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여름 프랑스의 정치계와 미디어를 가장 뜨겁게 달군 건 프랑스가 오래전부터 겪고 있는 실업, 경제위기, 빈곤화의 문제가 아니다. '부르키니'(burkini 또는 burqini)라는 수영복이다. 한국이든 프랑스든 실업, 경제위기, 빈곤화는 변화 없는 현실의 연속 선상에 있으므로 뉴스(news : 새로운 것, 새 소식)가 되지 않는다. 이와 달리, 남프랑스 연안과 노르망디 지역의 시장들이 사람들에게(정확하게는 '무슬림 여성들에게') 해변에서 착용하지 못하도록 명령한 부르키니는 아주 흥미로운 뉴스거리가 된다. 1920~30년대에는 노르망디에서든 코트다쥐르(Cotes d’azur : 남프랑스의 푸른 해안)에서든 해수욕을 즐기는 여성들은 모두 오늘의 부르키니와 비슷한 수영복을 착용했는데, 당시에는 물론 그 수영복이 프랑스 공화국의 세속주의(LAICITE)라는 가치와 충돌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2004년에 레바논 출신 오스트레일리아 여성 아헤다 자네티가 "여성들이 종교적 정숙을 유지하면서 수영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수영복이 특히 프랑스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왜일까? 프랑스 혁명 이래 가톨릭 세력과 맞서 세속주의를 정립하고 강조해 온 프랑스 공화국 원칙의 반영물일까? 아니면, 무슬림을 표적으로 한 '상상의 적'을 만들려는 정치적 의도의 반영물일까? 또는 경제위기에 빠진 유럽에서 정체성 요구와 이슬람 혐오가 되살아나는 시대에, 프랑스의 사회학자 가엘 브뤼스티에가 말한 '도덕적 패닉'을 보여 주는 예일까. 정치경제적 무능의 빈 데를 내외부에서 적을 만들고 그들에 대한 불관용으로 메우는 속물정치가 낳은?
부르키니냐, 비키니냐?
신중한 분석가나 관찰자는 작년 11월 파리에서 발생한 동시 다발 테러에 이어, 올해 7월 14일에 또다시 니스에서 테러가 일어나 86명의 희생자를 낳았음을 잊지 않을 것이다. 2004년 이래 '무슬림의 모드'인 부르키니를 허용할 것인가라는 물음과 관련된 소소한 해프닝과 토론이 프랑스와 벨기에, 그리고 독일에서 일어났지만 이번 여름에 프랑스에서 이 문제가 크게 증폭된 배경에는 두말할 것도 없이 지하디스트들이 저지른 테러들이 있다. 무슬림에 대한 적대와 혐오의 분위기 속에서 7월 말에 칸느를 시작으로 해안 도시의 시장들이 '해변에서 종교적 복장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지중해와 만나는 남프랑스 지역은 프랑스에서 극우파 정치세력이 가장 강력한 지역의 하나다. 시장들은 '종교적 복장을 금지'한다고 했지만, 그것이 겨냥하는 것이 부르키니라는 것을 모를 사람은 없다.
급기야 8월 23일 니스 해변에서 네 명의 경찰이 한 여성에게서 현장 조서를 받는 사진이 프랑스와 외국의 각종 미디어에 실리면서 부르키니 충격파는 프랑스 국내외에서 크게 일렁대기 시작했다. 사진 속 여성은 부르키니를 착용하지도 않았는데, 상의를 막 벗는 참이었다. 경찰이 탈의를 요구한 것이다. 지난날 어떤 때엔 여성들에게 옷을 너무 짧게 입지 않도록 감독했는데, 오늘은 그 반대가 되었다고나 할까? 아니, 지금도 지중해 너머 모로코에서는 강력한 종교 지도자 오마르 알크자브리가 '외설스런 발가벗음'이라며 해변에서 비키니를 착용한 여성을 비난하고 있는 중이다. 지중해 양쪽에서 여성들이 무엇을 입거나 입지 않을 것을 남성이 결정하는, 같은 현상 속에서 반대의 양상(한쪽은 "벗어라!", 다른 쪽은 "입어라!")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부르키니, 입어도 괜찮아!
이 문제에 관해 프랑스 정치권은 둘로 갈렸다. 시장들에게 그런 명령을 내리도록 부추긴 극우파들이 적극 찬성하는 쪽에 서 있는 것은 물론이라고, 우파 다수도 찬성 쪽에 기울었다. 특히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르피가로〉 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부르키니를 입는 것은 정치적인 행위이며 도발이다. 부르키니를 입는 여성들은 공화국의 저항을 시험하는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프랑스에서 나름 지도적 위치에 있다는 우파 정치인이 부르키니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엿볼 수 있게 해 주는 언설이라 하겠다.
