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책을 안 읽습니다. 책 좋아하면, 바보 취급당합니다. 그걸로 그치면, 차라리 다행이죠. 따돌림 당하고 욕먹기 일쑤입니다. '일간베스트(일베)'에 가면, '선비질', 'X선비', '진지 빤다' 같은 표현을 자주 봅니다. 책 좋아하는 티를 내면, 이런 소리를 듣습니다. 조금 부드러운 표현으론, '재수 없어'가 있습니다. 공부 잘 하는 사람이 책 좋아하면, '공부 좀 했다고 티 내냐'라고 합니다. 공부 못 하는 사람이 책을 많이 보면, '공부도 못 하면서 무슨 책이냐'라고 하죠.
책 좋아하면 '허세남'?
의사 남편을 둔 부인이 있습니다. 책을 무척 좋아합니다. 학창 시절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었어요. 남편은 시험 준비, 업무 등과 관계없는 책은 아예 안 봅니다. 어느 날, 남편이 부인에게 그랬답니다. '당신, (공부 못 했다는) 콤플렉스 때문에 그러는(책을 많이 읽는) 거지?' 부인은 진지하게 이혼을 고민했다는군요.
이번엔 제 경험입니다. 기자가 되기 전에 기업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일하면서 알게 된 분이 저와 정치 성향이 닮았더군요. 하필 술자리에서 옆에 앉았습니다. 예전에 읽은 사회과학 책 이야기를 둘이서 잠시 나눴어요.
다음날, 다른 분에게 핀잔을 들었습니다. '사회생활 하는 법을 모른다'라는 거죠. 직장의 술자리에선 '망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다들 만족합니다. '진지 빠는 대화'는 '진보 좌파'보다 더 위험합니다. 직업을 바꾼 지 십수 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술자리에서 책 이야기가 나오면 괜히 눈치가 보입니다. 당시 기억이 떠올라서요.
<만약은 없다>(문학동네 펴냄) 저자인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 씨도 한 인터뷰에서 그랬더군요. 그는 문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의과 대학에 다니면서도 시집을 곁에 뒀는데요. 그랬더니 '허세남', '된장남' 등의 놀림을 받았다고 하네요.
"공부 잘 하고 책 싫어해야 출세하는 나라"
책을 무척 아끼는 친구가 한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 출세하는 유형은, 공부 잘하고 책 싫어하는 사람"이라고요. 책을 싫어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생활 할 줄 모른다는 타박을 듣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책읽기가 나와 우리의 삶을 낫게 한다고 믿는 이들에게 한국은 확실히 답답한 사회입니다.
책을 안 읽는 대신, 제대로 놀고 있기라도 하면 다행입니다. 그렇지도 않죠. 우리는 대체 무엇으로 삶을 채워가고 있는 걸까요.
책의 퇴조와 글의 약진
여기서 작은 반전이 있습니다. 책을 읽는 이들은 확실히 줄어듭니다. 하지만 글을 읽는 시간까지 줄어드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늘어납니다. 스마트폰 때문이죠.
책의 퇴조와 글의 약진. 그 틈바구니에서 성장한 분야가 있어요. 대표적인 게 '웹 소설'입니다.
새로운 분야는 아닙니다. '귀여니'(본명 이윤세) 작가를 기억하시나요. 그가 고등학생 시절이던 2000년대 초반, <늑대의 유혹>, <그 놈은 멋있었다> 등의 소설을 온라인에 연재했습니다. 초고속 인터넷이 집집마다 보급된 뒤라서 가능한 일이었죠. 소설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나중에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진지한 독자들은 대체로 무시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문장력 문제가 치명적이었습니다. 문법 및 논리에 맞지 않는 문장을 남발했죠. 또 '-_-' '^^;' 등의 이모티콘으로 감정 묘사를 대체하는 데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고요. 학교 폭력 집단(일진)을 미화한다는 비판도 있었죠. 내용 전개의 개연성이 너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퇴고를 하지 않는 작가의 버릇 때문에 오류도 많았습니다. 주인공의 성 씨가 계속 바뀌기도 했죠. 보수 언론은 귀여니 소설의 인기 몰이를 놓고, "온라인상의 언어 파괴"라며 비판했었죠.
