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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바꾸려 했던 그, 변절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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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바꾸려 했던 그, 변절자인가?

[장현근의 중국 사상 오디세이] 옌푸(嚴復), 지식인은 변절하는가?

연전에 중국 총리 리커창이 푸젠성 푸저우에 있는 옌푸(嚴復)의 옛집에 들렀을 때 구경 온 다섯 살 여자아이에게 옌푸가 누군지 아느냐고 물었다. 꼬마가 "큰 총장님입니다"라고 대답하자 총리는 이렇게 설명했다. "세계로 눈을 돌리신 분이고 순정한 중국의 마음을 지닌 분이셨단다."

이곳은 고건축이 살아있는 세계문화유산 삼방칠항(三坊七巷)이다. 이 '세 동네 일곱 골목'은 중국 근대를 움직인 뛰어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곳인데 총리가 굳이 옌푸의 고가를 방문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 옌푸의 옛집이 있는 삼방칠항의 낭관항(郎官巷). ⓒ장현근

서양 것으로 중국을 바꿀 수 있다?


런던의 그리니치(Greenwich) 왕립 해군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 국비 1기 유학생 옌푸는 푸저우 선정(船政) 학당의 교수가 되었다. 1879년의 일이다. 영국에서 그보다 공부를 못했던 일본인 이토 히로부미가 뱃전까지 나온 천황의 영접을 받으며 총리까지 승승장구한 것에 비하면 정치적으로 큰 출세는 못한 듯하다. 그런 출세가 뭐 대단한 것이겠느냐마는, 설사 그랬다면 중국의 근대를 이끈 그 지성의 힘은 사장되었을지도 모른다.

수많은 번역과 저술을 통해 '서양 사상을 중국에 소개한 제일인자'라는 영예는 못 얻었을 것이며, 그의 영향 아래 이뤄진 근대의 변혁은 다른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중국인들이 헉슬리, 스펜서, 밀, 젱크스, 다윈, 몽테스키외, 루소 등이 누군지에 대해서도 한참 뒤에 알았을 것이며 중국인을 추동시킨 자연도태니 적자생존이니 하는 관념도 뒤늦게 알았을 것이다.

보통 지식인이 그렇듯 옌푸 또한 세상은 급진적인 혁명으로 바뀔 수 없으며 교육을 통해 차츰차츰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을 바꿈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05년 영국에서 그는 열혈 혁명가인 쑨원과 긴 대화를 나눴다. 옌푸가 "중국은 민품(民品)이 열악하고 민지(民智)가 비천하니 지금으로선 교육에 착수하는 것이 급하며 점진적으로 혁신하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자 쑨원은 "황하가 맑아지길 기다린다니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살겠습니까. 당신은 사상가이고 이 몸은 행동가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옌푸가 열세 살 쯤 위였다.

지식인의 사회적 실천은 무지를 걷어내는 일이다. 옌푸는 시종일관 지식만이 모든 중국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서양의 지식만이 위기의 중국을 구할 수 있으니, 배격하지 말고 정신까지 서양을 배워 부강을 달성하자고 주장한다. 복단(復旦) 대학과 북경 대학의 젊은 학생들은 옌푸 총장의 이 말을 금과옥조로 삼으며, 어떤 이는 혁명에 종사하고 어떤 이는 유학을 떠나고 어떤 이는 교육에 종사했다.

그 서양의 지식이란 과학, 민주, 자유, 그리고 민권이었다. 동양에 없었던 이런 관념들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 주리라 믿었다. 1898년 옌푸는 황제에게 장문의 상소문인 <만언서(萬言書)>를 올려 군사, 재정, 외교라는 '외부 개혁'과 더불어 인재 양성, 습관 개조, 인심의 변화 등 '근본 개혁'을 주장했다. 그 내용이 당시 양무운동의 방향을 질타하는 것이어서 그는 여러 실권자들로부터 질시를 받았고 위협을 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세상은 바뀌었는가?

결국 세상은 옌푸가 말한 대로 바뀌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지난 백여 년 동안 동아시아 국가들은 '근본 개혁'에 성공한 듯하다. 전통은 통째로 버려졌고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은 완전히 바뀌었다. 개혁을 넘어 혁명이라 부를 만하다. 그것을 근대화라 하였고, 봉건의 극복이라 하였고, 부강으로 가는 길이라 하였다. 주변부 지식인이던 옌푸는 중심부 지식인들에게 강렬한 영향을 미쳤고 이른바 서체서용(西體西用)이 대세가 되었다. 1949년 혁명을 결산하면서 마오쩌둥은 홍슈취안(洪秀全), 캉여우웨이(康有爲), 쑨원(孫文), 옌푸(嚴復)를 중국 근대를 만든 위대한 네 명의 선구자라고 극찬했다.

