 대한 외신들의 과도한 '위험신호'가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 조치"라는 설명이 따라 붙었지만, 청와대 조직개편을 앞두고 "우리는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일종의 '시위'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상황이 다급한 것은 박형준 홍보기획관도 마찬가지다. 홍보기획관실은 추석을 맞아 나왔던 '생활공감정책'에 대한 이 대통령의 직접적인 질타 이후 이를 보완한 '국민 아이디어 공모'를 단행해 지난 25일 이를 발표하는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민들이 직접 제안한 7300여 건의 정책건의에는 △서민들을 위해 경차택시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 △운전면허 갱신을 위한 적성검사를 건강진단서로 대체하는 방안 △명절 때 고속도로 톨게이트 '사전예약제'를 도입해 정체를 완화하는 방안 등이 담겼다.
박 기획관 본인이 최근 기자들과의 접촉면을 유독 넓히고 있는 대목도 이 대변인과의 미묘한 '경쟁관계'가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 지난 8월 베이징 올림픽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참모들이 박태환 선수의 수영경기 중계방송을 지켜보다 금메달이 확정되자 환호하고 있다. 이 대통령 오른쪽편에 박형준 홍보기획관과 이동관 대변인의 모습이 보인다. ⓒ청와대 |
"청와대 직원들 반성해야"…MB도 화났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청와대 참모들을 강한 어조로 질타한 일과 관련해 "누가 가장 심하게 혼났다", "누구는 좀 덜하다더라"는 식의 뒷말도 무성하게 일고 있다.
실제 한 핵심참모는 "나는 아니었는데 기사에는 질책을 받았다고 나오더라"면서 불편한 반응을 보였다. 이 대통령이 최근 국내외의 난국을 맞아 "목숨을 걸고 나서라"고 주문하고 있음에도 참모진들의 주파수는 온통 '자리보전'에 맞춰져 있는 형국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지난 26일 수석비서관 회의와 28일 확대비서관 회의 등을 통해 "매일 같은 보고만 되풀이해서 뭐가 달라지겠느냐", "실제로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 직원들이 몸을 던져 일할 자세가 돼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는 등의 작심발언을 쏟아 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 대통령은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언론보도를 업급하면서 이동관 대변인과 박형준 홍보기획관에게도 책임을 묻는 등 대부분의 수석들을 직접 거명하며 질타했고, 회의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박병원 경제수석에게는 "정부의 잇단 대책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반응하지 않는데 뭔가 잘못 파악하고 있거나 노력이 미흡한 게 아니냐", 김성환 외교안보수석을 향해선 "주로 외교쪽에 집중하는 것 같은데 안보 분야도 꼼꼼하게 챙겨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책이 이어졌다.
이동관 대변인은 "대통령의 성격상 화를 내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참석자들은 이를 무겁게 받아 들이는 분위기였다"며 "국가적 위기상황을 맞아 청와대가 통상적인 업무만 해선 안되며, 큰 그림을 갖고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자세로 선제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지적이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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