"귀여니 소설은 '놀이'"
그런데 2004년 9월, 영화 평론가 정성일 씨가 쓴 "귀여니에게 돌을 던지지 마라"라는 글이<스크린>에 실렸습니다. 귀여니 소설을 둘러싼 논란에서 한 분기점이 된 글입니다. 정 씨는 이 글에서 귀여니 소설에 대해 "마치 반에서 누군가 만화를 잘 그리는 친구가 월요일 아침만 되면 들고 오는 연재 만화 같은 것"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러니까 귀여니 소설이 작품성이 있다고 본 건 아닙니다.
대신, 그는 귀여니 소설을 '놀이'로 규정했습니다. "익명의 친구들과 함께 쓰는 (…) 환상의 놀이"라는 겁니다.
귀여니 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만든 영화가 실패한 이유도 그 지점이라는 게 정 씨의 생각이었죠. 영화는 '환상의 놀이'를 아무런 성찰 없이 종결해버렸다는 겁니다. 특정한 방식으로 박제화 된 놀이는 아무런 재미가 없습니다.
<퇴마록> 작가의 문제 제기
인터넷 시대가 열린 뒤, 처음으로 대중적인 화제가 됐던 웹 소설 작가가 귀여니입니다. 이후 그가 성균관대학교에 특례 입학을 하면서 다시 논란이 생겼습니다. 귀여니의 소설이 과연 제대로 된 글이냐는 거죠. 정진수 성균관대학교 연기예술학과 교수가 나서서 해명 글을 발표했습니다. 이후 <퇴마록> 작가 이우혁 씨가 공개 반론을 했죠. 이 씨 역시 연극, 오페라 등에 조예가 깊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공방이 오갔습니다.
이 대목도 흥미롭습니다. 이 씨는 1990년대 초에 PC 통신에 <퇴마록>을 연재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기 전이죠. PC 통신 게시판의 스타 작가가 인터넷 커뮤니티의 스타 작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겁니다.
적어도 대중적으로는, 이쯤에서 귀여니 논란이 마무리됩니다. 대학에 들어간 뒤론, 귀여니의 작품이 큰 반향을 낳지 않았어요. 이와 함께 웹 소설에 대한 관심도 식었죠.
산업이 된 웹 소설
그리고 10여 년이 지났습니다. 다시 웹 소설이 뜹니다. 이젠 규모가 다릅니다. 남희성 작가가 온라인으로 연재하던 <달빛조각사>는 종이책으로도 출간됐는데, 현재 47권까지 나왔습니다. 권당 300쪽 이상의 분량입니다. 말 그대로 대하 소설이죠. 독자들의 사랑이 꾸준하다는 뜻입니다. 연 수입이 수억 원대인 웹 소설 작가들이 속속 등장합니다.
웹 소설을 연재하는 대학생 작가가 있습니다. 부모가 걱정합니다. 요즘 취업이 힘들다는데, 엉뚱한 글만 쓰고 있으니까요.
'글쓰기도 좋지만, 취업 준비도 좀 해야 하지 않겠니.'
그랬더니, 작가가 통장을 보여줬습니다. 맙소사, 작가의 월수입이 아버지의 연봉과 맞먹습니다. 이런 사례가 종종 회자됩니다. 웹 소설은 이제 산업이 됐습니다.
책 안 읽는 나라에서 발달한 웹 소설
웹 소설 전용 플랫폼도 발달했습니다. '조아라', '문피아', '북팔' 등이 유명합니다. 누구나 소설을 쓰고 읽을 수 있어요. 물론, 인기 있는 소설은 돈을 내야만 읽을 수 있죠. 그렇게 발생한 수익을 플랫폼 업체와 작가가 정해진 비율에 따라 나눕니다. 물론, 억대 수입을 얻는 작가는 극소수고요. 나머지 다수는 형식적인 금액만 받습니다.