프랑수아 올랑드 사회당 정권의 나자트 발로-벨카셈 교육장관과 마리솔 투렌 보건복지부 장관이 (둘 다 여성임) 시장 명령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던 반면, 마뉘엘 발스 총리는 적극적인 동조자의 하나였다. 프랑스의 국가 참사원(Conseil d’Etat)은 지난 8월 26일 빌뇌브-루베 시장의 명령을 정지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인권연맹'의 제소를 수용한 참사원의 판사들은 "특정 사람들의 수영과 관련하여 적용시킨 착의가 공공질서를 어지럽힐 위험을 불러온다고 볼 요인이 전혀 없다. 그런 위험이 없다고 할 때, 시장은 해변 접근과 수영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해선 안 된다"라고 판결했다. 인권연맹은 이 결정을 환영하면서도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부르키니와 관련된 토론이 프랑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출신과 종교에 따라 분리시켰다는 것이다.
아냐, 부르키니 금지법을 만들어야 해!
국가 참사원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또 인권연맹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빌뇌브-루베 시와 비슷한 명령을 내린 시장들은 자신이 내린 명령이 계속 유효하다고 언급했다. 앞으로 시장 명령에 따라 불이익의 처분을 당한 시민이 상소하는 경우 그 처분은 프랑스 행정 심급에 따라 무효가 될 테지만, 니스를 비롯한 시의 시장들에겐 자기들의 정치게임이 더 중요했다. 게다가 그들에겐 국가 참사원의 결정에 대해 "(그 결정이) 토론을 마감하지 않는다"며 반발한 마뉘엘 발스 총리와 같은 든든한 우군도 있지 않은가. 오히려 참사원의 결정이 있자마자 극우파 정치인들과, 알랭 쥐페 전 총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우파 정치인들은 부르키니 금지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런 정치게임 아래 피해는 오롯이 시민의 몫으로 남는다. 릴르(Lille)에 사는 살리하라는 여성은 17살과 12살의 두 딸과 함께 남프랑스 해안에서 바캉스를 즐기러 왔는데 걱정이 앞서게 됐다. "내 딸들은 해수욕을 하지만 나는 옷을 입은 채로 있어요. 사람들이 나에게 뭐라고 할지 알 수 없군요." 그녀의 작은딸은 검은색 비키니를 입었고 스스로 조신하다고 말하는 큰딸은 쇼트와 머릿수건을 두른 채 지중해에 뛰어들었다. 경찰이 다가오지 않는지 계속 주위를 살피면서 살리하는 이렇게 말했다. "정말이지 내 딸들 앞에서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네요."
집단적 히스테리야!
'부르키니 소극(笑劇)'이라고 부를 만한 이 소동에 관해 작가나 지식인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나는 모든 종교에 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나는 인류가 종교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고 본다"고 언명하는 영국 작가 살만 루시디는 이렇게 덧붙였다.
"해변에서 경찰이 여성들에게 옷을 벗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 (중략) 참사원의 결정은 이를 뒤집은 것으로 옳은 결정이다. 그럼에도 나는 부르키니가 싫다. 남성에 의한 여성에 대한 억압의 표시물이기 때문이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작가 쥘리앙 쉬오도의 <뉴욕타임스> 기고 글은 아주 신랄했다.
"이 집단적 히스테리를, 내가 매일 필라델피아에서 만나 얘기를 나누는 미국인들과 이민자들(내 이웃들, 내 자식의 친구의 부모들, 내 동료들, 내 학생들)은 이해하려고 애썼음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분명히 밝히건대, 그들 대부분은 아랍인도 무슬림도 이슬람 좌파도 아니고 스톡홀름 증후군에 걸려 있지도 않다.) 그들은 이른바 공화국의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가로막을 수 있는지, 종교에 따라 적당히 엄격해지는 세속주의의 이름으로 그들의 신앙을 표현하는 것을 금지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고백하건대, 나 또한 내 나라의 정체성에 대한 집념과 신경증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한다. (중략) 프랑스인들, 그중 적어도 정치인들은 부르키니의 편집광, 정신병자가 되고 있으며 이젠 그들 자신이 공적 영역을 침범하는 무슬림의 은유가 되고 있다."
유별나게 뜨거웠던 여름, 부르키니로 도배된 <르몽드>를 읽으면서 나 또한 이 신랄한 작가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던 것일까? 이 글의 소제목을 나열해 보니, 그런 것 같다. 수영복이 문제야! 부르키니냐, 비키니냐? 부르키니, 입어도 괜찮아! 아냐, 부르키니 금지법을 만들어야 해! 집단적 히스테리야!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의 '나라 밖 이야기'는 <작은책>과 필자의 동의를 받아, 한 달에 한 번 <프레시안>에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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