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 첫날인 28일 점심시간. 정부세종청사와 인접한 상가에서 복어요리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는 "김영란법 시행과 맞물려 최근 2~3주 전부터 손님이 확연히 줄기 시작했다"며 말끝을 흐렸다.
김씨는 "당장 오늘 저녁부터는 예약 손님이 고작 1~2팀 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울상을 지었다. 평소 공무원들이 자주 찾는 것으로 알려진 이 집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북적였지만, 이날은 빈 자리가 곳곳에 눈에 띄었다.
같은 시각 찾은 바로 옆에 위치한 고급 일식집 역시 "김영란법 시행 전보다 손님이 1/4수준으로 감소했다. 먹을 것 가지고 국가에서 너무 간섭하는 것 아니냐"며 얼굴을 찌푸렸다.
금남면의 모 갈비집은 "한 끼도 맛있게 먹고 싶은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라는 재미있는 문구를 동원, 김영란법에 대응한 메뉴를 선보였다. 고급 한우 음식점이 몰려 있는 장군면 일대도 평소와 달리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A음식점 사장은 "점심식사 손님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면서 "인근 음식점들이 모두 생존전략을 고민할 정도"라고 전했다. 급기야 이 식당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29,900원' 짜리 신메뉴 '영란정식'을 전격 도입했다.
바로 옆의 B한우집은 "손님이 절반 이하로 줄었고 저녁 예약은 평소 대비 1/3 이하로 급감했다"며 "타격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했다. 이 한우집은 세트메뉴를 만들어야 할 지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같은 지역의 C한우집도 최근 2만원대 초반의 메뉴를 신설, 김영란법에 대응하고 있다. 이 가게는 "김영란법이 20년된 지역 토착 음식점을 이렇게까지 힘들게 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면서 "2만원대 메뉴는 사실상 손해를 보는 구조지만 당분간 버티려면 어쩔 수 없다"고 성토했다.
도담동의 한 횟집은 "김영란법에 따른 융통성 적용, 단체 예약시 정해진 예산에 맞춰 드립니다" 라는 문구를 메뉴판 아래에 적고 손님을 맞고 있었다.
반면, 비교적 저렴한 음식을 파는 가게들은 여느 때와 같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김영란법이 식사 금액을 3만원으로 제한을 둔만큼, 음식 값 부담을 피해 몰리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정부세종청사 인근에서 찌개 전문점을 운영하는 D씨는 "예전과 비교해 찾는 손님은 그대로"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 식당을 찾은 공무원 박모씨(37)는 "28일 이후로는 법 적용이 어떻게 될지 몰라 저촉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음식점을 고르고 있다"며 "직원들 모두 조심하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국밥, 비빔밥 등 싼 가격에 찾을 수 있는 다른 음식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영업이 위축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북적북적한 모습은 종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세종시청 구내식당은 평소보다 많은 직원들이 몰리며 북적였다. 평상시 약 450명 가량이 점심식사를 한 것에 비해 이날은 500명 정도가 몰린 것으로 파악됐다. 구내식당 관계자는 "평소보다 10%넘게 직원들이 몰려들었다"며 "준비된 재료가 떨어지는 바람에 발길을 돌린 직원들도 있었다"고 전했다.
모 사무관은 "법 시행 첫날인 만큼 조심하자는 차원에서 직원들과 함께 구내식당을 찾았다"면서 "28일 이후 저녁 약속은 대부분 취소한 상태"라고 말했다.
세종시교육청 모 직원은 "9월말 이후로는 저녁약속이 아닌 부담이 없는 점심식사 위주로 약속을 잡고 있다"면서 "공직사회 전반에 조심하자는 분위기가 역력하다"고 전했다.
김영란법 시행 첫날을 맞아 법 적용 대상인 공직사회와 교육계, 언론계 등은 광범위한 법 규정에 어떻게 대응할지 우려하면서도, 그 동안 몰래몰래 이뤄졌던 과도한 접대문화와 뿌리깊은 부정·부패가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보였다.
프레시안=세종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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