그래서 더 놀랍습니다. 이토록 책을 안 읽는 나라에서 자발적으로 글을 쓰고 읽는 인구 규모가 엄청납니다.
'조아라'의 경우, 지금껏 글을 쓴 작가의 수가 약 14만 명입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이들이 연재한 작품은 42만여 편입니다. 하루 평균 2400여 편의 글이 올라온다고 해요. 회원 수는 110만 명이고요. 작품의 누적 조회 수는 130억 건이라고 하네요.
조아라의 지난해 매출액은 약125억 원입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해 웹 소설 시장 규모를 약 400억 원대로 추산했고요.
1만 원짜리 책 20만 권 판 효과
온라인에서 뜨는 분야가 있으면 포털 업체가 꼭 발을 뻗습니다. 네이버와 카카오도 웹 소설 사업에 뛰어들었어요. 지난해 한 해 동안 네이버 웹 소설 코너에 정식 연재된 작품의 누적 조회 수는 약 18억 건입니다.
카카오는 '카카오페이지'를 통해 유료 콘텐츠 사업을 하는데요. 누적 매출 1억 원을 돌파한 작품은 143편, 10억 원 이상 작품은 4편입니다. 누적 매출액 20억 원 이상인 작품도 등장했고요. 한 작품에 대해 독자가 직접 돈을 낸 금액 합계입니다. 누적 매출액 20억 원이면, 1만 원짜리 책을 20만 권 판 것과 마찬가지죠. 하지만 작가가 가져가는 몫은 종이 책보다 훨씬 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액 소득을 올리는 작가들은 요즘 네이버나 카카오로 옮겨가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먼저 웹 소설 플랫폼을 만든 업체들이 위기감을 느낀다는군요.
소설, 만화 시장에서 돈 냄새가 난다
'문피아'는 원래 무협 소설 작가들의 커뮤니티였습니다. '고무림'이라는 사이트였죠. 이후 판타지 등 다른 장르 작가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면서 지금의 구조가 됐습니다. 지난해 매출액은 약120억 원입니다.
그런데 사모펀드 운용사인 S2L파트너스에 문피아 지분 전체를 매각한다는 발표가 9월 초에 났습니다. 신생 운용사인 S2L파트너스의 첫 번째 투자 사례입니다.
그 직전에는 IMMPE라는 사모펀드 운용사가 레진엔터테인먼트 지분 19%를 500억 원에 사들였죠. 레진엔터테인먼트는 유료 웹툰(웹 만화) 플랫폼인 '레진코믹스'를 운영합니다. 돈 냄새에 민감한 투자자들이 웹 만화, 웹 소설 분야에 뛰어드는 거죠.
'서프라이즈' 논객, 웹 소설 플랫폼 만들다
'북팔'은 창업자가 '서프라이즈' 논객 출신입니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만들어진 정치 토론 사이트가 '서프라이즈'인데요. 김형석 북팔 창업자는 당시 '마케터'라는 필명으로 활동했습니다. 북팔은 2011년에 창업했는데요. 처음에는 소설을 무료로 보여주고, 광고로 돈을 버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다 소설을 유료로 결제하는 방식으로 바꿨는데, 그때부터 매출이 뛰었다는군요.
역시 '서프라이즈' 논객이었던 임허규 씨 역시 웹 소설 작가가 됐습니다. 서프라이즈 시절엔 '요한 3장 3절'이라는 필명을 썼죠. 지금은 '요삼'이라고 하고요. 삼성 전략기획팀 출신인 그는 '문피아'의 간판 작가였죠. <에뜨랑제>, <양아치> 등이 인기를 끌었습니다.
놀이→산업→?
앞에서 영화평론가 정성일 씨의 '귀여니 소설'에 대한 의견을 소개했습니다. 일종의 '놀이'라는 거였죠. 이젠 다릅니다. 웹 소설은 산업입니다. 부자들이 속속 탄생하고, 거대한 투자가 진행됩니다. 예컨대 대하 웹 소설 <달빛조각사>는 온라인 게임으로 제작될 예정입니다.