▲ 푸저우에 있는 옌푸의 묘. ⓒ장현근


나는 낙엽만 뒹구는 옌푸의 무덤에 앉아 하염없이 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과연 바뀌었는가? 바뀌어서 행복한가? 푸저우 허름한 버스 종점 뒤 묘역에 조용히 누워있는 옌푸가 바란 세상은 오늘날 이런 세상이었을까? 그를 유명하게 만든 <구망결론(救亡決論)>이란 글에서 옌푸는 교육과 학문이 잘못되어 중국이 허약해졌다고 진단한다. 중국인의 지혜가 막히고, 마음이 나빠지고, 건달이 불어나 망하기 직전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전통을 버리고 서양의 교육과 학술로 완전히 바뀐 오늘날 중국인은 지혜롭고 마음이 건강하고 건달이 없어졌는가?

옌푸의 목적은 국가의 부강이었고 그 수단은 서양의 정신과 문명이었다. 헉슬리의 <진화와 윤리>를 번역하고 곳곳에 자신의 생각을 끼워 넣은 책 <천연론(天演論)>은 근대 중국을 움직인 가장 영향력 있는 책 가운데 하나였다. 옌푸가 민지가 낮은 중국을 서양의 정신으로 구원해야겠다는 일념에서 공부를 시작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영국의 '선진' 사상과 문화를 직접 경험하고 돌아와 목적과 수단이 분명한 학문생활을 지속했다는 것은 그의 정신의 건강성을 보여준다.

조선에 유길준이 있고 일본에 후쿠자와 유키치가 있듯이 중국에 옌푸가 있었다. 그들이 추구한 선진과 부강은 건강한 목적이 맞는가? 그래서 바뀐 오늘은 어떤가. 돈 아닌 지혜는 막히고, 돈 때문에 마음이 더 나빠지고, 돈을 찾는 건달은 더 불어났다. 전통을 잘못 버렸듯이 서양을 잘못 배웠기 때문은 아닌가. 전통을 잘 버리려면 장단점을 취사선택해야 하고, 서양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선 그 문제점도 아울러 지적했어야 한다. 버리는 걸 슬퍼하고 베끼는 걸 부끄러워하여 일생을 고뇌하며 학문에 정진하는 사람이 절조 있는 참 지성이 아닐까. 이롭지 못하다고 조상을 버리고 이롭다고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은 절조가 아니다.

그는 지식의 변절자인가?

절조를 바꾼 사람이 변절자이다. 옌푸의 인생 역정을 소개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가 젊어서 서양을 추종하다 나중에는 중국의 전통과 서양을 절충하고 늙어서 복고주의로 되돌아갔다는 변절론을 제기한다. 절조가 바뀌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자신만의 절조를 가질 때 참 지성이 되는데 그것을 바꿀 수도 있단 말인가?

내가 읽은 옌푸는 시종일관 전통을 버리지 않은 사람이다. 유가 사상을 비판했지만 어떤 글에서건 이를 통째로 버리지는 않았다. 그런 그가 변절자라면 애초에 절조 있는 지식인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변절은 정치인의 전유물이다. 옌푸는 말년에 황제가 되려는 위안스카이(袁世凱)를 지지했고 1917년엔 장쉰의 복벽에 동정을 표했다. 이를 학문과 정치 사이를 왕래한 유교 지식인의 행태로 보기엔 난감한 점이 있다. 여하튼 이 때문에 옌푸는 더욱 변절자로 불리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다. 진정 학문으로 서양과 중국을 관통한 첫 번째 인물이 맞는가? 과학과 민주를 숭상한 절조 있는 인물이 맞는가? 왜 그랬을까. 무덤 속 옌푸는 대답이 없다.

옌푸 스스로 '후관엄기도선생지수역(侯官嚴幾道先生之壽域)'이라고 쓴 돌무덤 앞에 초등학생 두 아이가 놀고 있다. 무덤의 주인이 누군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몰라요, 관심 없어요"라고 대답한다. 나 또한 그가 '순정한 중국인'인지 자신할 수 없어서 설명해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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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근

용인대학교 중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중국 길림 대학교 문학원 및 한단 대학교 등의 겸임교수이다. 중국문화대학에서 '상군서' 연구로 석사 학위를, '순자'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가 사상의 현대화, 자유-자본-민주에 대한 동양 사상적 대안 찾기에 몰두하고 있다. <중국 사상의 뿌리>, <맹자 : 이익에 반대한 경세가>, <순자 : 예의로 세상을 바로잡는다>, <성왕 : 동양 리더십의 원형>, <중국의 정치 사상 : 관념의 변천사> 외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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