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정부 출범과정에서부터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철학으로 내 세우고 있는 '창조적 실용주의'가 단순한 방법론일 뿐, 국가운영의 방향성을 명확히 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자기 반성에서 출발한 것.
그러나 '통합형 자유주의'의 내용은 사실상 규제완화와 감세, '작은 정부-큰 시장'으로 요약되는 신자유주의 정책과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통합형 자유주의'란 여론의 반발을 달래기 위한 일종의 수사일 뿐이라는 게 토론자들의 주된 반론이었다. 이 정부가 과연 '통합'과 '자유'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나갈 의지와 능력이 있느냐는 회의론도 빗발쳤다.
"헝그리 사회에서 앵그리 사회로…사회적 갈등 극복해야"
발제를 맡은 서울대 이재열 교수는 미래기획위원회와 KDI가 공동으로 마련한 발제문을 통해 "이명박 정부의 사명은 건국과 산업화 및 민주화의 성과를 질적으로 성숙시키고 선진화의 초석을 놓는 것으로, 이를 위해 성숙한 자유를 토대로 조화로운 통합이 실현되는 미래지향적 국정가치 지향으로서 통합형 자유주의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이는 자유를 심화하는 한편 압축성장에 따른 사회적 갈등 및 신뢰부족 등 부정적 부산물을 발전적으로 치유·극복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 같이 주장했다.
그는 "'헝그리(hungry)사회'의 해소 이후 찾아온 '앵그리(angry) 사회'에서 이념, 지역, 계층, 세대간 갈등이 심각하다"면서 "이제는 경제성장은 물론 사회의 질이 조화된 성숙한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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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이 교수는 "통합형 자유주의는 시장의 역할만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나 정부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하는 사회적 자유주의·사회민주주의와는 모두 구별된다"며 "자유로운 시장질서를 근간으로 하되 정부의 보완적 역할을 통한 통합성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공동체 자유주의, 포용적 자유주의 등과 유사한 맥락"이라고 했다.
구체적 정책방향과 관련해선 지금까지 이명박 정부가 밝혀 온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작고 유능한 정부 △규제완화와 감세를 통한 경쟁의 범위 확대 △성장을 통한 분배 △경쟁 낙오자에 대한 배려 △일자리 확충을 통한 능동적 복지 △환경과 성장의 조화를 추구하는 녹색성장 등이 그대로 제시된 것. 법 질서 확립과 '떼법' 근절을 강조한 대목도 닮은 꼴이었다.
또 그는 "이를 구현하기 위해선 과감하고도 실용적이면서 창조적 응용이 요구된다"며 "통합형 자유주의는 기존의 '창조적 실용주의'를 실천원리로 한다"고 덧붙였다.
"신자유주의 퇴조하고 있는데, MB는 그대로 답습"
토론자들 사이에선 당장 반론이 터져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의 외교안보자문역이기도 한 현인택 고려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에서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지난 20~30년 동안 전 세계를 지배해 온 신자유주의 모델이 퇴조하고 있지만, 이 정부는 이미 실패한 신자유주의 모델을 답습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통합형 자유주의라는 것도 사실상 자유주의로 환원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연대를 위한 제도적 묶음으로서의 통합을 제시해야 통합이 가능해진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작은 정부를 제시하고 있지만 세계사적 대전환의 길목임을 감안하면 정부의 역할은 오히려 커야 한다"며 "작은 정부라는 마술이 곧 보수적인 가치라고 집착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고려대 임혁백 교수는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이 자유주의라는 담론을 선점함으로써 집권에 성공한 것은 훌륭한 전략이었고, 통합과 자유를 연결한 것이 모순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면서도 대북정책에서 나타나고 있는 경직성을 지적했다.
임 교수는 "실용주의의 요소를 유연성과 포용성, 그리고 실적주의라고 할 때 이 정부는 실적주의만 잘 하고 있다"면서 "유연성과 포용성이 부족하며 특히 대북정책의 경우 이데올로기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6.15, 10.4 선언이 자신의 이념적 경향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무시하니 대북관계가 바로 얼어붙는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임혁백 교수와 김형기 교수는 모두 '지속가능한 진보'를 표방하고 있는 싱크탱크인 '좋은정책포럼' 소속이다.
"일방향성 희석하기 위한 수사일 뿐…내용은 신자유주의"
윤평중 한신대 교수의 반론은 더욱 직설적이었다. 윤 교수는 "근대적 시장이 국가로부터 독립돼 형성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작은 정부-큰 시장이라는 것은 일종의 사이비 담론"이라며 "진짜 문제는 시장과 정부가 크든 작든 과연 효율적으로 작동하는가 하는 점"이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작은 정부가 아니라 큰 정부였으며, 금융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을 봐도 효율적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윤 교수는 "또 이명박 정부의 창조적 실용주의는 독단적 일방향성, 경제살리기라는 이름 하에 이뤄지고 있는 토건국가적 성장이라는 방향을 희석시키기 위한 명칭일 뿐"이라면서 "통합형 자유주의를 내 세우고 있는 이 발제문 자체가 이명박 정부의 현실에 대한 가장 통렬한 비판으로 읽힌다"고 비판했다.
윤 교수는 "집권 10개월 동안 이 정부가 보여 준 것은 적나라한 한국적 가신(家臣)정치, 1%를 위한 정부라는 논란, 대단히 폐쇄적인 인사정책뿐이었다"면서 "결코 후한 점수를 줄 수 없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은 '통합형 자유주의'라는 방향성에 대체로 공감을 표시한 토론자들 사이에서도 나왔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통합과 자유가 이명박 정부 출범의 커다란 대의라는 측면에서 큰 방향성에 공감한다"면서도 "이명박 정부가 이런 통합형 자유주의를 실천할 의지와 정치력이 있는지에 대해선 상당한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박 교수는 "정치라는 것은 의도나 철학이 아니라 그 결과로 평가받는다"며 "노무현 정부도 의도와 결과 사이의 괴리 때문에 비판받았던 게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최창규 명지대 교수는 "애초 국정철학으로 '창조적 실용주의'가 제시됐을 때 그것은 '천리마 운동', '삽질'을 할 때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이어서 당황했었다"며 "이제야 제대로 된 국정철학이 제시됐다고 생각한다"고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그러면서도 최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말로만 작은 정부, 섬기는 정부라고 해 놓고 실천은 보이지 않은 점이 실망스럽다"며 "통합형 자유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정부의 실천노력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자유주의 원칙 훼손될라…더욱 선명하게"
강도 높은 비판에 대한 재반박도 만만치 않았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왜 포퓰리즘에 빠졌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바로 자유주의라는 기반이 퇴색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유와 통합이 함께 제시됐지만, 통합과 관련된 각론이 자유주의의 원칙에 어긋나선 안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자유주의'적 요소를 더욱 선명하게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데올로기적 대북정책'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거꾸로 지난 10년 간 햇볕정책이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된 것이 아니냐"며 "(지난 정부는) 마치 햇볕정책을 안 하면 큰 일이 나는 것처럼 이야기해 왔다"고 반박했다.
강성진 고려대 교수도 "이번 금융위기를 자유주의나 자본주의의 위기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규제나 감세 문제도 우리가 여기서 자유화에 나선다고 미국식 신자유주의로 귀결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무리"라고 적극적으로 방어선을 쳤다.
강 교수는 "지난 정부가 부자와 가난한 계층, 도시와 지방, 선진국과 개도국 등 모든 것을 이분법적-대립적으로 본 것과는 달리 이제는 하나의 스펙트럼으로 보자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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