조선 말기 망국적인 세도 정치를 억누르려 했던 '효명세자'가 주인공인 드라마가 요즘 인기죠. 한국방송(KBS)에서 방영되는 <구르미 그린 달빛>입니다. 배우 박보검 씨가 '조선의 마지막 희망' 효명세자(이영) 역을 맡았죠. <구르미 그린 달빛> 역시 원작은 웹 소설입니다.
웹 소설 플랫폼 업체의 최근 고민 역시 중국 진출입니다. 하지만 성공 여부는 불투명합니다. 중국 역시 웹 소설 시장이 성장했거든요.
다른 문화 산업 분야, 예컨대 컴퓨터 게임과 몹시 닮았습니다. 컴퓨터 게임 역시 초창기에는 개발 자체가 일종의 '놀이'였습니다. 젊은 공학 마니아들이 재미 삼아 게임을 만들어서 공유했죠. 하지만 곧 '산업'이 됐습니다. 국내 시장에서 성공하면 해외로 나가려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 전까지 국내 온라인 게임 업체의 최대 화두가 중국 진출이었죠.
뻔한 유형, 잇따른 표절 논란
웹 소설 가운데 인기를 끄는 작품들은 독자에게 '대리 만족'을 주는 유형이 많습니다. 가상 역사물은 늘 인기죠. 고구려나 백제의 영웅들이 정복 전쟁을 벌입니다. 또 실제 역사에선 몰락한 왕조가 어떤 개혁을 통해서 도약하기도 하고요. 개인이 갑자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유형도 흔하죠. 지금 제가 갖고 있는 지식과 기술을 그대로 간직한 채 과거로 돌아가는 겁니다. 의사, 변호사 등 인기 직업을 소재로 삼은 경우도 많아요. 우리가, 특히 청소년들이 흔히 하는 상상을 글로 옮긴 거죠. 누구나 하는 상상이므로, 쉽게 몰입합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게임 산업도 똑같죠. 게임 소재 역시 대부분 '대리 만족', '대리 체험'입니다. 그렇다면, 산업이 된 웹 소설의 진화 방식도 어느 정도는 예상이 됩니다.
갑작스레 성장한 문화 산업 분야에선 늘 표절 논란이 따라 붙죠. 작가의 자존심이 성숙하는 속도보다 경제적 보상이 더 빨리 늘어나니까요. 자존심 팽개치고 남의 작품을 베끼는 이들이 흔해집니다. 게임 업계 역시 걸핏하면 표절 논란이 벌어집니다. 게임 이용자들이 좋아하는 유형이 비슷하다보니, 이런 논란이 더 가열되죠. 게임 수명이 짧아진 모바일 시대엔 더 심해졌죠.
웹 소설도 그래요. 경제적으로 성공한 웹 소설은 소재와 전개 방식이 대개 비슷합니다. 그러니까 작심하고 베끼는 경우가 잦습니다. 또 웹 소설로 돈을 벌려면, 적어도 한 달에 한 권 분량은 써야 한다고 합니다. 웹 소설은 독자의 몰입 감을 유지하는 게 생명이거든요. 그러니까 흐름이 끊기면 안 됩니다. 성공한 작가조차 쉴 틈이 없어요. 그런데 비평 문화는 느슨해요. 표절 유혹에 취약한 구조죠.
'대리 만족' 넘어서는 웹 소설
게임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오로지 돈만 보고 만든 작품과 나름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으로 갈라집니다. 예컨대 넥슨이 올해 출시했던 '서든어택2'는 전자(前者)죠. 아무런 혁신 요소 없이 여성 캐릭터를 벗기는 것만으로 승부하려 했던 게임입니다. 결국 서비스를 접었습니다. 이른바 '인디게임' 장르가 발달하면서 후자(後者) 유형의 게임도 꾸준히 나옵니다. 국가정보원의 휴대폰 감청 사건을 소재로 만든 게임 '레플리카', 전쟁 반대 메시지를 담은 게임 '디스 워 오브 마인' 등을 꼽을 수 있습니다. 이 코너에서도 앞서 소개했었죠.
