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반대론=국내 정치용"?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5일 오후 기자들과 만나 "오바마 당선자는 기업, 시장, 성장, 자유무역을 강조한 부시 행정부의 기조에서 상대적으로 노동, 규제의 강화, 분배, 공정무역 쪽으로 정책의 중점이 다소 이동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일단 '차이'는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하지만 전반적으로 미국 사회와 행정부의 자유화 정도는 우리보다 몇 걸음 앞서 있는 만큼 이러한 경향으로의 이동 자체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기조의 궤도수정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자유화 정도에서 미국이 10걸음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6걸음 정도"라며 "미국이 10걸음에서 9걸음 정도로 온다고 해도 우리가 4~5 걸음 정도로 뒷걸음질 칠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자유화 개혁'을 계속해야 한다는 게 이번 미국 대선이 남긴 시사점"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청와대는 한미 FTA와 관련한 오바마 당선자의 '반대론'에 대해서도 '국내 정치용'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다른 고위 관계자는 "미국 민주당이 그 동안 노조의 지지를 받아 왔다는 점에서 (오바마 당선자의) 의사표현이 있었지만, 다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낙관했다.
한미 FTA 재협상 '불가론'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양국 간의 FTA를 미국 대선 이후 레임덕 세션에서 처리하겠다는 계획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11월 17일부터 시작되는 레임덕 기간동안 (의회 비준을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며 새로 오는 (오바마 정부의) 팀과도 계속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시 대통령의 남은 임기 중 양국 의회비준을 모두 마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한 셈.
대북정책과 관련해선 "차이가 없을 것"이라며 우려 불식에 주력했다. 이 관계자는 "오바마 행정부도 기본적인 한미동맹의 관계를 중시할 것이라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며 "오바마 당선자도 동맹국과의 협의를 중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MB와 오바마, 공통된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
지금까지 청와대가 보여 온 '부시 프렌들리' 행보와는 달리 오바마 당선자 측과의 친분을 애써 강조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의 축전도 이미 발송한 상태다.
청와대 관계자는 "외교문제에 있어선 현실적으로 바이든 부통령 당선자의 역할이 클 것"이라며 "바이든은 우리 대선 직후 미국 상원에서 이 대통령에 대한 당선축하 결의안을 주도했던 분이고, 바이든 당선자가 부통령 후보로 지목된 직후에 이 대통령이 축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앞으로 오바마 행정부의 많은 인재를 배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도 이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고 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도 공식 논평에서 "우리 정부는 오바마 당선자가 그 동안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아시아의 주요 동맹국인 한국과의 굳건한 관계 발전을 지지해왔던 점을 주목한다"며 "특히 바이든 부통령 당선자가 향후 한미관계 발전에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또 이 대변인은 "오바마 후보의 당선은 그가 제시해 온 '새로운 변화와 희망'을 미국 국민들이 지지한 결과라고 평가한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이후 일관되게 '변화와 개혁'을 국정운영의 중요 가치로 삼아왔으며, 그런 점에서 두 정상은 공통된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대변인은 "우리 정부는 오바마 후보의 당선을 계기로 한미 양국의 미래지향적 동맹관계가 한층 높은 차원으로 발전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낮 한승주 전 외무장관, 현인택 고려대 교수 등 자신의 외교안보 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던 인사들과 오찬 간담회를 갖고 미 대선 이후의 한미관계와 정책현안 등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이명박 대통령은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간담회에서 "새로운 미국의 변화를 주창하는 오바마 당선인과 대한민국의 새로운 변화를 제기한 이명박 정부의 비전이 닮은 꼴"이라고 언급했다고 청와대가 전했다.
특히 이 자리에는 '한국의 네오콘'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남주홍 경기대 교수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정권 출범과정에서 통일부 장관 후보군으로 오르내렸던 남 교수는 자신의 저서 <통일은 없다>에서 나타난 지나친 강경론과 재산 형성과정의 의혹 등으로 끝내 낙마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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