웹 소설 역시 비슷한 경로를 밟을 것으로 보입니다. 독자에게 '대리 만족'을 주는데 그치지 않는 작품들이 나오겠죠. 진지한 메시지를 담은 웹 소설도 곧 나올 겁니다.
이 경우, 순수 문학과의 경계 역시 모호해질 겁니다. 또 비슷한 메시지를 담은 소설이 온라인 연재 방식으로 읽히는 경우와 완결된 책으로 팔리는 경우, 독자들이 각각 어떻게 반응할지 역시 관심사입니다. 이미 앞선 사례들이 있기는 합니다. 예컨대 공지영의 <도가니>, 조정래의 <정글만리> 등이 온라인에서 먼저 유통됐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종이 책으로 먼저 이름을 알린 작가였죠. 그리고 전통적인 등단 절차를 거쳤습니다. 웹 소설로 시작한 작가가 순수 문학에 도전한 경우에 대해선 아직 검증이 안 됐습니다.
웹 소설은 10여 년 만에 '놀이'에서 '산업'이 됐습니다. 그 다음에 뭐가 될까요. 궁금한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자동 번역 기술의 진화, 문화 시장 어떻게 바꿀까
그런데 새로운 변수가 있습니다. 자동 번역입니다. 구글은 최근 '딥러닝'을 활용한 번역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바둑으로 이세돌을 꺾었던 인공지능 소프트웨어 '알파고'가 '딥러닝'을 활용했었죠. 컴퓨터가 스스로 추론하고 학습합니다. 이제까지의 자동 번역은 기계적으로 단어와 구절을 바꾼 뒤, 통계적으로 보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같은 어족(語族) 안에서만 그럭저럭 쓸 만했어요. 예컨대 영어와 독어 사이의 번역은 꽤 그럴 듯합니다. 하지만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결과는 엉망이었죠.
그런데 초보적으로나마 컴퓨터가 직접 학습을 한다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구글 리서치 블로그에 따르면, '딥러닝'을 이용한 번역은 일단 영어와 중국어 사이에 적용됩니다. 기존 방식에 비해 번역 오류가 대폭 줄었다고 해요.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스스로 학습하는 시스템이므로, 번역 정확도는 꾸준히 나아질 겁니다. 지금은 인간의 번역에 못 미치지만, 머지않아 추월할 수 있다는 거죠.
자동 번역 기술의 발달은 웹 소설 시장을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웹 소설은 문체 미학으로 승부하지 않습니다. 주로 이야기의 설정 및 구조로 승부합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래요. 이는 자동 번역 기술을 적용하기가 전통적인 소설보다 쉽다는 뜻입니다. 중국과 일본의 웹 소설을 한국 독자가 거의 실시간으로 읽는 날이 올 수 있죠. 비슷한 문화권, 혹은 전 세계가 하나의 웹 소설 시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땐 어떤 일이 생길까요.
신개념 만화 가게의 등장
물론, 웹 소설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닐 겁니다. 만화, 게임, 영화, 드라마 등 문체 미학이 덜 중요한 장르는 대부분 비슷한 문제를 겪게 되겠죠. 자동 번역이 문화 산업에 미칠 영향은 당장 예상하기 어렵습니다. 문체 미학이 중요한 장르, 순수 문학은 그럼 희망이 있을까요. 그 역시 불투명하죠. 글머리에서 이야기했듯, 사람들은 점점 더 책을 멀리하니까요. 누구도 정답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힌트를 찾을 뿐이죠.
다음 회에선 요즘 유행하는 신개념 만화 가게를 살펴보려 합니다. 가게 주인들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만화 산업 역시 복잡한 부침을 겪었습니다. 전통적인 만화 가게가 몰락하고, 웹툰(웹 만화)이 대세가 됐어요. 그런데 최근 들어 새로운 흐름이 생겨났습니다. 어쩌면 거기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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